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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많으면 첫째가 저럴까?


내가 찾아낸 글쓰기전형에 대해 첫째에게 열변을 토했다.
 내가 찾아낸 글쓰기전형에 대해 첫째에게 열변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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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 내가 찾아낸 글쓰기전형에 대해 첫째에게 열변을 토했다. 첫째가 싱글 웃는다. 그런데 표정이 묘하다.

"엄마, 엄마는 그 전형이 왜 마음에 들어? 국립대라 그래? 아니면 글쓰기전형이라 그래?"
"그거야 국립대라 학비가 싸고 네 성적이 그냥 들어가기는 힘든데 글쓰기전형으로 들어가면 가능할 거 같으니까 그렇지. 너는 지금 엄마가 너 글쓰기 시키고 싶어서 일부러 이 전형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첫째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응. 여태 내가 내 활동으로 갈 대학 알아보라고 그럴 때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글쓰기 전형을 꺼내는데, 그게 좋게 보이겠어?"

기가 막히다. 나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많으면 첫째가 저럴까? 내가 글쓰기에 아무리 관심이 많다 해도, 엄마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자식에게 글쓰기 전형을 권할까? 어쩌다가 우리 관계가 이렇게 된 걸까? 꼬인 아이 마음이 문제일까? 아니면 그동안 내 행동의 문제일까?

"그게 아니라 아빠가 어제 친구 딸이 A대에 들어간 말을 했고. 그래서 엄마가 오늘 A대 홈피 갔다가 글쓰기전형을 찾은 거야."

아이는 알 듯 모를 듯 씩 웃는다. 전혀 안 믿는 눈치다. 억울하다. 잃은 신뢰를 회복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이번 주말에 막내 데리고 1박 2일로 동네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캠프에 갈 계획이다. 가기 전에 첫째 대입을 위해서도 나도 뭐라도 해 놓아야 마음 편히 눈치 안 보고 다녀올 텐데. 그런 고민을 하는데 첫째 수학 학원 샘에게 문자가 왔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수시 박람회에 목요일 아침에 차편이 있으니 같이 갈 학생과 학부모는 문자 달라는 거다. 가면 여러 학교에 대한 정보를 한 번에 받을 수도 있고 궁금한 점을 대학 관계자에게 직접 물을 수 있다.

첫째는 방학이 금요일부터라 목요일엔 갈 수 없다. 그럼 내가 혼자 갈까? 알찬 정보를 얻어오면 좋고 정보가 허접하더라도 캠프 가기 전에 나도 뭘 했다고 내세울 게 생긴다. 참석하겠다고 수학 샘에게 문자를 보냈다.

목요일 등산에 같이 가는 엄마들에게 대단한 고3 엄마가 된 것처럼 수시 박람회 가느라 못 간다고 톡을 보냈다. 뿌듯하다. 수학 샘은 희망하는 학교 명단과 질문할 것을 준비해 오라고 한다.

첫째의 말에서 벽이 느껴진다

첫째의 말에서 벽이 느껴졌다.
 첫째의 말에서 벽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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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 가기 하루 전,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 내가 아직 담임선생님하고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어디 원서를 낼지 정하질 않았어. 그리고 적성고사로 두 군데 정도 원서를 내기로 했는데 아직 적성 모의고사를 본 적이 없으니까 성적이 안 나와서 어디 낼지 몰라."
"그래도 말이 오간 학교가 있을 거 아니야? 말 안 하면 자료를 얻어 올 수가 없잖아?"
"그냥 지나가다 이름 나온 대학밖에 없다니까? 선생님이 전번에 A대도 말씀하셨고 B대도 말씀하셨고 그리고 C대도 말씀하셨고 지금 그런 것들을 다 말하라는 거야?"

첫째의 말에서 벽이 느껴진다. 이건 아니다. 어차피 고3이면 지원 가능한 대학 수준이 뻔하다. 다 뻔하게 알고 있는 것을 아이는 나에게 말을 안 하려는 거다. 아이는 지금 날 못 믿겠다는 걸 저렇게 표시하고 있는 거 같다. 날 얼마나 못 믿으면 저럴까? 아이는 날 못 믿겠다는 사인을 며칠 전부터 계속 보내고 있다.

"엄마는 널 도와주고 싶어서 박람회에 가겠다고 했는데 너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다. 엄마 박람회 안 갈게. 그런데 엄마가 너한테 이렇게도 신뢰를 못 줬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서럽다."

내가 여태까지 첫째 키우느라 애썼던 일들이 떠올라 무엇보다 억울했다. 자식에게 이런 불신을 받으려고 그 고생을 했나 싶으니 다 부질없다. 첫째에게도 신뢰를 못 받으면서 난 뭐하러 아이를 셋이나 낳았을까? 안방으로 들어가 펑펑 울었다. 내 억울함에 공감해 줄 사람은 남편뿐이다.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애들이 다 그렇지.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우린 부모한테 안 그랬냐?"
"난 걔처럼 그러지는 않았어."

남편이 나를 달랬지만 억울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첫째다.

"엄마 선생님이 말씀하신 학교는요..."
"알았어."

간신히 답을 하고 문들 닫았다. 자식이 뭔지 모르겠다.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도 이런 일이 있었겠지. 믿었던 자식에게 배신당한 느낌. 엄마는 정성껏 우리를 키웠다. 엄마는 여전히 나에게도 자식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우리가 가진 오해는 언제쯤 다 풀리게 될까?

오해는 언제쯤 풀릴까.
 오해는 언제쯤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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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 공부 못하면 어떠냐? 그래도 부모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야. 너희가 잘해야 해."

엄마가 나에게 받은 만큼 나도 자식에게 주었나? 아직은 멀었다. 눈물을 닦고 호흡을 가다듬고 방에서 나왔다.

밥을 차려서 둘째와 막내와 저녁을 먹었다. 첫째는 나중에 먹는단다.

"아까 엄마가 울어서 무슨 생각 했어?"
"오늘 밥 다 먹었다."

둘째나 막내는 내 편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아니다. 우리가 가진 오해는 언제쯤 다 풀리게 될까? 목요일 수시 박람회에 나는 가지 않았다.

주말에 막내와 1박 2일 도서관 캠프에 갔다가 집에 왔더니 남편뿐이다. 좀 있으니 첫째와 둘째가 같이 들어왔다. 수시 박람회에 다녀왔단다. 첫째는 내 앞에 학교들 자료집을 쫙 꺼내며 이야기를 한다.

"엄마 내가 오늘 가서 가져온 자료는요..."

이 녀석이 엊그제 그렇게 까칠하게 굴었던 아이가 맞나 싶다.

(대입을 다 치르고 보니 당시 아이가 원했던 전형인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나의 이해가 부족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태그:#고3 엄마, #학생부종합전형, #글쓰기전형, #불신,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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