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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자신의 시집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었다. 신비롭고 묵시적인 시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전하려는 독자와의 소통법은 아니었을까. 2014년 첫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를 출간한 신미나 시인도 그림을 그린다.

여성 싱고와 고양이 이응옹을 등장시켜 7080세대가 겪었을 법한 삶의 단편을 현대시를 빌어 그림에 녹여냈다. 나희덕, 문태준, 도종환 중견 시인과 박준, 성동혁, 박소란 젊은 시인들의 시도 담았다.

"대부분은 알려진 분들로 했어요. 한번이라도 들어본 시인의 시로 하면 조금 더 친근하기는 하잖아요? 익숙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가 무엇일까? 시를 읽고 제 에피소드를 생각했어요."

지난 6월 출간한 시 웹툰 에세이의 제목은 <詩누이>(창비)다. 시를 소개하는 누이. 그림보다는 시가 먼저다. 그림은 시를 소개하기 위한 작가 나름의 소통 방식이다. 필명은 주인공 이름과 같은 싱고로 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명명을 한 거예요. 그 기분을 싱고라고 표현한 것이죠."

지난 7월 13일,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신미나 시인을 만났다.

신미나 시인 _ 『詩누이』그림 전시회에서
 신미나 시인 _ 『詩누이』그림 전시회에서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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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지 않은 이들에게 전하는 그림 편지

"학교 칠판에 그림을 붙여놓는 아이들? 그중에 하나였어요. 어릴 때부터 잘한다고 들으니까 더 즐기더라고요."

어린 시절, 글과 그림에 대해 칭찬을 받으며 작가의 꿈을 품은 그는 2007년 시 '부레옥잠'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올해 등단 10년째다. 시를 써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 속에서도 언젠가는 그림으로 시를 전할 것 같은 예감은 간직하고 있었다.

"그림을 워낙 좋아했고, 남들이 시도해 보지 못한 것을 시작할 때가 있다면 그때 한번 해봐야지 했죠. 시집 낼 때는 늘 우울했죠.(웃음) 이 작업을 하면서는 일상적인 재미를 많이 찾게 되어서 조금 더 쾌활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직장을 관두고 난 후인 2014년이다. 평소 감으로만 익혔던 포토샵, 일러스트를 고용노동부 취업지원 과정을 통해 배우면서다.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으니까 손이 빨라지더라고요. 하고 싶은 걸 살짝 해보자 해서 웹툰을 그려봤어요. 쑥스러워서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조용히 그렸는데 아름아름 소문이 나는 거예요."

한 포털 사이트에 올리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원래는 도전 만화, 정식 연재 순으로 가는데, 제 경우는 시인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것 같아요."

지난 6월, 3년간의 작업물 중 34편을 골라 시 웹툰 에세이 <詩누이>를 출간했다. 작가의 말에서 '시와 친해지고 싶은데, 어떤 시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하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이 이 책을 펼쳐주세요'라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중학교, 고등학교 이후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이 읽으면 딱 좋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를 많이 읽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매스컴에서는 시가 붐이라고 많이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대중성이 있거나 보급되는 장르가 아니에요. 시는 피드백이 빨리 오지 않거든요. 웹툰은 독자들 반응도 바로 볼 수 있어 어떤 면에서 소통이 된다고 할까요? 그런 점이 다르더라고요."

너와 나, 어제와 오늘... 모든 세대의 이야기

시 웹툰 에세이 <詩누이> 표지
 시 웹툰 에세이 <詩누이>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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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의 '엄마 걱정' 시구 '열무 삼십 단을 /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는 고무 대야에 절인 배추를 담고 오일장에 가는 엄마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안희연의 '몽유 산책'의 시구 '두 발은 서랍에 넣어두고 멀고 먼 담장 위를 걷고 있어'는 장롱 속에 숨은 어린아이로 상상된다. 

원고 마감 직전의 아찔함, 친구에게 이끌려 따라갔던 곳이 다단계 영업장이었던 웃기고 슬픈 일 등 전반부에 작가의 경험을 담았다면 후반부에는 세월호 참사, 비정규직의 현실, 여성 차별 등 사회 이슈에 대해 독자와 함께 고민해보고자 했다.

특히 그는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을 위한 생일시 작업 때, 몸살이 날 만큼 힘이 들었다고 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에 다가가는 것, 공감을 이끌어낸 것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말의 책임을 지고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방향을 가기 위해 어떤 생각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 해서 뒷부분에 사회적 이슈를 골고루 넣자고 했어요. 지금 20대는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저는 IMF를 겪었지만 이십 대도 그때 못지않잖아요? 그들보다 일찍 지나온 언니로서 다독일 수 있는 이야기, '나도 이런 시대를 겪어 왔다' 진솔하게 적어온 거죠. 다단계에 끌려간 경험도 나오는데 실제 경험이에요. 문학이 꼭 책 속에 갇혀야 한다는 게 답답했어요. 삶과 밀접하지 않은 문학을 저는 믿지는 않는 편이에요. 물론 자의식 과잉으로 관념적, 형이상학적인 것들도 그 나름의 매력과 탐구의 미학이 있지만 저는 실생활과 연계된 것 속에서 소재를 찾아요."

이응옹과 엄마는 실제 가족이 모델

책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 이응옹은 인간 나이로 69세다. '그만 징징거려라냥 인생은 욜로야', '문제집이 베개네 몇 년째 have+P.P냥' 잔소리를 하지만 빈말 같지 않아 싱고는 이응옹이 든든하다. 싱고 한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닌 온 세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필요한 할아버지 캐릭터다.

"싱고의 어린 시절은 옛날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이외로 독자의 반응을 보니까 엄마가 어린아이들에게도 많이 읽어주시더라고요. '엄만 어릴 때 이랬어' 하면서요. 감정이란 게 환경의 차이도 있지만 어릴 때 느끼는 건 비슷한 것 같아요. 아이들과 같이 읽는다는 학부모가 많았어요."

이응옹은 실제로 그와 함께 10년째 살고 있는 고양이다.

"동물이 줄 수 있는 순수한 위로가 있어요. 사람이 못해주는 거요. 제가 슬프거나 기쁘거나 우울할 때는 누구보다 내밀하게 제 감정을 알죠. 반려견, 반려묘들이 주는 또 다른 세계가 있더라고요. 가족이에요. 제가 어떤 기분인지 가장 빠르게 파악해요. 신기하죠?"

이응옹과 함께 등장하는 어머니도 실제 어머니를 모델로 했다.

"어머니가 쿨하세요. 너무 늙게 그리셨다고 하면서도 좋아하시더라고요. 주름을 너무 많이 그렸나 봐요.(웃음)"

시 웹툰 에세이『詩누이』출간 기념 전시회
 시 웹툰 에세이『詩누이』출간 기념 전시회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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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누이』그림 전시회
 『詩누이』그림 전시회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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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기다림, 그림은 지금 이 순간

그는 시 쓰기와 그림 그리기의 차이는 집중도라고 했다. 그림은 7시간 앉아서 그리면 그린만큼의 결과물이 나오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시는 제가 아무리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크게 예열되거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한 줄도 못 써요. 좀 묵혀두는 편인 같아요. 첫 시집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래된 감정을 들여다보는 자의 입장이거든요. 웹툰은 지금 이 순간이에요. 지금 만나는 기자님의 인상, 키위주스의 씨앗을 보고 느끼는 사소한 것들 등 관찰이 되니까요. 시는 웹툰처럼 일상적으로 나오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순간이니까요."

시 읽기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쉬운 시가 꼭 좋은 시는 아니라고 했다.

"그건 착각인 거예요. 언어는 고도의 훈련이라서 읽는 분들도 사실 훈련이 되어야 하거든요. 언어적인 탐미의 과정, 그 수고로움이 안에 있으면 같이 노력해서 같이 읽어주는 맛도 있거든요. 이 책은 좀 더 쉬운 쪽으로 풀이하려고 했지만 모든 시가 이렇게 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은 살짝 위험한 것일 수 있다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냈거든요. 원작자들이 '너무 내 시를 코믹하게 해놓았어' 화가 날 수도 있잖아요? 혹시라도 에피소드를 빼달라고 하면 빼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너무 지지해주셨어요. 오히려 격려를 받아서 제가 힘을 냈죠."

작가가 추천하는 책 속의 웹툰

'내 이름은 홍순영' _"세월호 이야기를 제 목소리로 주장하지 않으면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당신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남자만으로는 이유로' _ "강남역 살인사건이 났을 때 올렸던 에피소드예요. 또 여자 입장이기 때문에 남자 입장도 궁금해서 제 주변 동생과 오빠에게 전화해서 이 사회에서 남자가 겪는 불안감은 무엇일까 물었어요. 여성 평등을 큰 목소리로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누나, 동생, 며느리, 친구일 수도 있잖아요? 그 입장에서 조금씩 다른 관점으로 서로 돌려서 비춰봤으면 하는 거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詩누이

싱고 지음, 창비(2017)


태그:#신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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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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