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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초중고생에게 가장 버거운 과목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수학이 첫 손에 꼽힐 것입니다. 덧셈, 뺄셈을 해야 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이후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수학은 많은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줍니다. 수학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수학 잘한다 소리를 듣는 학생들까지도 심적 부담을 느끼는 과목이지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자주 거론하는 AI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과목 또한 수학입니다. 오늘날 첨단 정보 시대를 연 디지털 기술 역시 수학적 원리과 사고 방식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코딩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든지, 수학과 산업 현장을 연계한 '산업 수학'의 영역을 강조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시류에 편승해서 자신이 속한 분야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시도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과학 기술 발전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수학이 그 중심에 있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왜 굳이 요즘에 와서 갑자기 중요성이 커진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그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 강국이 되고 싶다면, 이런 피상적인 제안들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초중등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이 받는 수학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줄여,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하는 교육 방식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스탠퍼드 수학공부법>의 표지
 <스탠퍼드 수학공부법>의 표지
ⓒ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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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수학공부법>은 기존의 수학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학생의 창의성을 북돋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문제를 내고 해답을 맞추는 것이 아닌, 문제를 푸는 과정과 시행착오의 경험을 중시하여 창의적인 사고로 이끌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수학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만큼 내용이 쉽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접해 본 수학 관련 책들은 대부분의 저자들이 쉽게 썼다고는 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겐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으니까요.

저자인 스탠퍼드 대학 수학교육과 교수인 조 볼러는 영미권에서 '수학 교육 분야의 퀴리 부인'으로 불리는 혁신가입니다. 그녀의 이론은 인간이 새로운 것을 배우면 배울수록 두뇌가 성장하고 능력이 개발된다는 최신 두뇌 과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1장부터 3장까지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집중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시급한 것은 교사 및 학부모가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와 수업이 보다 평등을 지향하고, 보다 객관적인 견해에 따라 수학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뇌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에 따라 대화와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수학적 재능을 가졌다고 하는 몇몇 소수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수학을 잘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수학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학생은 물론, 어떤 배경 지식을 가진 학생이든 간에 높은 수준의 수학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p.28에서 인용)

흔히 학생들에게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하면, 숫자와 계산, 절차에 관한 학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나중에 사회에 진출해서 일상 생활이나 업무에 전혀 활용되지 않을 것은 알지만, 논리적 사고 능력을 배울 수 있는 과목이라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런 대답들은 실제 수학자들이 생각하는 수학이나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수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수학 관련 기업 울프럼 알파(Wolfram-Alpha)의 이사 콘래드 울프럼의 TED 강연을 인용하여, 수학을 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단계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1. 제대로 된 질문 만들기
2. 실제 상황의 문제에서 수학 문제로 바꾸기
3. 계산하기
4. 수학적 모델에서 실제 상황으로 전환하고, 원래 문제에 대한 답인지 검증하기(p.64 인용)


현재의 수학 교육 방법은 3번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으며 1, 2, 4번에 대해 더욱 훈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고, 수학적 모델을 세우며, 결과를 분석하고, 수학적 해답을 현실 세계의 답으로 끌어낼 수 있는 사람"(p.65 인용)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의 제안에 동의하면서 수학을 하는 종합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교수법과 과제들을 제안합니다. 4장과 5장은 풍부한 실례와 알기 쉬운 도판, 그리고 인상적인 성공 사례들을 통해 그런 제안을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특히 여름방학 방과후 교실에서 '점점 많아지는 사각형의 개수 세기 문제'에 도전한 세 명의 학생 사례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1에 해당하는 세 학생은 한 명을 빼고는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70분 동안 모둠 과제를 수행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문제의 해답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 학생들은 어떻게든 정답을 빨리 찾아 내는 데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풀이 방법을 상상해 보고 여러가지 시행 착오를 감수했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진짜 수학적인 훈련을 하게 된 것이지요.

저자는 문제와 그 풀이 과정을 다양하게 시각화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학생의 수학적 사고 능력이 증대되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수학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수학 관련 앱과 웹사이트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6장부터 8장까지는 저자가 주장하는 수학 교수법에 입각한 수학 교육 과정의 설계, 수학 시간의 반 편성 방법, 올바른 평가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6장은 실제 교사나 학부모가 아닌 일반인들도 눈여겨 볼 만한 주장들이 담겨 있지요.

흔히 수준별 반 편성을 해서 학생마다 배울 수 있는 최고 난이도를 다르게 만드는 것이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하는 사람은 더 어려운 것을,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보다 쉬운 수준까지만 배우면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고교 수학 기본 과정에서 미적분을 빼자는 시민 단체들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그런 통념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성적이 좋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섞여 있는 모둠 수업이 오히려 서로에게 더 큰 자극과 도움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뇌과학적으로 볼 때 누구든 얼마든지 수학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데도 그것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학업 성취도가 다른 학생들이 모둠을 이루고, 누구든 쉽게 토론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과제를 제시하되, 그것을 통해 아주 높은 수준의 수학적 개념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저자의 수업 모델입니다.

마지막 9장에는 실제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단계별 지침이 들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수학 교육 방식에 동의하게 된 선생님이나 학부모라면 한번쯤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부록에는 본문에서 제시되었던 다양한 문제 유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도판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큰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느라 수학 교과서를 가끔씩 보게 되는데, 예전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자리 수 이상의 덧셈, 뺄셈만 하더라도 학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수를 조합하여 쉽게 계산하는 방법을 찾도록 유도하더군요.

그러나 여전히 계산의 비중이 높았고, 매 단원이 끝날 때마다 종래의 지필고사식 단원 평가 시험을 보는 등 여전히 학생들에게 '수학은 답을 맞춰 점수를 평가받는 과목'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이래서는 요즘 아이들 역시 기성 세대처럼 십중팔구 수학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이 넘었고, 새 교육부 장관 후보자도 지명되었습니다. 벌써부터 대통령과 장관 후보자의 평소 소신을 바탕으로 한 교육 체제 변화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대학 및 고교의 서열화 없애기, 입시 위주 교육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수능과 내신의 절대평가제 같은 이야기가 그것이지요.

이렇게 큰 틀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의 혁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혁신은 일선 학교 선생님들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정한 가이드라인이나 정책적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 실현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사교육으로 인한 교육 격차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공교육의 교육 방식과 내용이 질적으로 뒤처지는 탓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의 교육 정책 담당자들에게 이 책 <스탠퍼드 수학공부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비록 수학 교과에 국한된 내용이지만, 답을 모색하고 시행 착오를 겪는 시간을 충분히 부여함으로써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 방식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가 이런 최신 연구 성과와 이론들을 앞장서서 검토하고 소개하여, 실제 공교육 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나아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창의적인 인적 기반도 함께 마련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스탠퍼드 수학공부법>, 조 볼러 지음, 송명진/박종하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2017. 4. 15.)



스탠퍼드 수학공부법 - 스스로 답을 찾는 힘

조 볼러 지음, 송명진.박종하 옮김, 와이즈베리(2017)


태그:#스탠퍼드 수학공부법, #조 볼러, #와이즈베리, #송명진, #박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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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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