메뉴 건너뛰기

close

가을 단풍에 취해 잊고 있던 산수유 열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산수유나무의 갈색 나뭇잎에 가린 빨간 산수유 열매가 단풍에 취한 사람들에게 서운한 듯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전국 산수유나무의 60% 이상을 재배하는 것으로 알려진 구례는 봄에는 노란 산수유꽃이 만발하고 늦은 가을이 되면 빨간 산수유 열매가 나뭇잎에 숨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밉니다.
 
산수유 열매
▲ 구례 산수유 마을 산수유 열매
ⓒ 임세웅

관련사진보기

 
"웬 개나리꽃이 벌써 폈지?"

매년 3월 중순이면 구례 산동면 일대는 온통 샛노란 산수유꽃으로 온통 물듭니다. 2009년 어느 날 남원에서 구례로 넘어오는 밤재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노랗게 핀 꽃을 보며 그 꽃이 개나리꽃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 본 노란 꽃이 개나리꽃이 아니라 산수유꽃이라는 것을 2011년 구례로 귀촌한 후 알게 되었습니다.

2009년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 마지막 여행지가 하동을 지나 남해였는데 그때는 그렇게 스치듯 지나갔던 곳이 구례입니다. 2011년 4월 귀국 후 구례로 이사한 후 그때 본 노란 꽃이 산수유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2018년 3월 22일 구례 산수유꽃 축제장에서
▲ 구례 산수유꽃 터널 2018년 3월 22일 구례 산수유꽃 축제장에서
ⓒ 임세웅

관련사진보기


지금으로부터 약 1200여 년 전 중국 산둥성에 사는 처녀가 구례 산동으로 시집을 오면서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산수유나무를 가져와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3월에 노란 꽃을 피운 산수유나무에는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이면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산수유 열매
▲ 구례 산수유 마을 산수유 열매
ⓒ 임세웅

관련사진보기

   
산수유 열매
▲ 구례 산수유 마을 산수유 열매
ⓒ 임세웅

관련사진보기

    
산수유 열매를 수확해서 팔기까지 열 번 이상의 손이 가는 일이라 매우 고됐지만 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동면 주민들은 산수유나무를 '대학나무'라 불렀습니다.
 
산수유 열매의 씨를 빼는 모습
▲ 구례 산수유 마을 산수유 열매의 씨를 빼는 모습
ⓒ 구례군청 제공

관련사진보기


이제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중국산 산수유 열매의 수입이 늘면서 구례 산수유 열매의 가격이 폭락했고 산수유 열매 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나이가 들어 작디 작은 산수유 열매를 따기에도 벅찹니다. 수확량도 해마다 줄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봄에는 노란 꽃으로, 가을에는 빨간 열매로 즐거움을 선사했던 산수유 마을에는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었던 슬픈 사연이 전해집니다.

"산동애가의 슬픈 이야기"

1948년부터 1955년까지 이어진 '여순사건'으로 지리산 일대의 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목숨을 잃게 되는데 그 중 구례 산동면 일대의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그때 오빠를 대신해 처형장으로 끌려가며 산동면 상관마을에 살던 백순례(부전)이 부른 노래가 산동애가입니다.
  
산동애가 시비
▲ 구례 산수유사랑공원 산동애가 시비
ⓒ 임세웅

관련사진보기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을 병든 다리 절어절어 
다리 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 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대사> 
살기 좋은 산동마을 인심도 좋아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에 나는 간다
노고단 화엄사 종소리야 
너만은 너만은 영원토록 울어다오. 

잘 있거라 산동아 산을 안고 나는 간다
산수유 꽃잎마다 설운 정을 맺어놓고 
회오리 찬바람에 부모 효성 다 못하고
갈 길마다 눈물지며 꽃처럼 떨어져서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 없이 스러졌네

이 산동애가는 산동의 아낙네들이 늦가을 산수유 열매를 수확할 때나 겨울철 산수유 열매의 씨를 이로 발라낼 떄 삶의 고단함을 풀어내면서 부르는 노동요가 되었습니다.

경작지가 부족했던 산동면 산수유마을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집 주변과 골담, 산등성이, 개울가 등에 산수유나무를 심었고 이렇게 심어진 산수유나무는 주변의 자연환경과 잘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산수유 농업은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부족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이가 부서지는 고통을 참아가며 지켜낸 산동 주민들의 독특한 지역 문화유산입니다.

빨간 열매 속에 담긴 구례 산동면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를 기억하시어 '구례 산수유 열매 체험 한마당'이 열리는 3일, 구례 산수유 마을을 방문해 보시면 어떨까요?

빨간 산수유 열매와 이끼 낀 돌담이 만드는 아름다운 경관뿐만 아니라 산수유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지역의 문화적인 아름다움도 경험하시길 기원합니다.

태그:#구례, #산수유열매, #산수유나무, #산동애가, #산수유꽃축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