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6일 정현과 로저 페더러의 2018 호주오픈 4강전 경기는 국내에서 1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 평일 종합편성채널(JTBC)에서 단독 중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대박 시청률'이었다. 사람들은 역대 최고의 테니스 황제와 세계적인 강자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4강까지 올라온 대한민국 신예의 맞대결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정현은 2세트 도중 발 부상이 심해지면서 경기를 포기했다. 이후 페더러는 결승에서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를 세트스코어 3-2로 제압하고 통산 6번째 호주오픈 우승을 차지했다. 남자 테니스 역사상 역대 최초로 그랜드슬램 20회 우승을 달성한 페더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황제'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현존하는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페더러라면, 알파인 스키의 여제로는 자연스럽게 미국의 린지 본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20대 초반이던 2009년 세계 정상에 오른 후 10년 가까이 스키 여제의 자리를 지켜 온 린지 본은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확실한 여왕 즉위식을 가지려 한다. 하지만 페더러의 앞을 막았던 정현처럼 린지 본이 편안하게 여왕에 오르려는 것을 막아서는 이가 있다. 바로 미국의 떠오르는 스키 요정 미카엘라 쉬프린이다.

큰 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 평창에서 지우려는 '스키여제' 린지 본

 린지 본은 올림픽 개막 전 마지막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컨디션을 완벽하게 끌어 올렸다.

린지 본은 올림픽 개막 전 마지막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컨디션을 완벽하게 끌어 올렸다. ⓒ 국제스키연맹 홈페이지 화면캡처


한국 스포츠 팬들에게는 김동성이 억울하게 실격한, 아픈 기억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때 린지 본은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당시 본의 나이는 고작 만 17세였고 미국 홈팬들은 귀여운 외모의 금발머리 소녀가 9.11 테러 이후 침울했던 미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당시 본은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고 회전 32위, 알파인 복합 6위에 머물며 가능성을 보이는 선에서 만족했다.

본은 4년 후 2006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도 활강과 회전, 슈퍼 대회전 등 3개 종목에 출전했다. 하지만 활강 공동 8위와 슈퍼 대회전 7위로 또 한 번 메달권에 들지 못했고 본은 이후 본격적으로 주종목인 활강과 슈퍼 대회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본의 '선택과 집중'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본은 2009년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활강과 슈퍼대회전 우승을 차지하며 스키 여제에 등극했다.

그리고 본은 자신의 세 번째 올림픽 도전이었던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활강 금메달, 슈퍼대회전 동메달을 목에 걸며 꿈에 그리던 올림픽 챔피언의 꿈을 이뤘다. 특히 월드컵에서는 평창올림픽 전까지 통산 81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독보적인 성적을 올렸다. 이는 여자 선수 중에서 독보적인 1위 기록이고 잉에마르 스텐마르크(스웨덴)가 보유한 남녀 통합 최다 우승 기록(86승)에도 불과 5승밖에 남지 않았다.

린지 본이 세계 여자스키 선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본은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와 월드컵에서의 독보적인 실적에 비해 유난히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 다소 약한 면을 보여왔다. 3번의 올림픽 출전에서 금메달은 단 한 개뿐이고 소치 올림픽에서는 아예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본으로서는 평창에서 자신의 징크스를 깨고 싶은 마음이 강할 수밖에 없다.

본은 올림픽을 앞둔 2017-2018 시즌 초반, 무릎 부상 여파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은 올림픽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과정이라고 강조했고 실제로 올림픽을 앞두고 네 번의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을 추가하면서 컨디션을 바짝 끌어 올렸다. 과연 평창은 스키 여제에게 해피엔딩을 가져다 줄 아름다운 장소로 기억될 수 있을까.

회전 세계 1인자 쉬프린, 평창에서 다관왕 노린다

 쉬프린은 평창 올림픽 미국 여자 알파인 스키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꼽힌다.

쉬프린은 평창 올림픽 미국 여자 알파인 스키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꼽힌다. ⓒ 평창 올림픽 홈페이지


전 세계의 스키 팬들이 '관록의 스키여제' 린지 본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기대하지만 정작 미국 선수단에서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알파인 스키의 '에이스'는 따로 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한국 피겨의 김연아, 일본 스키점프의 다카나시 사라와 함께 '소치 3대 미녀'로 뽑히기도 했던 1995년생의 젊은 스키 요정 미카엘라 쉬프린이 그 주인공이다.

쉬프린은 아직 만 22세의 젊은 선수임에도 올림픽 금메달 하나와 세계 선수권대회 금메달 3개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커리어를 자랑한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의 실적만 보면 이미 린지 본을 따라 잡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 월드컵에서는 통산 41승을 기록 중인데 쉬프린의 나이와 기량을 고려하면 큰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유지할 경우 본의 기록을 충분히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쉬프린은 주종목인 회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량을 자랑한다. 2014년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회전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2013년부터 3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쉬프린은 회전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가졌을 뿐 월드컵에서 슈퍼대회전을 제외한 4개 종목에서 시상대에 오른 적이 있을 정도로 전 종목에서 고른 기량을 자랑한다. 쉬프린은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도 개인 5개 종목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선수단은 내심 쉬프린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올랐던 야니카 코스텔리치(크로아티아)처럼 다관왕의 주인공이 돼주길 기대하고 있다. 쉬프린이 여자 알파인스키의 모든 종목에 출전한다면 적어도 활강(21일)과 슈퍼대회전(17일) 출전이 매우 유력한 대선배 린지 본과의 맞대결을 피할 수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선수가 자신만큼 뛰어난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만큼 뿌듯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상에 머물러 있을 기량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일부러 경쟁에서 패할 필요는 없다. 비록 한국 선수가 포함돼 있진 않지만 린지 본과 미카엘라 쉬프린이 스키여제 자리를 놓고 벌일 신구대결은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결코 놓치면 안 되는 빅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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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라이벌 열전 린지 본 미카엘라 쉬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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