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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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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가 비틀즈의 전성시대였는데, 이 노래는 비틀즈의 명곡들 사이에서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에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신영복의 세계여행)을 처음 접했습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문명과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따뜻한 글과 그림 엽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데 큰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며 그 감동으로 막연하게 세계일주에 대한 꿈도 품게 됐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되는 2017년, 배낭여행자가 되어 그 꿈을 실행에 옮깁니다. 당신이 보낸 첫 번째 엽서에 적혀있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에 무모한 용기를 얻어 여행지에서 편지를 띄웁니다. 이 여행기는 당신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당신들과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 기자 말

일명 '빵산'(팡지아수카르)에서 해질녘 바라 본 리우데자네이루 전경
 일명 '빵산'(팡지아수카르)에서 해질녘 바라 본 리우데자네이루 전경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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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일까?

외국의 국제공항들은 그 도시를 대표하는 인물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인을 맞이하는 리우데자네이루 국제공항의 명칭은 '톰 조빔' 공항입니다. 공항에서는 따사로운 햇살과 바다 그리고 여유로움이 연상되는 경쾌한 음악이 잔잔히 흘러 나옵니다. 이건 또 무엇인가?

열광의 대명사 리우 카니발은 아직 몇 주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브라질은 삼바였습니다. 굳이 클럽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거리에서 해변에서 타악기 특유의 통통 튀는 듯한 장단과 격정적인 리듬을 들으면서 내가 브라질에 와 있음을 실감합니다.

삼바는 흑인들의 한(恨)에서 시작된 음악입니다. 포르투갈 식민지배 시절, 사탕수수농장과 커피농장의 인력수급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낯선 땅에서 짐승 같은 삶을 이어갑니다. 고된 노동과 핍박에서 오는 피로감과 서러움,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등을 밤이면 타악기 장단에 맞추어 춤과 노래로 풀어내며 견디었는데, 그것이 바로 삼바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삼바는 브라질 기층민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지친 일상의 해방구 역할을 하며 브라질의 대표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렇듯 많은 브라질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아온 삼바지만 기본적으로 흑인문화에서 태동하여 빠른 비트에 강렬한 리듬을 가지다 보니, 유럽계 이민자들이 중심을 이룬 백인과 중산층 사이에서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에 삼바와 재즈를 결합하여 템포를 완화시키고 노래하기 쉬운 감성적인 멜로디의 음악이 출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보사노바입니다. 비모음(鼻母音)이 발달한 포르투갈어는 비너스의 여신을 매혹시켰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포르투갈어에 시(時)적인 가사를 붙여 읊조리듯 노래하는 보사노바는 삼바가 가지지 못한 낭만성을 바탕으로 브라질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와 박학기의 '향기로운 추억' 등이 대표적인 보사노바풍의 노래로 꼽힙니다.

[보사노바의 대표 명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이파네마 해변 골목에 자리한 레스토랑에 걸려 있는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악보.  이 노래의 실제 대상이 되었던 소녀가 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파네마 해변 골목에 자리한 레스토랑에 걸려 있는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악보. 이 노래의 실제 대상이 되었던 소녀가 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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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보사노바의 열풍을 몰고 온 주역이 바로 리우 국제공항 이름의 주인공, 작곡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입니다(톰 조빔이란 애칭으로도 불립니다). 공항에서 흘러 나온 기분 좋은 음악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해소가 됩니다. 조빔은 이파네마의 해변 근처에서 작업을 하던 중 해변을 자주 찾던 소녀에게 영감을 받아 보사노바의 대표작으로 기록되는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를 발표하게 됩니다. 

당시가 비틀즈의 전성시대였는데, 이 노래는 비틀즈의 명곡들 사이에서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조빔 자신이 성장한 고향이기도 한 이파네마 해변이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매김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리우를 사랑했고 리우가 사랑한 한 음악가 조빔을 도시 간판으로 내세울 만합니다.

보사노바는 삼바와 음악 태동의 배경과 느낌이 상이하지만, 결코 대척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사노바가 재즈와 삼바에 뿌리를 두고 있는 면에서도 그렇겠지만, 두 장르로 브라질 사람들의 음악적 정서가 더 풍부해졌고, 두 장르 모두 브라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정과 여유, 긴장과 이완, 일상과 일탈 …. 어느 한쪽으로만 쏠린다면 사람이든 사회든 결코 건강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보사노바가 매우 브라질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사노바(Bossa Nova)라는 말 자체가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경향, 새로운 물결'을 뜻합니다. 포르투갈로부터 분가(分家)의 형태로 독립을 했지만, 기존의 것들을 넘어서는 새로움을 창조하여 지구촌 문화를 풍부하게 했다는 면에서 '문화의 용광로' 브라질과 잘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파네마 해변에는 조빔의 이름을 따서 조성된 골목이 있습니다. 그 골목의 한 카페에서는 매일밤 보사노바 라이브가 진행됩니다.
 이파네마 해변에는 조빔의 이름을 따서 조성된 골목이 있습니다. 그 골목의 한 카페에서는 매일밤 보사노바 라이브가 진행됩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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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2억이 넘는 브라질 인구에서 백인과 유색인(혼혈과 흑인, 동양계를 포함)의 비율은 거의 1:1에 가깝습니다. 다인종 다민족 국가이지만 브라질은 상대적으로 인종차별이 적은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코파카바나, 이파네마 해변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색과 빈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라파, 산타 테레사 지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색은 많이 차이가 납니다.

식민지배, 노예무역 등 아픈 과거사의 흔적이 빈부격차와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브라질 사회모순과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인종갈등이 미국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야기겠지요.

리우의 지하철에 앉아 오가는 많은 얼굴을 바라봅니다. 얼굴색 하나로 고스란히 한 사람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누군가는 과거 이주자였고 누군가는 과거 원주민이었으며, 누군가는 지배를 했고 누군가는 박해를 받았는지 다 드러납니다. 거의 단일민족국가로 살아온 우리로서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미묘한 정서가 존재하리라 여겨집니다. 이 미묘한 갈등의 골을 다스릴 수 있는 사회적 장치는 무엇인지도 생각해봅니다.

여행객들로 언제나 북적이는 '세라론의 계단'
 여행객들로 언제나 북적이는 '세라론의 계단'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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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론의 계단'을 오르는 양쪽 벽면도 갖가지 문양과 색채로 구성된 타일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잘 찾아보면 태극기도 볼 수 있습니다.
 '세라론의 계단'을 오르는 양쪽 벽면도 갖가지 문양과 색채로 구성된 타일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잘 찾아보면 태극기도 볼 수 있습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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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에 있으면서 알록달록한 벽화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집이나 골목 담벼락에 꽤나 익살스러운 그림부터 예술적 풍모가 느껴지는 멋진 그림까지 다양한 색상이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라파 근처에 있는 '세라론의 계단'입니다.

칠레 출신 예술가 조지 세라론이 215개의 계단을 2000여개의 타일로 장식하면서, 평범한 빈민가의 골목이 사람들이 북적이는 대표 관광명소로 변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공사현장의 자재들을 주워다가 세라론 혼자 시작한 작업이지만, 여행객들과 인터넷을 타고 소문이 퍼지면서 전세계 60여개 국가의 사람들이 보내준 타일로 계단과 골목은 더욱 화려하게 변모하게 됩니다. 

작가가 표현한 주제는 브라질, 대중문화, 불교, 각 나라의 국기 등 색상만큼이나 다채롭습니다. 한 예술가의 아이디어에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멋진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세라론의 계단을 걸어나오며 이곳 역시 매우 '브라질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의 과정 속에서 아픔과 모순은 존재하지만, '인종의 용광로' 브라질은 조화로움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램도 택시도 버스도 그리고 사람도 ...... 브라질은 노란색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트램도 택시도 버스도 그리고 사람도 ...... 브라질은 노란색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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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 보면 어느 곳은 바람으로 기억이 되고, 어느 곳은 사람으로 기억이 됩니다.  아마 리우데자네이루는 나에게 음(音)과 색(色)의 도시로 기억될 것입니다. 여러 색 중에서도 특히 노란색으로 각인될 것 같습니다. 국기에서부터 버스, 택시, 트램까지 브라질을 대표하는 노란색이 일관되게 펼쳐져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브라질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친절한 모습에서 가슴과 감성의 에너지를 대표하는 노란색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리우의 벽면을 장식한 그림들은 대체 누가 다 그렸을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나는 라파지역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리우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골목을 걸어 나오면서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 한 명과 소녀 한 명이 작은 페인트통을 들고 벽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런 평범한 낙서를 통해서 그림이 그려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시간 뒤 숙소로 돌아가니 길에 소년과 소녀는 사라지고 벽화 하나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흐믓한 미소로 기분 좋게 브라질의 마지막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시멘트 블록 사이로 삐져 나와 생명을 틔운 작은 화초에 물을 주는 그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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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6년 말부터 약 1년간의 일정으로 세계일주 인문기행을 하고 있습니다.



태그:#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보사노바, #조빔, #세라론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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