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기록된 가장 극악하고 잔인한 범죄들은 종교 또는 그와 비슷한 성스러운 동기라는 미명아래 행해져 왔습니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역사책 속 극악하고 잔인한 범죄들은 종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지 탈환을 명분으로 대량 학살을 자행한 십자군 전쟁, 기독교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마녀로 몰아 죽게 한 마녀사냥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종교적 정의'라는 이름 하에 진행된 범죄들이었다.

종교 이외에도, 우리는 다양한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범죄들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히틀러는 자신을 정의롭다고 생각했으며, 독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사건들이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일까?

 영화 <뜨거운 녀석들>(2007) 포스터.

영화 <뜨거운 녀석들>(2007) 포스터.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뜨거운 녀석들> 속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범죄들

영화 <뜨거운 녀석들>(2007)의 배경은 영국의 시골 마을인 샌드포드다. 샌드포드는 범죄율 0%의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다. 영화는 경찰 니콜라스 엔젤이 샌드포드에 부임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런던에서 검거율 400%의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지만, 경찰청 내 간부들과 동료들의 견제를 받아 시골로 좌천된다. 또한 일 중독이라는 이유로 여자친구에게 실연을 당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마을은, 런던과는 정반대인 곳이었다. 엔젤은 무료한 업무를 전전하며 그럭저럭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마을에 끔찍한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게 된다. 이에 엔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있음을 감지하지만, 마을사람들은 그냥 사고라며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던 엔젤은 엄청난 비밀을 발견한다. 일련의 사고들은 모두 마을 공동경비대인 NWA가 저지른 살인이었다. 그들은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범죄율 0%의 평화로운 마을의 이면에는 끔찍한 범행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짓을 저질렀냐"는 엔젤의 말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정의를 주장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현실 속 샌드포드는 여전히 진행 중

마을 공동경비대의 범행 동기는 다소 황당하다. 마을 주최 연극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연기를 못했다는 이유로, 광대 분장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후드를 쓰고 길을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그들은 살인을 저질렀다. 그들이 생각하는 마을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말이다. 이러한 다소 황당한 이유들과 엔젤 역의 사이먼 페그의 연기 그리고 다소 코믹한 액션은 오락영화로서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영화는 마냥 재미있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샌드포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도 정의라는 이름 하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역사적 사례나 영화에서처럼 극심한 피해나 살인 등의 범죄가 발생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정의의 이름으로, '모두에게 다 좋다'는 말로 우리는 일상에서 폭력을 경험한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라며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공부를 강요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꿈을 생각해 볼 새도 없이 공부에 매진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며 회사는 인턴에게 최저시급 이하로 임금을 준다. 야근을 시키면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않음에도, 경험을, 스펙을 쌓을 수 있다는 말로 무마한다.

빨라진 대선시계 속 대선주자를 둘러싼 지지자들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를 비판하거나,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대선주자로서 지지한다는 이유로 많은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야 정의가 실현된다는 이유로 말이다.

영화는 엔젤 경관의 놀라운 활약으로 마을 공동경비대를 제압하고 죄를 묻는다. 영화 속 문제는 해결됐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영화 속 엔젤의 능력이 비현실적인 만큼, 현실에서 그와 같은 존재가 등장하길 바라는 건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한가지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정의가 아닐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것. 우리는 이를 역사 속 사례를 통해 배웠다. 앞서 언급했던 히틀러, 십자군 등은 좋은 사례다. 이제 이러한 깨달음을 역사적 사건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일상에도 적용시켜야 한다. 현실에서 엔젤은 없다.

뜨거운 녀석들 정의의 이름으로 히틀러 십자군전쟁 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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