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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2015년 12월 31일부터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의 일부 개정안을 시행했다.

개정안에는 제 11조(결산서의 제출 및 공시) 2항이 신설되었다. 병원은 신설 조항에 따라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를 복지부장관이 정한 인터넷 사이트에 공시하는 의무가 부과 되었다.

특히 아산재단과 같은 재단법인의 대학병원 및 의료법인의 병원 모두 공시 대상에 포함되어 복지부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 및 의료기관 회계의 투명성과 신뢰성 제고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 갈 길이 멀다. 공시 사이트는 2016년 결산자료부터 공개하고 있어 이전의 회계자료를 볼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또한 해당 사이트에 대한 홍보 부족 문제로 국민의 알 권리가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공시 사이트 외에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의료기관 회계기준 시스템(HAS system)'이 존재하지만 대중들에게 공개불가다. 회계자료를 바탕으로 재무상태 및 경영성과 분석 결과가 제공되는 이 시스템은 기관의 코드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도록 되어 있어 일반인은 볼 수 없는 구조다.

게다가 개정안의 취지를 달성하기도 전에 해당 조항은 2018년 12월 31일을 끝으로 법적 효력을 다한다. 이는 행정기관이 존재 목적이 불투명한 법을 재검토하고 폐지하는 일몰법(sunset law)에 의한 조치다. 의료기관의 방만한 경영을 경계하기 위해 태어난 법이 불필요한 규제 철폐를 위한 조치 하에 '재검토' 유형으로 설정되어 존폐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

행정기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재검토' 유형은 바로 '폐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이미 공시된 회계자료는 계속 공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곧바로 폐기되지 않는 '재검토' 유형이라도 안심할 수 없다. 해당 법의 존속 여부에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료업계 종사자들의 생존권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최근 임금체불 사태로 파업에 돌입했던 제일병원의 사태는 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절박한 사례다.

2017년 6월 임금단체협상에서 간호사·의료기사·행정직 직원들은 연봉의 약 15%와 정기상여금의 300%을 병원 정상화를 위해서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경영수익이 흑자로 전환되면 다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던 병원 측은 매달 이어지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화 대신 병원신축공사를 선택했다. 재정은 부족하지만 병원의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 이사회 측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지난 3월 병원 측은 또 다시 의료진과 일반직원의 임금을 15~50% 삭감하겠다고 통보했고 노조 측은 파업에 돌입했다.

결국 지난 8일 노사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긴 했으나 아직 미봉책 수준에 불과하다. 상생을 이유로 임금 삭감을 요구했던 병원 측이 다시 약속을 깨지 말라는 확실한 보장이 없다.

만약 의료기관의 회계자료를 공개하는 해당 법령이 사라진다면 이와 같은 사태는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노동자 생존권이 위협받을 때, 회계자료의 불투명성은 노동자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하며 오히려 사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뿐이다.


태그:#재무현황 공시, #의료기관 재무제표, #일몰법(SUNSETLAW), #한국보건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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