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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텍고, 경북항공고, 경산 문명고.

기어이 국정교과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고 한 학교들이다. 경북 오상고는 연구학교를 신청했으나, 학부모와 학생 등의 반대에 부딪혀 신청을 철회했다.  

이들 학교들의 공통점은 사립학교라는 것이다. 왜 국가가 직접 설립하여 운영하는 국립학교나 교사가 교육공무원인 공립학교는 한 학교도 국정교과서를 하겠다고 하지 않는데 유독 사립학교들만 국정교과서를 고집할까?

국정교과서 빨리 확정하라고 목소리 높이는 사학법인협의회

사학법인협의회의 국정교과서 촉구 보도자료. 법적으로 교과서 채택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사학법인들이 국정교과서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하는 보도자료를 내었다. 왜 국공립학교가 아니라 사립학교들만 국정교과서 채택을 고집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사학법인협의회의 국정교과서 촉구 보도자료. 법적으로 교과서 채택에 아무런 권한이 없는 사학법인들이 국정교과서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하는 보도자료를 내었다. 왜 국공립학교가 아니라 사립학교들만 국정교과서 채택을 고집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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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전국 사학법인들의 모임인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이하 '사학법인협의회')는 지난 해 11월 30일 국정교과서를 빨리 발행하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국공립학교들이 아니라 사학법인들과 이사장들이 국정교과서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사실 교과서 채택 문제는 이사장을 비롯하여 사학법인이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사장이나 이사가 교과서 채택에 개입하면 부당 학사 개입으로 사립학교법 제20조의2에 의해서 임원 승인을 취소될 수 있다. 명백한 불법이라는 의미이다.

국가공무원으로 국가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는 국공립학교들이 모두 국정교과서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직접적 통제를 받지 않는 사립학교들이, 그것도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교사들이 아니라 이사장들과 사학법인들이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대한민국 사립학교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특히, 교사들의 의사까지 조작하여 국정교과서를 강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문명고 이사장은 이 사학법인협의회의 이사이자 경북지회 회장이다. 이 학교가 교사들의 의견과 법적 절차마저 무시하면서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국정교과서 사태가 보여주는 사립학교 학교운영위원회의 실상
서울디지텍고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2017.1.31) 서울에서 유일하게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겠다는 서울디지텍고의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에 의하면, 교장과 교감의 국정교과서 채택 주장에 대해서 단 한명의 교사도, 학부모도, 지역의원도 질문이 없고, 단 한 명의 토론도 없었다.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디지텍고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2017.1.31) 서울에서 유일하게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겠다는 서울디지텍고의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에 의하면, 교장과 교감의 국정교과서 채택 주장에 대해서 단 한명의 교사도, 학부모도, 지역의원도 질문이 없고, 단 한 명의 토론도 없었다.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서울디지텍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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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1일 서울디지텍고에서 학교운영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의 주요 안건 중 하나가 국정교과서 채택 문제였다. 이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 날 학운위 회의록을 보자.

교감(학운위원은 아님)이 "국정교과서와 비상교육으로 복수 채택하여 다양한 시각의 교육을 통해 균형잡힌 역사교육을 하고자 합니다. 여건이 되면 연구 학교를 신청하고, 신청하지 못하면 교육부에 교과서를 신청하고자 합니다"라면서 국정교과서 복수 채택 제안 설명을 했다.

질의와 토론을 갖도록 하겠다는 위원장의 발언에 이어서 곽일천 교장이 "오늘 최종본이 공개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근대사 비중을 높게 한 점과 역사의 강조점을 균형 있게 폭넓게 설명하고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학생들이 이런 부분을 토론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면서 추가로 국정교과서 복수 채택을 하겠다는 발언을 추가한다.

근현대사를 대폭 줄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정교과서가 근대사 비중을 높였다는 허위 사실을 근거로 국정교과서 채택을 부추긴다. 그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의 질의나 토의는 없었다. 어떤 교사도, 어떤 학부모도, 어떤 지역위원도 국정교과서 채택에 대해서 질문도 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채택을 결정하는 학운위에서 단 하나의 질의도 없었고, 교장과 교감의 도입 주장을 제외한 어떤 토론도 없었던 것이다.

사립학교에서는 교사의 대표인 학운위 교원위원을 교사들이 직접 뽑지도 못한다. 3배수 정도로 추천을 받아서 학교장이 자기 마음대로 임명한다. 교사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1등을 한 교사를 제외하고 꼴찌를 한 교사를 학교장이 학운위원으로 임명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학교장이 학운위 회의 결과를 따라야 할 의무도 없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의 실상이다. 국공립과 다르게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는 심의의결기관도 아니고 자문기관이다. 그래서 "국공립학교와 달리 자문기관이기 때문에 반드시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한다. 

서울디지텍고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면서 단 하나의 질문도, 자유로운 토론도 없었던 것은 이런 구조적 모순의 결과다.

교과서 채택 문제에 왜 교사들 의견은 없을까

지금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겠다고 나서는 학교들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채택하는데 교사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서울디지텍고, 항공고, 문명고 모두 교장이나 법인이 국정교과서 채택에 앞장 서고 있지, 수업 하는 교사들이 국정교과서를 주장하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거꾸로 김천고에서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국정교과서를 반대했고, 오상고는 10여명의 부장들이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서울디지텍고를 조금 더 자세히 보자. 서울디지텍고가 국정역사교과서를 강행하면서 정작 역사와 사회 교사의 입장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온다. 실제로 이 학교에는 역사 교사가 1명인데 기간제교사이다. 현재는 3월에 새로 수업을 시작하는 신임 기간제 교사뿐이라고 한다. 

그 기간제교사가 국정교과서를 채택해 달라고 했을 가능성도 낮아보이고, 혹시 그랬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것이 진심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그러니,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논쟁에 역사와 사회선생님을 비롯한 이 학교 평교사들은 없고 교장 선생님의 주장만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장면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겠다고 할 때에도 곽일천 교장만 있었지 정작 그 학교 역사 교사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서울교육청이 추진한 친일인명사전의 도서관 비치를 거부할 때도 사서교사나 역사교사가 반대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최근 학생들의 종업식에서 학생들에게 교장이 1시간이나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훈화(자기는 토론회라 함)를 했다는데, 이에 대해서도 디지텍고 교사들의 입장이 무엇인지 알려진 바가 없다.

서울디지텍고를 운영하는 청지학원의 족벌운영 현황이다. 청지학원 역시 전형적인 대물림 족벌사학이다. 학교, 이사회, 행정실이 족벌로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 이런 학교에서 이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다.
 서울디지텍고를 운영하는 청지학원의 족벌운영 현황이다. 청지학원 역시 전형적인 대물림 족벌사학이다. 학교, 이사회, 행정실이 족벌로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 이런 학교에서 이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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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과서를 채택하는 문제에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사들의 입장은 없고 교장의 의견이 학교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가? 학교장과 이사장을 정점으로 하는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독특한 구조, 대물림족벌사학의 폐쇄된 권력주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사학의 기형적 구조가 근본 원인

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겠다는 학교가 사립학교인지, 그 사립학교에서도 수업하는 교사의 입장은 없고 교장과 법인 입장만 나오는지 서울디지텍고를 통해 따져보자.

서울디지텍고는 곽일천 교장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학교 설립자다. 초대 이사장인 아버지와, 초대 교장인 어머니가 공동설립자로 되어 있다. 설립자인 초대 이사장과 초대 교장이 차례로 작고한 뒤 2010년 아들인 곽일천씨가 교장으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그 자리에 있다.

학교장뿐 아니라 이사장과 행정실장까지 대물림하였다. 이 학교 이사장은 곽일천 교장의 손위 처남이다. 그러니까 교장이 이사장의 매부인 것이다. 행정실장은 교장의 부인이니까 이사장의 여동생이다. 그리고 또 다른 행정실 직원도 친인척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교장, 이사장, 행정실장, 행정실직원 등이 가족이거나 친인척인 셈이다. 곽일천 교장은 이 학교를 운영하는 청지학원의 이사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대물림 족벌사학이다.

서울디지텍고의 학교회계 중 세입(수입) 현황 분석이다. 1년 50억이 넘는 예산 중에서 국민 혈세와 학생/학부모 부담이 99%에 이르고, 법인(청지학원)이 부담하는 기여금은 전체의 0.3%도 안 된다. 책임과 권한의 심각한 괴리 현상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서울디지텍고의 학교회계 중 세입(수입) 현황 분석이다. 1년 50억이 넘는 예산 중에서 국민 혈세와 학생/학부모 부담이 99%에 이르고, 법인(청지학원)이 부담하는 기여금은 전체의 0.3%도 안 된다. 책임과 권한의 심각한 괴리 현상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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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철저하게 족벌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에서 정작 법인(청지학원)이 학교 운영에 기여하는 바는 정말 미미하다. 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학교회계를 분석한 결과 청지학원이 부담하는 법인전입금(학교재정에 대한 법인기여금)은 전체 학교회계 수입의 0.3%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까 재정적으로 학교운영에 법인이 기여하는 바가 0.3% 이하라는 것이다.

학교회계 결산서에 따르면, 서울디지텍고의 1년 예산은 2014년 52억, 2015년 58억 정도다.(2016년 결산은 미공개 상태라 알 수 없음.) 이 중에서 교육청과 구청 등 정부지원금, 즉 국민혈세로 지원되는 돈이 무려 40억, 비율로는 74.4%로 압도적으로 많다. 다음으로 수업료, 입학금, 방과후학교비 등 학부모와 학생이 부담하는 몫이 13억 내외로 전체의 24.3% 정도 된다. 정부지원금과 학부모/학생 부담금을 더하면 전체 학교 수입의 99%에 이른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학교를 운영하는 법인인 청지학원이 부담하는 법인전입금은 겨우 1400만 원 정도로 전체의 0.3%도 안 된다. 최소한의 법정전입금에도 못 미치는 액수이다.

이런 상황에도 곽일천 학교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들이 학교장, 이사장, 행정실장으로 학교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권한과 책임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립학교의 권력구조 개편이 사립학교법 개정 때마다 논의되는 이유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5년을 비롯하여 사립학교의 이런 기형적 권력구조를 개편하겠다는 사립학교법 개정 논의가 있을 때마다 사학법인, 특히 족벌대물림사학들과 개신교 사학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공교롭게도 이 서울디지텍고는 족벌대물림사학이면서 개신교사학이다.

사립학교도 학생을 국가로부터 위탁받아 교육하는 공교육 기관이고, 그 재정의 대부분을 국민혈세와 학부모 부담으로 충당하고 있다면 권력구조 역시 그에 맞게 바꿔야 한다.

적어도 교과서 채택을 비롯한 교육과 직접 관련된 문제만큼은 이사회와 학교장의 입김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서관에 어떤 책을 비치할 것이냐, 수업에 어떤 교재를 사용할 것이냐 역시 상부권력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과 학부모의 참여를 배제해서도 안 된다. 세금을 내는 주체이고, 수업료 등 학교재정을 직접 부담하는 주체이며, 교육의 또 한 축이기 때문이다.

서울디지텍고를 비롯한 사학들이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겠다면서 계속되는 이 혼란은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특히, 자신들이 사용할 교과서를 채택하는 문제에서조차 소외되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교사들의 처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책임은 없고, 권한만 있는 사립학교의 권력구조, 대물림되는 족벌사학의 폐쇄적 운영구조를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국정교과서 사태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국정교과서 사태의 또 다른 교훈이다.


태그:#국정교과서, #서울디지텍고, #족벌대물림, #곽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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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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