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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는 성자 비슷한 거지 아니면 거지 비슷한 성자를 자주 마주친다.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 성자 아니면 거지 네팔에서는 성자 비슷한 거지 아니면 거지 비슷한 성자를 자주 마주친다.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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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산은 가파르다. 산은 세계적인 도시의 빌딩처럼 높고 직선으로 솟아올랐다. 가파른 산 속에도 빼곡한 삶들이 아파트 사람들처럼 층층이 채워져 있었다.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삶은 구름 위에 뜬 것처럼 현실적이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산에서 나서 산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산에서 놀며 산을 바라보고 산을 숭배하며 생활하다 산에서 생을 마친다. 산은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지만 결코 풍족하게 주지는 않는다.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고개를 넘어섰을 때는 작은 개울물이었는데 어느 정도 달리자 제법 강을 이루면서 힘찬 물줄기를 이루며 흐르고 있다. 황토를 가득 머금고 흐르는 트리슬리 강이다. 트리슬리 강은 네팔 중심부인 데부가트에서 안나푸르나에서 흘러내리는 칼리 간다키 강과 합류하여 나라여니 강이 되어 인도의 갠지스 강으로 흘러간다.

산간지방 집들은 양철지붕과 흙벽돌로 바람과 비를 막아주면 될 뿐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집 안에는 그릇 몇 개와 잠을 잘 침상이면 충분하다. 가파른 산을 계단처럼 층층이 까마득히 높은 산꼭대기까지 갈아 밭을 일구고 염소를 키우고 염소가 내주는 젖을 받아먹는다. 아침은 먹지 않고 점심과 저녁으로도 충분히 하루를 지낼 만하다.

달리다 염소에게 줄 꼴을 베어 망태기에 이고 가는 소녀를 만난다. 여기는 짐을 이는 방법이 특이하다. 남자고 여자고 짐줄을 이마에 대고 짐은 등에 대면 아무리 무거운 짐도 번쩍 들어올린다. 김태희처럼 예쁘다.

웃음이 해맑은 소녀 둘이 염소에게 줄 꼴을 베러 간다.
▲ 꼴베는 소녀 웃음이 해맑은 소녀 둘이 염소에게 줄 꼴을 베러 간다.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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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는 김태희가 꼴을 베고 밭을 메고 막노동을 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가 있다. 자기가 김태희인 줄도 모르면서 스물 정도에 결혼해서 살다가 아이 낳고 늙어간다.

우리나라 마라톤의 전설 함기용과 손기정의 만남처럼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봐주고 그것을 개발해주는 스승과의 만남은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게 마련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스승을 만나지 않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길을 달리며 성자처럼 생긴 거지 아니면 거지처럼 생긴 성자를 무수히 많이 마주친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를 성자들이 누구의 스승이 될 것인지 의문이 든다.

네팔은 신의 나라이다. 힌두교도가 87%, 불교도가 8%, 이슬람교가 4% 정도이다. 어느 마을이든 시바 신을 모신 사당이 있다. 힌두교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교일 것이다.

불교도 힌두교의 영향으로 탄생하였다. 힌두교의 신들을 나그네가 다 이해하기는 힘들다. 진오스님은 지나면서 신전이나 사당이 나오면 일일이 예를 갖춘다. 현지인들이 경배하는 것에 예를 갖추는 것이 그들에 대한 최고의 예의라는 것이다.

시바는 원래 부와 행복, 길조를 의미했지만 나중에 창조와 파괴의 신이 되었다. 시바는 4개의 팔과 4 개의 얼굴 3개의 눈이 있다. 제3의 눈은 빛으로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다고 한다. 그 눈빛은 일체의 피조물을 움츠러들게 하는 빛을 내는 듯하다.

종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전 앞에는 신들이 타고 다니는 이동 수단들이 늘 대기한다. 시바가 타고 다니는 이동수단이 바로 소이다.

카스트제도는 힌두교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지배계급의 편의상 경전에 쓰였다. 힌두교가 주류를 이루는 네팔은 공산당이 집권당이면서도 브라만 계급이 사회의 모든 권력과 이권을 독점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이야말로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와 흙수저가 구분되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들고 나온 자와 흙수저를 들고 나온 자가 구분되는 사회는 이렇게 사회 밑동부터 썩기 마련이다. 흙수저를 들고 태어나니 시바의 신께 아무리 간절하게 기도를 해도 김태희의 아름다움을 가지고도 꼴을 베고 밭을 메는 수고를 평생 하는 수밖에 없다.

지나다가 네팔 초등학교에 들러 미소가 커다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 네팔 초등학생들과 함께 지나다가 네팔 초등학교에 들러 미소가 커다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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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길옆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와 야외수업을 하는 학생들에게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손을 흔든다. 아이들의 커다란 미소와 싱그러운 함성과 함께 고사리 손의 흔들림이 오지마을의 희망처럼 우리에게도 전달된다.

일행은 학교로 들어가 아이들에 둘러싸여 함께 웃고 소리 지르며 즐거움을 나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일행은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랫썸삐리리'를 합창하며 가벼운 율동까지 곁들이니 아이들이 아예 뒤집어질 정도로 좋아한다.

그 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처럼 낯선 이방인에게 느껴질 어색함을 걷어내는 좋은 도구는 없는 것 같다. 아직 한류드라마나 K팝 스타들에 대하여 알려지지 않은 네팔 아이들에게 달리며 '베썸삐리리'를 노래하는 바로 우리가 한류스타였다. 아이들에게 연필도 나누어주고 회충약을 나누어주면서 아쉬운 작별의 손을 흔든다.

진오스님, 최종한씨 외에 강주형, 강복원씨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때 처음 만났는데 함께 고생하며 땀을 흘리는 가운데도 즐거운 농담을 주고받다 보니 처음의 어색함은 네팔의 바람결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최종한씨는 맏형으로 중심을 잡아주고 특유의 재치로 현지인과 의 친화력이 뛰어나다. 강주형씨는 큰 키에 저음의 목소리로 현지 여성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는데 부족함이 없으면서도 일행의 궃은 일을 도맡는다.

대원 중에 유일하게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강복원씨가 35도에서 37도까지 넘나드는 더운 날씨에 앞뒤를 오가며 급수를 해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우리가 달려가는 길은 룸비니로 가는 길이다. 그곳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는 김태희의 아름다움을 가졌다는 가르침이다.

각자는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가졌다는 것을 설파한 인류 최고의 스승을 만나러 그 옛날 구법승들이 걸었을 그 길을 고행의 달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진오스님은 현지인들이 경배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들러 예의를 표한다.
▲ 힌두교 사당 진오스님은 현지인들이 경배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들러 예의를 표한다.
ⓒ 강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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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는 오직 일체 중생들이 어둡고 미혹하며 삿된 길에서 헤매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지혜의 광명이 되어 고통을 구제하고자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의 고향인 이곳은 아직도 중생들이 괴로워하고 매일 밤 전기가 나가 어둡고 대지엔 먼지가 가득하다. 아직도 지구상 곳곳에 전쟁의 기운이 멈추지 않고 테러리스트들은 그들만의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내걸고 또 다른 무고한 목숨을 범하고 있는데 불국정토는 언제나 완성이 될까?

네팔은 매일 저녁 블랙아웃이 된다. 미국에서 어느 여름날 하루 블랙아웃이 되어 큰 혼란에 빠졌던 것을 목격한 나는 매일 밤 블랙아웃이 되어도 아무런 혼란 없이 지내는 이들이 슬기롭게까지 보인다.

그러니 여기서 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가르침을 보리수나무에 쉬어가면서 깨닫는다.

여행자의 가장 큰 미덕이란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보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다만 느끼고 적응하고 순응하는 것이다.

인류문명은 여러 가지 불합리를 내포하기는 하였지만 많은 가능성 가운데 최선을 선택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런 선택들을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화장실에 화장지 대신 물로 밑을 씻는 일은 베트남에서부터 적응이 돼 있어서 더 이상 불편하지도 않다. 오히려 개운한 느낌까지 갖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을 때마다 혼돈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태그:#꼴베는 김태히, #진오스님, #렛썸삐리리, #성자처럼 생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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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온몸의 근육을 이용하여 달리며 여행한다. 달리며 자연과 소통하고 자신과 허심탄회한대화를 나누며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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