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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한 모금 먼저 꿀꺽 삼켰습니다. 마른 논에 물들어가듯 목구멍 속 울대가 꿀꺽하며 맞장구를 칩니다. 빈속에, 차가운 소주 한잔 꿀꺽 마셨을 때, 온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짜르르하게 다가오던 그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술술 넘어가서 좋고, 기분이 좋아져서 좋았던 술을 이런저런 사연으로 끊은 지 꽤 됐습니다.

술은 이유입니다. 좋아서 마시고, 기뻐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고, 괴로워서 마시는 게 술입니다. 만나니 마시고, 헤어지기 때문에 마시기도 합니다. 술 마시는 사람치고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없을 겁니다. 술은 술을 마실 이유를 만들기도 하고, 그렇게 마신 술은 어떤 사연을 만들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만들어지는 사연 중에는 해프닝 정도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연도 있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깊고 묵직한 사연도 있습니다. 사연은 술을 마신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술 자체가 갖고 있는 사연이 술맛을 빚어냅니다.

동서고금 별별 사람들이 다 술을 마십니다. 술은 별별 곳곳에 다 있는 것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별별 특색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중국 역사와 함께하는 <술상 위의 중국>

<술상 위의 중국>(지은이 고광석 / 펴낸곳 섬앤섬 / 2016년 9월 15일 / 값 18,000원)
 <술상 위의 중국>(지은이 고광석 / 펴낸곳 섬앤섬 / 2016년 9월 15일 / 값 18,000원)
ⓒ 섬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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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상 위의 중국>(지은이 고광석, 펴낸곳 섬앤섬)은 오래되고 커다란 중국이라는 나라, 그 나라 사람들이 빚어 술상에 올린 술 종류부터 역사적 인물들이 갖고 있는 술과 관련한 사연은 물론 술 하면 빠질 수 없는 안주까지를 광범위하게 소개하는 주막집 같은 내용입니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중국 술의 역사는 '酒(술)'라는 글자의 어원을 더듬어야 할 만큼 오래입니다. 중국에는 1989년, 전국평주회의全國評酒會議에서 인정한 국가 공인 명주 17개, 모태주, 분주, 소홍주, 분주, 서봉주, 오량액... 등이 있습니다.

책에서는 중국의 이런 명주들이 품고 있는 개략부터 하나하나의 술에 배여 있는 사연 같은 역사까지를 두루 소개하고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60도가 넘는 술, 물개, 산삼, 뱀 등 세 가지 동물의 수컷 생식기와 함께 인삼, 녹용 등 40여 종의 한약재를 고량주에 넣어 담근 약용술 등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술은 종류도 특징도 다양합니다.

어떤 술은 전설 같은 내력을 갖고 있고, 어떤 술은 신비롭기까지 한 제법으로 빚어집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흔하게 마시던 술, 일명 빼갈(白乾兒 바이갈)로 부르던 고량주에서 '고량'은 순수한 우리말로 '수수'라는 뜻이라고 하니 결국 고량주는 수수로 빚은 술이라는 말인가 봅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국가 공인 명주냐 아니냐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필자는 중국의 어느 지방을 가도 그 지방 특유의 특산주가 있을뿐더러 조악한 병에 포장은 보잘 것 없어도 나름의 독특한 향과 맛을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개성에 매혹되곤 하였다. -26쪽-

술은 사람들 가슴만 취하게 하는 게 아니라 가끔은 역사도 취하게 합니다. 중국 역사를 장식했던 사람들 또한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많이 마시는 사람도 있었으니 중국 역사에서 읽을 수 있는 어떤 역사는 술이 빚어낸 역사일 수도 있습니다.

기원전 공자에서부터 유방과 항우, 한무제와 동방삭, 청나라 말기의 여성 혁명가 추근, 모택동과 주은래와 같은 정치지도자들은 물론 도연명, 이태백, 두보, 백거이, 소동파 같은 문인들에게 버무려진 술과 관련한 사연들도 다양한 안주 종류만큼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소동파는 어느 마을을 가도 그곳의 좋은 술을 찾아 이를 맛보고 빚는 법을 묻곤 하였는데, 나중에 이를 발전시켜 스스로 술 빚기를 좋아하다가 <주경酒經>이라는 책까지 썼으니 애주가로서 그가 할 바는 다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를 '주현酒賢'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270쪽

알고 마시는 중국 술은 역사를 읽게 하는 또 하나의 인문학

사진과 함께 읽는 별별 안주는 한 젓가락 먹고 싶다는 식욕으로 침샘을 자극합니다. 부록처럼 들어가 있는 '맛있는 안주를 찾기 위한 중화요리 이해의 숨은 열쇠'는 '재료명 이해하기', '조리방법 이해하기(불 다루기)', '칼질의 종류와 명칭', '지역 이름과 사람 이름이 담긴 음식명' 등 안주 이름에 스며있는 정보를 읽을 수 있는 비밀코드 같은 보너스 설명입니다.

중국의 주법은 우리나라의 주법과 다릅니다. 잔을 돌리지 않고, 남의 잔이 조금만 비워도 채워야 하고, 새로운 요리가 나오면 술을 마시는 게 중국 술상에서의 주법이라고 합니다.

얼근하게 취하는 술도 좋고, 흠 없이 지키는 주법도 중요하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중요한 주법은 역시 과음하지 않는 적당한 음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술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꿀꺽, 안주 한 점 먹고 싶다는 생각에 꿀꺽거리며 읽다 보니 마음은 술에 취하고, 몸은 안주에 배부릅니다.

술상 위의 중국은 빼갈 맛이고, 빼갈 맛의 중국은 오천 년 역사입니다. 모르고 마시는 중국 술은 그냥 술맛이지만 알고 마시는 중국 술은 역사를 읽게 하는 또 하나의 인문학이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술상 위의 중국>(지은이 고광석 / 펴낸곳 섬앤섬 / 2016년 9월 15일 / 값 18,000원)



술상 위의 중국 - 술 향기가 들려주는 중국의 어제와 오늘

고광석 지음, 섬앤섬(2016)


태그:#섬앤섬, #고광석, #술상 위의 중국, #월그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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