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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 복제된 등재 인증서로 문화재청이 원본을 분실, 2007년 9월 14일 재발급 받은 것으로 표기돼있다.
▲ <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 복제된 등재 인증서로 문화재청이 원본을 분실, 2007년 9월 14일 재발급 받은 것으로 표기돼있다.
ⓒ 문화재제자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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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지난 7일 <조선왕조실록> <훈민정음> 등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를 분실했다고 밝혔다. <조선왕조실록> 세계기록유산 등재 인증서 분실 건은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가 도쿄대학교로부터 <조선왕조실록> 47책을 반환받은 지 10년을 맞아 자료집 발간을 준비하는 중에 발견됐다. <조선왕조실록>이 우리 문화재로는 최초로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청을 향한 비판여론이 거세다.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는데,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 전시된 인증서 사본에는 2007년 발급받은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문화재청은 "2007년에 분실을 이유로 재발급된 인증서"라면서 "인증서 분실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분실 경위를 보다 명확하게 조사해 그 결과를 알려드리겠다"라고 해명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세계적인 기록유산을 잘 보관해왔다는 취지에서 등재한 기록유산 인증서를 분실했다는 사실이 황당하다, 세계적인 망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유네스코 인증서 분실... "경위 살피겠다" 해명에 "세계적 망신" 비판

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 <오대산 사적>에는 <조선왕조실록>의 일본 반출 경위가 기록돼 있다.
▲ <오대산 사적> 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 <오대산 사적>에는 <조선왕조실록>의 일본 반출 경위가 기록돼 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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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가 도쿄대학교의 상징 아까몽(赤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06년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가 도쿄대학교의 상징 아까몽(赤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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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51호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의 실록을 통칭하는 것으로 태조 때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여기에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포함하지 않는데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침탈 등의 기록에서 왜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두 실록은 1927년부터 1932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주도로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했다.   

<조선왕조실록>의 비극은 '인증서 분실'뿐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일체가 1914년 조선총독 데라우치에 의해 도쿄대학교로 불법 반출된 뒤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됐다.

그때 화를 피한 27책을 1932년 5월 당시 경성제국대학(현재 서울대학교)에 돌려줬고 47책이 도쿄대학교에 남아 있었다. 이에 문화재제자리찾기가 도쿄대학교를 상대로 반환운동을 전개했고, 도쿄대학교는 실록을 서울대학교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2006년 반환했다.  

서울대가 국보에 찍은 '빨간 도장'

서울대학교는 2006년 조선왕조실록을 기증받자마자 규장각 도장을 마음대로 찍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지인’이라는 날인이 보인다.
▲ 2006년 반환된 조선왕조실록 서울대학교는 2006년 조선왕조실록을 기증받자마자 규장각 도장을 마음대로 찍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지인’이라는 날인이 보인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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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반환운동에 동참하지 않고 기증받은 서울대학교가 <조선왕조실록>에 규장각 도장을 찍어버린 것이다. 문화재청은 당시 반환 실록 특별전을 준비하던 중 각 책에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지인'이라는 날인을 발견했고, 서울대학교에 해명을 요청했다. 당시 서울대학교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자료운영세칙 제5조에 의해 진행된 절차로 문제가 없다, 잠깐 머물렀다 해도 기록을 남겨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국보인 <조선왕조실록>을 손상한 행위로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다. 이에 서울대학교가 도장을 찍은 행위는 처벌받아야 하지만 아직까지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2006년 도쿄대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반환받은 후 배포한 보도자료로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공식 요청한 바 있다고 써 있다.
▲ 서울대학교가 배포한 보도자료 2006년 도쿄대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반환받은 후 배포한 보도자료로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공식 요청한 바 있다고 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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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의 '엉뚱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도쿄대학교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반환받을 2006년 당시 서울대학교는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해 오랜 시간 서울대가 노력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프랑스에 있던 문화재를 찾기 위해 노력했더니 일본에 있는 문화재가 왔다는 다소 엉뚱한 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문화재청의 '큰 구멍'... 해명만으로 끝날 일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대하는 태도는 문화재를 대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앞으로 이러한 비극의 역사가 종결되길 바란다.

비록 문화재청이 "다시는 인증서를 잃어버리지 않겠다"라고 해명했지만, 문화재청의 기록물 관리 체계에 큰 구멍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7일 문화재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세계기록유산 인증서 역시 분실된 상태다. 게다가 세계유산 7건(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화성, 경주역사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의 인증서 원본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 불가능하다.

차라리 국가의 중요 기록을 총괄하는 국가기록원에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재의 인증서를 관리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유네스코 유산 등재 인증서는 한낱 종이에 불과하지 않다. 문화재의 가치를 '인증'하는 문서인데 그 중요성을 어찌 논할 수 있을까. 문화재청의 해명만 듣고 끝날 일이 아니다.


태그:#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인증서, #문화재제자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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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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