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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양산 ㄷ 아파트 외벽 도색작업 중 추락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뇌리에 박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망 사건이 발생한 초반에는 고인의 죽음이 매번 발생하는 산재 사망 중 하나로 노동부 통계자료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사건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사망의 원인이 어떠한 가해자에 의한 죽음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고인의 삶과 가족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회자됐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고인에 대한 애도와 남은 유족에 대한 연민으로 무려 2552명이라는 국/내외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1억 3449만 원의 조의금이 전달됐다.(6월 20일 '웅상이야기' 카페 발췌) 지금도 시민들의 온정의 마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지난 7월 21일 울산지검은 가해자 ㄱ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데 말입니다"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눈물겹게 아름다운 소식과 마땅히 죗값을 치르게 된 가해자의 기소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사건의 핵심적인 근본 원인을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

정부와 기업 모두 사건의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모든 책임을 가해자 ㄱ 씨에게 지우게 했다.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난 6월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만약 아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은 어쩌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새벽 일찍 일을 구하러 갔지만 결국 일감을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 ㄴ씨는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새벽부터 일감을 구하기 위해서 인력사무소를 찾아갔지만, 허탕만 치고 온 터라, 짜증이 났다.

그런데 베란다 너머로 음악 소리가 들려서 잠을 방해 받았다. 밖을 내다보며 "시끄럽다"고 고함을 질러봤지만 음악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홧김에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지만, 옥상엔 '외벽 도장작업중'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작업자가 외부인을 통제하고 있었고, ㄴ씨는 작업자에게 음악을 꺼달라는 요청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양산지역 추락 사망 사고에서 우선 직시했어야 할 사실은 제 3자의 살인행위보다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 이행의무를 다했는가 여부다. 그 다음으로 그럼에도 필연적으로 사건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하지만 지난해 통계 자료를 보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업무상사고 사망자가 499명이었고, 그중 추락 사망자가 절반을 웃도는 281명(56%)이라고 한다. 매일 1.5명의 건설노동자가 작업 현장에서 사망하고, 그중 0.76명의 노동자가 추락사고로 사망하는 끔찍한 현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재 사망 사고의 원인이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불이행으로 사실상 노동자의 살인을 내버려뒀다고 볼 수 있다.

비단 건설업뿐만 아니라 에어컨 설치/수리, 통신 케이블 노동자의 사망 사고도 심각하다. 2014년 4명, 2015년 5명, 2016년 6명(2016. 9.7. 기준) 등 3년간 총 15명의 노동자가 에어컨, 통신 케이블 설치/수리 작업을 하던 중에 열악한 노동조건, 죽음을 부르는 처참한 노동강도, 불안전하지만 작업중지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결국 일터에서 죽었다.

지난 7월 31일 노동부는 "8월부터 2개월간 건설현장 추락재해예방에 집중"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였다. 8월 한 달 동안 추락재해 예방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9월 한 달은 추락 재해 취약사업장 1000곳을 불시에 집중 감독을 할 계획이란다.

노동부의 이러한 활동이 제발 추락 사망 사고를 멈추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원인 파악과 해결 없이 부분적이고 단기적인 점검 활동으로 노동자의 죽음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올해도 폭염이 길어지면서 에어컨 설치 노동자의 하루는 늘 바쁘다. 하지만 사업주와 정부는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어도 아래와 같은 노동조건을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2. 폭염이 장기화하고 있는 여름, 에어컨 설치의 계절이 왔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 여름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 노사가 공동으로 지침을 만들었다. 이제는 고객으로부터 에어컨 설치 주문이 폭주하더라도 하루에 설치하는 대수를 2~3대로 한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재촉하는 고객에겐 노동자가 아닌 회사에서 양해를 구하고, 노동자와 협의해서 일하는 시간 조율을 하고 있다. 설치 노동을 할 때는 각종 안전사고 조치를 마무리하고 2인 1조로 작업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숙견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추락사고, #아파트 외벽 청소, #에어컨 설치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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