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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당시 제주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면 국가추념일 지정이 안 됐을 수도 있다. 지금의 야당체계에서 과연 국가추념일 지정이 가능했겠나."


제주4.3사건 발발 이후 민간인 학살이 한창이던 1949년 1월 17일 제주 북촌마을 너븐숭이(암반층으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동산)에서 무장대의 공격으로 군인 2명이 사망하는 발생한다.


당시 군인들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북촌마을 주민 500여명을 집단 학살한다. 이에 앞선 1948년 6월 16일 북촌포구에서도 우도지서 경찰관 2명이 사망하고, 같은 해 12월 16일에는 토벌대가 낸시빌레(냉이가 많이 나는 돌밭)에서 청년 24명을 총살한다.


이상언 전 제주4.3 유족 청년회장의 할아버지인 이근형과 고모인 이성숙씨가 하루 사이 군인들의 총칼에 학살을 당했다. 숙부인 이성도씨도 1948년 4월 20일 사망하는데, 제주4.3으로 인해 1948년부터 1949년 사이 채 1년도 안돼 이 전 회장의 혈족 3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의 희생양이 된다.



특히, 큰아버지 성도씨의 경우에는 누구보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단다.


이 전 회장에 따르면 큰아버지 성도씨는 4.3봉기 이후 17일 만에 사망하는데 사망한 동기가 억울한 만하다. 바로 이름 때문이다.


큰아버지 성도씨는 일본인 부인과 살았다. 토벌대를 피해 마을주민들이 산으로 올라갔는데 큰아버지에게 왜 산으로 올라가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다같이 잘 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꽤 의식 있는 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이 큰아버지 '성도'씨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같은 마을에 '성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토벌대가 '성두'를 호명했는데 대신 큰아버지 '성도'씨가 일어나 끌려가서 총살을 당했단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비슷한 이름이 아니었다면 살아 돌아 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이상언 전 회장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4.3 당시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다"면서 "이후 제주에서는 이름을 특이하게 짓기 시작했다"며 가족 학살지로 잘 알려진 '다랑쉬' 등 제주의 아픔을 그린 강요배 화백을 사례로 들었다. 강 화백의 형은 강거배다.


강요배 화백의 부친은 4.3당시 토벌대가 무차별 학살 과정에서 색출자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묻지마 학살하자 절대 같은 이름이 없는 이름으로 짓기로 하고 강요배, 강거배로 짓게 됐다는 일화도 전했다.


이같은 혈족들의 죽음으로 아픔을 겪은 이상언 전 제주4.3 유족 청년회장은 현재 제주4.3의 유족의 아픔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4.3평화 인권 명예교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4.3당시 북촌마을의 상황에 대해 "북촌이 땅이 좋은 곳이 아니었다"면서 "냉이가 많이 나는 돌밭이라는 뜻의 낸시빌레에서 보듯 돌밭이 많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얼마나 자식들 키우는데 어려웠겠나"라고 사정을 전했다.


이어 이 전 회장은 "4.3 초토화 작전 당시에는 해안이나 산간이나 상관없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특히 북촌마을은 초토화 작전 당시 군인 2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보복성 학살이 자행된 것으로 보고 있고 이로 인해 희생자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제주4.3의 진정한 진실규명 위해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중요"



제주4.3 초토화작전 당시의 상황설명을 마친 이상언 전 회장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제주4.3사건 이후 제주는 공동체가 파괴되고 연좌제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다. 제주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4.3특별법 개정과 함께 진상조사, 그리고 당시 4.3사건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미국의 사과와 진상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에 이 전 회장도 4.3의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가해자의 기록 발굴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전 회장은 "제주4.3의 해결을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가장 중요한데, 가해자에 대한 기록이 없다. 희생자들은 증언을 하는데 가해자들은 증언을 많이 안한다"면서 "양심선언도 있지만 윗선은 인정하지 않는다. 4.3의 가장 위에는 미국, 이승만 정부, 조병옥 경무부장, 9연대장, 2연대장, 11연대장과 당시 파견됐던 군인들, 즉 윗선의 명령을 받아 수행했던 장교들, 사병으로 왔지만 직접 총을 쏜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이어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것과 관련해서도 입을 열었다. 제주4.3사건 희생자 추념일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던 2014년 3월 18일 대통령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바 있다.


국가추념일 지정 이전 제주4.3 정립연구유족회는 폭동을 유도한 사람들을 희생자로 둔갑시키지 말고 무고한 희생자만을 추모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시 정부 주도의 제주4.3사건 추념일 지정 연기를 촉구한 바 있다.


이 전 회장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제주4.3의 국가추념일 지정에 대해 반대할 일은 없겠지만 지금의 야당체계에서 문재인 정부가 국가추념일로 지정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든다"며 "박근혜 정부니까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은 "역대 대통령 중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추념일에 방문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자 시절이었던 2012년 11월 8일 위령비를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문 대통령은 유족과 공식적으로 두 번 대화를 했는데 후보시절 대통령이 되면 4.3의 남은 과제 처리해주겠다고 했고, 올해 추념일에도 꼭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4.3 유족들은 뭘 바라는 것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라며 "배상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면 응어리진 한이 풀릴 것이다. 올해 70주년은 뜻깊은 한 해가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덧붙이는 글 | 이상언 전 4.3유족회 청년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3월 22일 북촌마을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진행됐습니다. 조속히 제주4.3사건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태그:#제주4.3사건, #이상언, #북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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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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