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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겆수세미

예전에는 '수세미'라고 하면 '수세미외'라고도 하는 덩굴풀이 있고, 이 덩굴풀 수세미(수세미외)를 잘 말려서 설거지를 할 적에 쓰는 부엌살림 수세미가 있어요. 옛날에는 집집마다 수세미외 씨앗을 심어서 기른 뒤에 열매를 얻어 손수 말린 뒤에 설거지를 하는 부엌살림으로 삼았어요.

오늘날에는 가게에서 실리콘 수세미나 아크릴 수세미를 사다가 쓰지요. 가게에서 안 사고 실로 뜨개를 해서 설거지를 할 적에 쓰기도 하고요. 가만히 살피면 그릇을 씻으려고도 수세미를 쓰지만, 몸을 씻으려고도 수세미를 써요. 이때에는 '손타월·핸드타월'이나 '때타올·때타월' 같은 말을 뒤섞어서 쓰는데, 영어 'towel'을 놓고 '타월·타올'로 옮기기보다는 '수세미'라는 낱말을 살려서 써 볼 만하지 싶어요.

설거지에서는 '설거지수세미·설겆수세미'라 하면 되고, 손에 끼워서 몸을 씻으면 '손수세미'라 할 만하며, '몸수세미'라 해 볼 만해요. 때를 벗길 적에는 '때수세미'가 돼요. 자동차를 닦는데 쓰면 '차수세미'라 하면 되지요. 손이나 몸을 씻는 수세미는 '씻는수세미'나 '씻수세미'처럼 이름을 붙여도 잘 어울려요. 수세미에 막대를 달아 유리나 바닥을 닦는다면 '막대수세미'가 됩니다.

책노래

한국말사전에서 '콘서트'라는 영어를 찾아보면 '음악회'나 '연주회'로 고쳐써야 한다고 나와요. '음악회'나 '연주회'라는 한자말을 다시 찾아보면 두 낱말은 모두 "음악을 연주하는 모임이나 자리"를 가리킨다고 나와요. '음악'은 '노래'를 가리키는 한자말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콘서트'는 '노래모임'이나 '노래자리'나 '노래마당'을 가리키는 셈이라 할 만하지요. 노래모임·노래자리·노래마당을 살펴보면 무척 신나거나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멋지지 싶습니다. 수수한 노래모임·노래자리·노래마당일 수 있지만, 대단한 노래잔치나 노래한마당이 되곤 해요.

요즈음은 책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즐겁게 나누자는 뜻으로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곤 해요. 이런 자리에 '북콘서트'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데, 이는 바로 '책노래모임'이나 '책노래자리'나 '책노래잔치'나 '책노래마당'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어요. 책을 노래하듯이 즐기는 모임이랄까요. 책을 노래하듯이 나누는 자리랄까요. 책을 노래하듯이 사랑하는 잔치랄까요. 수수하고 단출하게 '책노래'를 나눈다고 해 볼 수도 있고요.

한줄시, 석줄시

심심해서 '심심해'를 놓고 석 줄짜리로 글을 짧게 지어 봅니다. 이를테면, "심심해, 심심하다고, 해바라기라도 할까?" 이렇게 석 줄짜리 글을 짓지요. 아침에 밥을 먹는 자리에서 '아침밥' 세 글자를 한 마디씩 띄우면서 "아버지가 밥을 지었네, 침이 고이는 맛난 국도 있네, 밥 즐겁게 먹을게요!"처럼 시를 쓰는 놀이, 그러니까 '시놀이·시짓기놀이'를 할 만해요.

이렇게 세 마디를 빌어서 석 줄로 쓰는 시를 '석줄시'라고 해요. 석 줄이니까 석줄시입니다. 때로는 넉 줄이나 다섯 줄로 시를 써 볼 만하겠지요? 이때에는 '넉줄시'나 '다섯줄시(닷줄시)'가 되어요. 그리고 한 줄짜리로 시를 쓴다면 '한줄시'가 될 테고요.

동무한테 선물을 건네면서 짤막하게 한 줄짜리 글을 쓴다고 한다면 '한줄편지'나 '한줄글'이 될 만해요. 한 줄로 짤막하게 쓴 편지하고 선물을 건네니, 나는 동무한테 '한줄마음'을 띄우는 셈입니다. "한 마디는 짧을 듯하지만, 줄줄이 늘어놓고 싶지 않아, 시원스레 부는 산들바람을 느끼렴!" 하고 석줄시를 써 봅니다. 어른들이 으레 쓰는 '삼행시'는 바로 '석줄시'예요.

맛밥

"오늘 밥은 뭐야?" 하고 묻는 아이를 바라보며 싱긋 웃습니다. "오늘 밥은 '맛밥'이야" 하고 대꾸합니다. 아이는 "맛밥이 뭐야?" 하고 묻고, 나는 "맛있는 밥이라서 '맛밥'이야" 하고 대꾸하지요. "왜 맛있는 밥을 맛밥이라고 줄여서 써?" "맛있는 밥이니까 '맛밥'이라고 줄일 수 있지. 생각해 봐. 우리가 감자를 밥에 넣어서 지으면 무슨 밥이지?" "감자밥!" "당근이랑 버섯을 넣어서 밥을 지으면?" "감자버섯밥?" "그래, 아침에 먹는 밥은 '아침밥'이고, 낮에 먹는 밥은 '낮밥'이고, 밖에서 사다 먹는 밥은 '바깥밥'이며, 마실을 가서 먹는 밥은 '마실밥'이야." "그러면, 노래하면서 먹는 밥은 '노래밥'이겠네?" "그래, 맞아. 예쁜 꽃접시에 담아서 먹는 밥은 '꽃밥'이지? 봄나물을 신나게 올린 밥은 '봄밥'이나 '봄나물밥'이나 '나물밥'이나 '풀밥'이야."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맛있는 밥은 '맛밥'이라 하면 되는구나." 맛있는 밥을 파는 곳을 가리켜 '맛집'이라는 이름을 즐겁게 쓰듯이, 맛있게 누리는 밥을 '맛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리하여 우리는 저마다 '사랑밥'을 먹을 수 있고, '꿈밥'이나 '이야기밥'이나 '웃음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멋진 밥이라면 '멋밥'이 될 테고요.

종이두루미

집에서 종이로 노는 아홉 살 아이는 곧잘 종이접기를 하고 싶어서 책을 펼칩니다. 책에 나온 '종이학' 접기를 해 보려는데 잘 안 된다면서 자꾸 도와 달라 합니다. 한 번 두 번 돕다가 아이한테 말합니다.

"책을 덮으렴. 책을 보면서 하면 아예 못 접어." 나는 책 없이 접는 손놀림을 아이한테 보여줍니다. 어릴 적부터 손에 익은 대로 종이를 네모반듯하게 자르고, 세모를 두 번 접어서 자국을 내며, 네모를 두 번 접어서 또 자국을 냅니다. 다시 세모를 접고, 잇달아 수많은 세모를 넣어 자국을 낸 뒤에 비로소 하나씩 새로운 꼴로 접습니다.

이러는 동안 어느새 예쁜 '종이두루미'가 태어납니다. 종이두루미를 다 접고 나서는 거꾸로 '펼친 종이'가 되도록 하나씩 풉니다.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손으로 만지면서 몸에 익혀야 눈을 감고도 접을 수 있어."

한나절 동안 함께 종이를 접고 나서 '종이학'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봅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종이학' 접기인데, 일본에서는 '오리츠루(おりづる·折り鶴·折鶴)'라는 이름을 써요. "접는 두루미"라는 뜻입니다. 일본에서는 종이접기를 '오리가미(おりかみ·折り紙·折紙)'라고 말해요. 종이로 두루미를 접는 놀이가 일본에서 건너왔어도 '두루미'라는 이름을 쓰면 되었을 텐데, 처음에 '학(鶴)'이라는 한자를 쓴 바람에 이제는 '종이학'이라는 이름만 널리 퍼졌구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어린이도 우리말을 즐겁게 생각하면서 새롭게 지어서 널리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틀에 박히는 말이 아닌, 또 억지스레 꾸미는 말이 아닌, 한국말사전에 실리는 말만 써야 하는 말살림이 아닌, 여느 삶자리에서 어른하고 아이가 함께 살림을 짓는 동안 수수하게 주고받는 즐거운 말노래가 되기를 바라면서 쓴 글입니다. 대단하지 않은 말 한 마디일지라도 우리가 스스로 말 한 마디를 즐겁게 웃으면서 살릴 수 있기를 꿈꾸는 마음입니다.



태그:#우리말 살려쓰기, #우리말, #한국말, #말넋, #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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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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