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수탈이 극심했던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려 애썼던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선생이 1938년에 성북동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 바로 '보화각'입니다.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중 하나인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 선생이 지은 이름으로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간송 선생은 일제에 뺏기거나 훼손될 문화재들을 구해내 이곳에 모아뒀습니다.
훗날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한글을 만든 이유와 사용법을 담은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국보 12점, 보물 10점 등 다양한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봄, 가을에 한 번씩 작품을 공개해 사람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 80주년을 맞아 보화각의 그 귀한 보물들이 대구를 찾아왔습니다.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간송특별전 - 조선회화명품전'은 신윤복, 김홍도, 안견, 정선, 장승업, 신사임당, 김득신, 김정희 등 조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10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전시입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오만원권 지폐에 그려진 신사임당의 '포도' 수묵화를 봅니다. 김득신의 '야묘도추'는 병아리를 훔쳐 달아나는 들고양이 때문에 일어난 한바탕 소동을 표정까지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의 난 그림도 인상적입니다.
정선의 '장안연우'엔 안갯속 한양의 전경이 펼쳐집니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의 신묘함을 고스란히 담은 정선의 '풍악내산총람'은 봉우리마다 그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8m가 넘는 심사정의 '촉잔도권'은 길게 이어진 산수의 풍경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나른한 봄날, 꾀꼬리 한 쌍에 넋이 나간 선비의 모습을 담은 김홍도의 '마상청앵'은 '꿈속의 선비'라는 미디어 작품으로 재해석됩니다. 꾀꼬리가 별을 하나씩 물어오고 그 별들이 밤하늘로 올라 반짝일 때까지 선비는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 앞에는 북새통을 이룹니다. 관람 거리 제한으로 세세한 묘사를 가까이서 볼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특히 재밌던 작품은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입니다. 국보 제135호로 조선 후기 풍속과 남녀 간의 춘정을 묘사한 30장면의 화첩입니다.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또 작품 하나하나마다 해시태그를 달아 현대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월하정인'의 경우 '#심야데이트, #오늘은고백할까, #기대기대, #썸타는중'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위트 있게 표현했습니다.
"옛 것을 배워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출구 쪽 벽면에 적힌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글귀가 전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간송 선생이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지켜낸 '옛것'들.
지난 6월부터 시작한 전시가 이달 16일까지 열립니다. 11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고 합니다. 추석 연휴를 고려해 26일까지 전시기간을 늘리는 협의가 진행 중이라 하니 그 인기를 실감케 합니다.
더 늦기 전에 귀한 옛 보물들을 만날 기회를 잡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