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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속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서울의 한 대형병원이 간호사 A씨의 죽음에 대해 '태움'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괴롭힘과 갑질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간호사 '태움'이란 군대 군기를 잡는다면서 선임병이 후임병들을 괴롭히는 행태와 비슷하다.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왕따', '구타' 등으로 후배들을 괴롭히는 용어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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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간호사들도 '태움'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일부 방송이나 언론에선 간호사 태움에 대해 심층 취재를 다룬 바 있지만 간호사 태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병원, 조사 대충 했나

A씨는 2017년 9월 서울 OO병원 내과계 중환자실(MICU2)에 입사한 신입 간호사였다. 신입  간호사들은 입사 후 3개월 간 '프리셉터'라 불리는 선배간호사들이 관리한다. A씨는 수습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프리셉터들에게 '태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A씨는 지난 15일 A씨는 오전 10시 40분께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측은 특별한 유서가 없었고 깊은 수심에 잠긴 듯, 투신 전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다고 전했다.

경찰은 사망한 간호사 A씨 남자친구가 선배 간호사의 괴롭힘이 있었다고 주장함에 따라 이와 관련한 사실 여부를 조사 중이다.

병원 측은 "태움이라는 문화가 있을지는 몰라도 A씨의 죽음과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A씨의 남자친구라고 밝힌 B씨는 간호사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려 "여자친구의 죽음이 그저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간호사 윗선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태움'이라는 것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특히 병원이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A씨가 '태움'을 당했다는 정황이 담긴 유서가 있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A씨가 지난해 9월 입사한 후 끊임없이 태움에 시달렸다. A씨가 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프리셉터(선배 간호사)들이 '너 소송 걸릴 수도 있어'라며 괴롭혀왔다"고 말했다.

이어 "A씨가 휴대폰에 쓰다만 유서에 자신을 태웠던 프리셉터들의 이름과 함께 '일하기 힘들다', '안 괴롭혔으면 좋겠다'란 글이 적혀 있다. 항상 밝았던 분이다. A씨의 자살은 프리셉터들의 심각한 '태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병원 측은 A씨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듯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얼마나 철저히 조사하고 객관적인 증거와 자료를 확보했기에  '태움이 없었다'고 단정을 했는지 의문이다.

한편 유가족들은 현재 병원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까지 반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아래 보건의료노조)는 A씨의 죽음에 대해 19일 '서울OO병원 신규간호사 자살사고에 대한 보건의료노조 입장'을 발표하고, 신규간호사의 투신자살사고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과 확고한 재발방지대책 마련, 유가족에 대한 사과, 자살사고 산재처리 및 보상을 아산병원에 촉구하고 나섰다.

보건의료노조는 "신규간호사를 죽음으로 내몬 직무스트레스와, 긴 노동시간, 과도한 업무량, 열악한 노동조건과 조직문화는 간호등급 1등급인 서울아산병원만이 아니라 전체 의료기관에 만연해 있다"라고 했다.

노조에 따르면 A씨는 입사 후 6개월의 신규적응교육기간 동안 살이 5kg나 빠질 정도로 끼니를 일상적으로 걸렀고,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저녁번(evening) 근무를 오후 1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새벽 5시에 퇴근할 정도로 극심한 업무량에 시달렸고, 신규적응교육기간 동안 출근하기를 힘들어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수로 환자의 수술 후 뱃속에 고이는 피나 체액을 빼내는 관인 배액관이 찢어지는 일이 발생하자 소송에 걸릴까 두려워 밤새 간호사 실수에 관한 소송피해사례를 검색할 정도로 실수에 대한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무서움과 불안함도 컸다고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우리나라 간호사의 평균 근속연수가 5.4년에 불과하고 신규간호사의 이직률이 33.9%에 이르는 현실은 연간 간호현장에 투입되는 2만여 명 신규간호사들의 처지가 박모 신규간호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면서 "'백의의 천사'라 불리는 간호사가 한국의 간호현장에서는 '백의의 전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태움'...도대체 언제 사라져요?"

태움으로 인해 간호사들의 고통이 사회에 폭로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태움이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해 언론이 가해자인 병원 측이나 의사, 고참 간호사를 취재하지 않고 피해자들만 쫓아다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간호사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태움으로 인한 논란은 오래 전부터 불거져왔다. 태움에 대해 그간 논란이 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병원 내에서 간호사들 사이에 임신순번제도를 시행하는 병원도 있었다. 임신순번제는 간호사들이 같은 시기에 임신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병동 내에서 순서를 정해 임신과 출산을 하는 관행이다. 병원 업무가 한 가정의 출산 계획까지 영향을 미치는 태움만의 비 인간적인 행태였다.

그 뿐만 아니라 간호사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무시간은 일 8시간, 주 40시간이지만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하루 8시간 이상, 심하면 14시간을 근무한다. 추가 수당도 받지 못하고 근무시간보다 더 일한다고 생각하는 게 의례적"이라는 폭로를 하기도 했다.

집단 내에서 발생한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OO병원. 정신 차릴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공정뉴스>에도 동시 송고했습니다.



태그:#아산병원, #간호사, #자살 , #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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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 취재국 탐사1팀 법조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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