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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神宮이라고도 불리고 메이지 진구라고도 불리는 메이지 신궁은 도쿄의 도심 속에 자리한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한반도에 있어서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JR 하라주쿠(原宿) 역 오모테산도(表参道) 출구에서 도보로 3분 걸리는 곳에 있는데 일본을 성공적으로 열강의 반열에 올린 메이지 천황을 기념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1910년 일제의 한일 강점 조약을 주도한 메이지 천황과 그의 부인인 쇼켄 황태후의 제사를 목적으로 설립된 곳이기도 하니 강점의 역사가 있기에 쉽기 잊어서는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입구
▲ 메이지신궁 입구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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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신궁은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성스러운 곳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이곳을 찾아와서는 항상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 방문해본 메이지 신궁의 숲은 한국의 수목원 등의 숲과 매우 다르다. 너무나 울창하게 있어서 상당히 압도감을 느끼게 한다. 짙은 녹음이 짙다 못해 마치 원시림에 들어간 느낌마저 받게 한다. 메이지 덴노와 쇼켄 고타이고의 제사를 지내며 1915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1920년에 완성했다.

입구
▲ 신궁 입구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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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많은 외국인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1975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려고 했다가 여론 등으로 인해 이곳 메이지 신궁을 대신 찾았다. 일본에 있는 3대 신사는 이곳 메이지 신궁과 야스쿠니 신사, 오사가 이세 신궁이다. 미국의 대통령들도 야스쿠니 신사 대신에 메이지 신궁을 찾아왔는데 전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도 이곳을 찾았다.

신성한곳
▲ 도리이 신성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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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신궁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이것저것을 들고 걷다 보니 다리가 제법 아파온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들만큼 조금 힘들었지만 메이지 신궁은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었다. 메이지 신궁은 무려 70만 평방미터로 조성된 곳의 중심에 있다.

메이지천황
▲ 제사 메이지천황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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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신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이후 1958년에 다시 복구되었고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이런 울창한 원시림에 가까운 숲을 조성함으로써 일본의 자존심을 보여주었다. 이곳은 작은 일본이라고도 불리는데 일본색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이곳을 먼저 방문해보길 권해본다.

울창한 숲을 지나쳐서 걸어오면 또 다른 속살이 드러난다. 한국의 향교와 서원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홍살문이 있듯이 일본의 모든 신사들의 입구에는 도리이가 있다. 2개의 원통형 수직기둥 위에 직사각형의 들보가 가로로 2개가 얹혀 있는데 보통 작은 신사에서는 붉은색으로 칠하기도 하는데 중요한 신사에는 아무런 색을 칠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세우며 신사의 신성한 공간과 평범한 공간의 경계를 알린다.

부적
▲ 부적 부적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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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을 비롯하여 영국인, 중국인, 동남아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신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메이지 천황은 막부시대를 마치게 하고 일본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게 한 발판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그 정신의 상당 부분은 사카모토 료마가 제시하였다. 휘는 무스히토이며 유년기의 궁호는 사치노미야를 사용했던 메이지 천황은 일본의 제122대 천황이다.

소원지
▲ 소원지 소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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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신궁의 힘이 담겨 있어서 그런 것일까. 대부분의 것들이 모두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고 건강해지게 해주는 부적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자로 쓰여 있고 밑에 그 의미가 영어로 쓰여 있었다. 한글로는 따로 적혀 있지 않았는데 형태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내용들이 대동소이했다. 어떤 것은 차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해준다는 부적까지도 있었다.

메이지천황
▲ 근대화 메이지천황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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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천황은 1984년 이후에 입헌 민주국가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외교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성과를 올렸다. 조선이 강제로 개항되고 나서 외교적인 성과 대신 실패의 길을 걸었던 반면 과감한 개혁을 통해 제국주의적 식민국가로 팽창하며 결국 한반도를 집어삼키게 된다.

수많은 소원지들이 적혀 있는데 영어로 쓰인 것도 적지 않게 보인다. 이곳에 소원을 써서 적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메이지 천황은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되어 1912년에 세상을 떠나는데 대 상례가 거행될 때 수많은 일본인들이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중국의 자금성에도 가본 적이 있어서 그 규모를 잘 알고 있지만 메이지 신궁은 그보다 건물의 규모는 작은 대신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서의 의미와 자연 속에 어울림을 추구하는 일본 사람들의 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숲을 조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오래된 나무를 옮겨 심은 덕분에 이곳은 마치 천여 년 전부터 숲을 조성하여 오늘날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숲 조성은 이렇게 울창한 자연림처럼 조성하는 것보다는 사람 위주의 동선에 숲은 그냥 그늘을 만들어주는 정도에 그치지만 일본은 울창하다 못해 녹음이 짙게 드리울 정도까지 만든다.

자세
▲ 경건함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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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는 사람들은 신사의 물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물을 떠서 양손을 깨끗이 씻고 난 후에 다시 물을 떠서 입안을 행구어서 뱉는 게 일반적인 일본인들의 방식이다. 외국인들도 익숙한 모양인지 영어로 된 문구를 보며 그대로 따라 한다. 

사케
▲ 진상품 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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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역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케가 있는데 천황에게 진상하던 그 술들의 이름이 메이지 신궁의 입구에 있다. 모두 일본을 대표할 만한 사케들로 진귀한 것들도 적지 않다. 이런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한국은 술을 조정에 진상하였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만 이렇게 따로 모아놓고 보여주고 있는 곳은 없다.

기념품
▲ 기념품샵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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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는 이렇게 일본 메이지 신궁을 대표하는 다양한 먹거리와 상징성 있는 것을 구매할 수 있도록 샵을 만들어 놓았다. 필자도 메이지 신궁의 녹차를 하나 구입했다. 메이지 신궁의 녹차는 어떤 맛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물어보았더니 맛이 괜찮다고 해서 믿고 사보았다.

입구
▲ 도리이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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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신궁의 도라이는 그 수도 많기도 하지만 그 규모도 상당하다. 어떤 나무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는 없었으나 나무의 뒤틀림이나 만져 봤을 때의 그 단단함으로 보아 상당히 오랫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이곳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볼 듯하다. 우리는 역사를 잘 배우려고 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막연하게 일본을 막무가내로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다. 서양에게서 당했던 것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 절치부심하여 서양을 배우고 익혔다. 그 결과 오늘날의 일본을 만들었고 전 세계에서 강력한 외교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메이지 신궁을 조성하고 명절 때마다 수백만 명이 찾아오는 일본인은 그 의지만큼이나 강해 보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 신채호


태그:#일본여행, #메이지신궁, #도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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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쓰는 남자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며, 역사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다양한 관점과 균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은 열심이 사는 사람입니다. 소설 사형수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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