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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 바른 빵은 왜 항상 잼 바른 쪽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머피의 법칙은 늘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런데 살면서 어느 날인가는 한 번씩 이 '머피의 법칙'의 소용돌이 안에 빠져버리는 날이 있는 건 사실이다. 피하고 싶지만 말이다. 파리 여행 둘째 날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16일 동안 우리의 집이자 이동 수단이 될 캠핑카를 만나는 날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부터 서둘러 아침을 먹었다. 짐이 많아 이동이 힘들다 하니 캠핑카를 빌리는 곳에서 호텔로 차를 보내준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기다리는 차는 안 왔다. 뭔가 불길하기 시작했지만 '뭐, 별일 있겠어?' 불안감을 누르고 차분히 기다렸다. 다행히 한참 만에 차가 도착했다. 친절한 기사님은 밴에 우리 짐들을 기꺼이 실어주셨다.

아뿔사! 그런데 이 아저씨 길치! 호텔에서 캠핑카 회사로 가는 길을 도무지 찾지 못하셨다. 핸드폰 내비를 켜고 찾는데도 같은 곳을 뱅뱅뱅, 타고 난 방향감각의 우리 보스, 남편이 이 쪽이 아니냐, 저쪽이 아니냐, 의견을 피력해도 듣지도 않았다. 왠지 불길했다니까! 기사 아저씨 옆자리에서 구글지도를 켜들고 끊임없이 갈 길을 이야기하던 남편 덕분에 결국 기사 아저씨는 고집을 버리고 가자는 길로 캠핑카 회사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찾을 수 있었다. 소중한 우리의 시간을 잡아먹은 길치 기사아저씨는 알고 보니 그날 처음 회사에서 일을 받은 '알바 아저씨'였다.

겨우 도착한 캠핑카 회사에서 우리는 또 캠핑카 배정이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6명이 쓸 수 있는 캠핑카를 계약했는데 4인 캠핑카가 배정된 것이었다. 다른 차를 배정받기 위해 기다려야 했다. 간신히 배정된 캠핑카는 청소가 안 된 상태라 또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차가 낡은 차라 불안하기까지 했다. 말춤을 추며 싸이를 안다고 분위기를 띄우려는 잘 생기고 키 큰 프랑스 담당자 때문에 화가 나는 걸 참았다. 캠핑카 사용에 대한 이런저런 교육을 받고서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출발!

머피의 법칙 따위나 생각하기에 우리의 시간은 너무 소중했다. 서둘러 먼저 대형 마트를 찾아 물과 먹거리들을 사고 출발 준비를 했다. 캠핑카에서 처음 라면도 끓여 먹었다. 프랑스 땅 캠핑카에서 우리 라면을 끓여먹다니 정말 꿀맛 같았다.

점심을 먹고 미리 찾아두었던 Boulogne 캠핑장을 찾아 주차를 하고 파리 시내 투어를 들어가야 했다. 날씨가 너무 더웠지만 힘을 내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꿈에도 그리던 루브르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시 머피의 법칙 시작! 힘들게 나왔는데 루브르는 문이 닫혀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루브르에 왔는데! 루브르는 월요일에 문을 닫는다는 걸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속상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은 캠핑카 투어 마지막 날 파리로 돌아오니 그때 다시 오면 되지 애도 아니고 왜 그러냐고 놀렸다. 하지만 눈물이 나는 걸 어떻게! 아쉬웠지만 뒤돌아 서며 루브르야 안녕!

샹젤리제 거리나 다른 투어를 계획했지만 아들이 다시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녹다운이 되었다. 캠핑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행의 시작인데 무리하게 강행했다가 몸이 상하면 안될 일이었다.

머피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길은 '쉼'이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동동거릴 때, 너무 많은 일이 쏟아져서 지칠 때, 머피의 법칙은 여지없이 우리를 덮친다. 자꾸만 자꾸만 뭔가 일이 어그러지고 비틀어지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쉬어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쉬면서 충전도 하고, 쉬면서 생각도 해보고...

음악에도 쉼표가 필요하고, 책 읽기에도 쉼표가 필요하듯 우리네 삶에도 가끔씩은 쉼표가 필요하다. 쉼표는 호흡을 정돈하고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캠핑카 첫 날, 우리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캠핑장에서 푹 쉬었다. 그렇지만 아주 중요한 쉼표를 만들었다. 쉬면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역할 분담도 확실하게 했다. 아빠는 운전과 여행 총지휘, 엄마는 식사준비와 투어 스케줄 관리, 큰 누나 은수는 영어가 되니 각종 대외 업무와 캠핑카 물 채우기, 아들 예건이는 캠핑카 청소와 화장실통 비우기, 막내 예원이는 식사 뒷정리를 맡았다. 아! 그리고 동수, 우리집 투명 막내는 장난을 맡았다. (동수는 우리가 꼭 한 사람이 모자랄 때 항상 등장하는 투명 아들이다. 고기집에 가서 고기가 더 먹고 싶어 1인분 더 시킬 때 그건 동수 몫, 4명이라 고속도로 전용차선에 들어갈 수 없는데 잠깐 들어갔다 나올 때 이름 불러보는 동수, 집안에 물건이 떨어질 때, 괜히 현관의 센서등이 켜졌다 꺼졌다할 때, 우리는 늘 동수 탓을 한다)

캠핑카 취침 첫 날부터 동수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모두가 잠이 들려하는데 느닷없이 라디오가 켜지며 낯선 프랑스어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아무도 라디오에 손 댄 사람이 없는데... 뭐 귀신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귀신이 장난을 하나 깜짝 놀랐겠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크리스챤. "야잇~ 동수야! 장난치지 마" 하고 모두 낄낄낄 웃으며 잠을 청했다. 그런데 다시 잠이 들려하자 또 엄청나게 큰 라디오 소리! 우리는 모두 "야, 동수야, 그만해"를 외치며 까르르 웃었다. 비몽사몽간에 라디오 전원을 끄고 잠이 들었다. 혼이 난 동수는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렇게 잠든 동수와 함께 머피의 법칙과 함께 한 우리의 하루가 지나갔다.     


태그:#캠핑카, #파리, #루브르,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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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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