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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 자리에 있고 싶다."

공방에서 쫓겨나 천막에서 지내는 인간문화재 추용호(66, 통영) 장인(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이 한 말이다. 추 장인은 법원에서 공방 출입금지를 해놓아 1주일째 천막에서 지내고 있다.

국회의원과 문화재청, 통영시, 통영시의회, 시민단체 등이 나섰지만 쉽게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통영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추용호 장인은 "아버지 때부터 해온 공방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추 장인의 공방은 경남 통영시 도천동에 있다. 바로 옆에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의 생가 터가 있다. 추 장인은 지난해 9월,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법원과 통영시는 30일 통영시 도천동 소재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추용호 보유자의 집에 대해, 물품을 들어내는 강제집행을 실시했다.
 법원과 통영시는 30일 통영시 도천동 소재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추용호 보유자의 집에 대해, 물품을 들어내는 강제집행을 실시했다.
ⓒ 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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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장인의 공방은 120~130년의 역사가 있다. 통제영 12공방 장인들에게 기술을 전승받았던 추용호 장인의 아버지 추웅동(1912~1973) 선생의 공장이기도 했다. 추용호 장인은 '통영 12공방'의 맥을 이어 오고 있다.

공방이 철거 위기에 놓은 것은 도로 개설공사 때문이다. 통영시는 2007~2009년 사이 '도천동 도시계획도로 개설공사' 계획을 세웠고, 23명 주민의 25필지를 사업 대상으로 했다. 도로개설 공사 대상지 안에 추용호 장인의 공방과 윤이상 선생 생가 터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윤이상생가터지키기시민모임'이 결성되어 한때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은 통영시와 유족 측이 '생가터 표지석'을 두기로 하고, 위치 등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를 하고 있다.

추용호 장인의 공방 철거 위기는 통영시가 강제수용 등 절차를 밟으면서 시작되었다. 통영시는 2013년 7월 경남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재결 신청했고, 그해 9월 결정이 났다. 당시 추용호 장인은 보상에 응하지 않았고, 통영시는 그해 11월 법원에 보상금을 공탁했다.

그리고 통영시는 2014년 명도소송을 진행했고, 2015년 6월 1심에서 통영시가 승소했으며, 그해 11월 항소심에서 항소 기각되었다.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지난 5월 30일 강제집행했고, 이날 추용호 장인의 공방 안에 있던 목재와 연장 등 물품을 들어냈다.

이날 추용호 장인은 집 앞에 천막을 치고 기거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사실이 <오마이뉴스> 등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관련기사 : 인간문화재, 도로공사 강제집행에 쫓겨나 천막 생활). 5월 31일 오후,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통영시청 관계자와 추 장인 등이 모여 협상을 벌였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 했다.

공방에서 들어낸 목재와 연장 등 물품은 일부 국립무형유산원(전주)으로 보내졌고, 나머지 일부는 법원 관할 창고와 추용호 장인의 누님 집에 있다.

손혜원, 정청래 현장 방문 "더 가치있게 만들어야"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국회의원은 지난 5일 정청래 전 의원 등과 함께 경남 통영 도천동 소재 인간문화재 추용호 장인을 찾아 공방 철거 위기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국회의원은 지난 5일 정청래 전 의원 등과 함께 경남 통영 도천동 소재 인간문화재 추용호 장인을 찾아 공방 철거 위기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 정청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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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도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국회의원과 정청래 전 의원이 지난 5일 추용호 장인을 찾아왔다. 손 의원 등은 추 장인의 공방을 둘러보고, 천막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손 의원은 "공방을 허물지 않고 이 동네를 더 가치있게 만드는 방안을 찾아보고, 그렇게 하면 동네 주민이나 통영시가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가짜 거리도 좋지만 진짜 집을 먼저 봐주심이 옳은 일일 것이다. 골동품에도 진품이 있고 복제품이 있다. 통영시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복제품이다"며 "추용호 선생의 공방은 진품이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께서 부디 지켜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손 의원은 "130년을 한 곳에 살며 지켜온 전통의 진짜 흔적은 길을 낸다는 명목으로 밀어버리려 한다"며 "문화재청이 눈 감고 통영시청이 앞장선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잘 판단하라"고 했다.

또 손 의원은 "돈을 아무리 투자해도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오래된 역사의 가치다"며 "어려움 중에도 이 집을 지켜온 전통장인의 노고를 위로는 못할망정 철거라니. 통영시는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통영시 "집 철거할 수 밖에 없다"

7일 통영시는 추용호 장인의 공방을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재차 밝혔다. 통영시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추용호씨가 구주한 집은 2013년 수용재결을 거쳐 통영시 소유로 되어 있고, 옆집의 토지와 건물은 타인 소유 부동산으로 2010년 통영시에서 협의취득한 상태"라 밝혔다.

통영시는 시에서 운영하는 전통공예전수교육관 내지 나전칠기공방으로 이전을 제안했다. 그러나 추용호 장인은 전통공예전수교육관과 나전칠기공방을 사용하기에는 협소하다고 보고 있다.

통영시는 "추용호씨는 두 건물에 작품과 자재 등을 넣어 무단으로 불법 점유하고 있어 여러 차례 걸쳐 비워줄 것을 요구했으나 완강히 거부하여 법원 집행관을 통해 강제집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도시계획도로 개설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통영시는 "도시계획도로 개설사업은 1971년 '건설부 고시'로 결정되었고, 통영시는 도시계획도로 추진율이 55% 정도 매우 낮은 실정으로 다수 지역주민들의 건의에 의해 추진되어온 사업"이라 밝혔다.

그러면서 통영시는 "토지소유자들은 상당 기간 건축행위 제한 등 재산권에 많은 제약을 받았는데, 이번과 같이 개별적인 민원이 있다고 해서 도시계획선을 변경하여 우회하면 새로운 토지가 도시계획에 저촉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고, 행정 신뢰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으며, 다른 상대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통영시청 관계자는 이날 오후 전화통화에서 "언론에도 보도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조만간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추용호 "기와집 복원되면 나라에 기부"

통영시가 5월 30일 인간문화재 추용호 장인의 집을 도로개설 공사와 관련해 강제집행에 들어간 가운데, 추용호 장인은 집 앞에 천막을 쳐놓고 지난 밤을 보냈다.
 통영시가 5월 30일 인간문화재 추용호 장인의 집을 도로개설 공사와 관련해 강제집행에 들어간 가운데, 추용호 장인은 집 앞에 천막을 쳐놓고 지난 밤을 보냈다.
ⓒ 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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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지역에서도 추용호 장인의 공방에 관심이 높다. 무송 스님은 추용호 장인의 공방을 지키기 위한 촛불과 3보1배를 제안하고, 이날 실제 행동에 옮기기도 했다.

배윤주 통영시의원은 "오늘 열린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추용호 선생의 공방 문제가 거론되었다"며 "추용호 선생이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당시에 도로개설 설계 재검토를 했어야 했는데 실기했다. 추용호 선생은 인간문화재이신데 공방에서 쫓겨나고 천막에서 지내는 상황까지 벌어져 안타깝다. 의회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추용호 장인은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공방을 떠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추 장인은 지난 5일 손혜원 의원 방문 때 "40년이 넘는 전통 기와집은 나라에서 복원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방을 지키고 기와집을 복원한다면 나라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추용호 장인을 돕고 있는 이승민(통영라이더)씨는 "추 선생은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삶의 터전을 지키고 그대로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며 "전통공방의 맥을 이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지 다른 바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추 선생은 혼자 사신다. 전통공예전수교육관이나 나전칠기공방은 공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공간이 협소해 소반장을 만들 수 없다"며 "공무원들은 쉽게 그곳으로 옮기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전통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추용호 장인의 공방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승민씨는 "선생의 공방이 근대문화유산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이 합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문제는 선생께서 전통의 맥을 이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화려한 세병관(통영)과 비교하면, 옛날부터 공방은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도구가 걸려 있는 광경을 보면 그 공간 자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추용호 선생은 평생 나무만 깎아온 사람이다. 보상을 많이 바라는 사람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결코 그런 게 아니다"며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전통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태그:#인간문화재, #소반장, #추용호, #손혜원, #통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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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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