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는 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빙상 스타다.

이상화는 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빙상 스타다. ⓒ 평창올림픽 공식홈페이지 화면캡처


현역 생활을 마감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1990년생 동갑내기 한일 간판 피겨 스타였다. 두 사람은 선수 생활 내내 비교 당하기 일쑤였다. 당시 한국 언론에서는 "김연아도 마오처럼 '트리플 악셀'을 익혀야 한다"고 지적했고 반대로 일본에서는 "김연아의 안정감을 배우지 못하면 마오는 영원히 김연아를 능가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두 선수의 커리어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모든 피겨 선수들의 최종 꿈이라 할 수 있는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하나와 (억울한) 은메달 하나를 목에 건 김연아는, 은메달 하나를 획득한 마오를 앞선다. 하지만 세계선수권대회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각각 3, 4회씩 우승을 차지한 마오가 김연아의 그것(세계선수권 2회, 그랑프리파이널 3회)을 능가한다. 물론 두 선수 모두 매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김연아와 마오 같은 한일 피겨 라이벌전은 보기 힘들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미야하라 사토코와 사카모토 카오리가 유력한 메달 후보다. 반면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최다빈은 아직 세계 레벨의 대회에서 입상 경력이 없다. 그렇다고 평창을 뜨겁게 달굴 한일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단거리 여제'라는 타이틀을 걸고 경쟁할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라는 최고의 라이벌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이룬 단거리 빙속 여제, 올림픽 3연패로 '유종의 미' 거둔다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은 1980년대의 배기태를 시작으로 김윤만, 제갈성렬, 이규혁, 이강석, 모태범으로 이어지는 확실한 계보가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 1990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동메달과 1988년 캘거리 올림픽부터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까지 올림픽 3회 연속 출전에 빛나는 유선희를 끝으로 계보가 끊어지고 말았다. 여자 쇼트트랙이 전이경(김소희), 고기현, 진선유라는 확실한 '여왕 계보'가 이어진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렇게 인재 부족에 시달리던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에 휘경여중 시절부터 언니들을 제치고 국가대표에 선발된 무서운 신예가 등장했다. 훗날 세계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의 여제로 등극하는 이상화였다. 한국 최초의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메달 후보로 꼽히던 이상화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당시 세계 여자 단거리를 주름잡고 있던 독일의 예니 볼프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세대교체를 알린 이상화는 세계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특히 이상화가 처음으로 세계 신기록(36초80)을 세웠던 2012-2013 시즌에는 월드컵시리즈 종합 우승과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등 14번의 대회에 참가해 12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굳혔다. 2013년 11월에는 한 달 동안 세계 신기록을 세 번이나 갈아 치우는 무시무시한 행보를 이어가기도 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역대 3번째로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는 올림픽 이후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안고 있는 데다가 올림픽 2연패와 세계신기록 달성으로 이미 모든 것을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화의 뒤를 이을 마땅한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빙상계는 만 24세에 불과했던 이상화의 은퇴를 적극 만류했고 이상화는 장고 끝에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이상화는 소치 올림픽 이후에도 2016년 종목별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등 꾸준한 성적을 올렸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최강 자리를 고다이라에게 내줬다. 이제 이상화는 도전자의 자세로 돌아가 어쩌면 은퇴 무대가 될지도 모르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미국의 보니 블레어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여자 500m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다. 4년 주기 올림픽에서의 3연패는 아직 아무도 오르지 못한 영역이다.

서른 넘어 폭발한 늦깎이 스타, 올림픽 '한' 풀까

 고다이라는 500m뿐 아니라 1000m에서도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고다이라는 500m뿐 아니라 1000m에서도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 평창올림픽 공식홈페이지 화면캡처


이상화가 20대 초반의 나이에 올림픽 챔피언에 올랐던 '천재형 선수'라면 고다이라는 서른이 넘은 다소 늦은 나이에 빛을 보기 시작한 대기만성형 늦깎이 선수다. 이상화가 예니 볼프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고다이라는 500m 12위에 머물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고다이라는 단거리보다는 중거리가 주종목이었기 때문에 1500m 5위에 이어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고다이라는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린 이상화가 챔피언으로 있음에도 단거리를 포기하지 않았고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나갔다. 그 결과 2014 소치올림픽에서는 2차 레이스에서 4위에 해당하는 37초72를 기록하며 종합 5위를 차지했다. 올림픽 기록을 세운 이상화의 2차 레이스 기록이 37.28이었으니 상당히 많이 추격한 셈이다.

이상화는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며 정상의 자리를 지켰지만 고다이라는 묵묵히 자신의 기록을 조금씩 줄여 나갔다. 그리고 이상화가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부상에 시달리며 주춤하는 사이 고다이라는 여자 단거리의 새로운 일인자로 도약했다. 실제로 고다이라가 기록을 줄여 나가는 속도를 보면 마치 이상화의 전성기를 보는 듯하다. 그녀의 나이가 평창 올림픽 출전 시점을 기준으로 만31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경이적이다.

고다이라의 개인 최고 기록은 작년 12월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세웠던 36초50이다. 이상화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 기록(36초36)과는 0.14초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이상화의 홈그라운드인 평창에서 이상화의 기록을 경신하며 올림픽 금메달의 '한'까지 푼다면 고다이라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해피엔딩이 될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해외 언론에서도 최근 24번의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한 고다이라의 우위를 점치고 있다.

많은 팬들이 두 선수의 승부와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이상화와 해마다 발전을 거듭하며 드디어 최고의 자리에서 올림픽을 맞이하는 고다이라 모두 이미 충분히 대단한 선수들이다. 한국 팬들이 이상화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조금 더 너그럽고 편안한 마음으로 두 선수의 레이스를 즐긴다면 두 여제는 분명 최고의 명경기를 선사할 것이다. 단거리 여제를 가릴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맞대결은 오는 18일 저녁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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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라이벌 열전 이상화 고다이라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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