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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아동인권의 현주소

현재 우리나라 아동인권상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회'라고 하고 싶다. 부모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도, 학대와 폭력으로 인한 비명소리도, 골목과 놀이터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숨소리도, 국가재난상황에서 두려워 떨며 외치는 구조요청도, 경쟁과 성공으로 인한 압박감에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도, 당당히 스스로의 인간됨과 권리를 주장하는 구호 소리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들리지 않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위해서는 아동뿐 아니라 성인과 사회, 모두가 준비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사회를 위한 준비의 첫 단계는 아동이 인간임을 깨닫는 것이다.

어린이는 한 사람 한 사람, 존중받아야 할 '시민'이다
 어린이는 한 사람 한 사람, 존중받아야 할 '시민'이다
ⓒ 유니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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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조건

국어사전에서 인권의 뜻을 찾아보면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라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 사회가 향유하는 인권의 조건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누가 그 사회의 '인간'이냐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그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권리, 그 최소한의 보장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인권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가 '인간'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인간'인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인간'이었을지 몰라도, 시민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인간'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별, 성정체성, 피부색, 인종, 종교, 민족, 장애, 신분이나 계급, 재산 등에 따라 '인간'의 범주에 들지 못했고,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이러한 희생과 노력으로 인류는 '인간'의 범주를 확대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두 번째로 인권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권리, 누구도 빼앗아가거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우리는 인권이라 한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인간'다운 대우가 바로 그 사회가 가진 인권의 최소기준이다.

그렇다면, '아동'은 인간인가? 대다수는 당연히 아동은 인간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동을 대하는 태도나 관점은 그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아직은 미성숙하기에 부모나 성인의 말에 순종해야 하는 수동적 객체, 혹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소유물이나 보호받거나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육성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듯하다. 아동을 온전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아동을 '인간'으로 존중하고자 마음먹는다면, 다음으로는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아동의 인권을 존중, 보호, 실현하기 위한 기준을 법으로 정해두었다. 그것이 바로 유엔아동권리협약이다.

유엔은 1989년 모든 아동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만 18세미만의 모든 사람을 권리의 주체자로 천명하며,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뿐 아니라 시민적·정치적 권리까지 포함한 포괄적 협약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196개국)가 비준한 국제협약이며, 우리나라는 1991년 비준하였다. 54개 조항으로 구성된 협약에는 아동이 '인간'으로 마땅히 향유해야 할 다양한 권리가 명시되어 있으며 국가를 가장 중요한 의무이행자로 규정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꼭 기억해야 할 원칙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비차별의 원칙이다. 협약 제2조는 아동이 어떠한 경우에도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명시한다. 비차별의 원칙은 소수자만을 위한 원칙이 아니다. 비차별은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우리나라가 본받고 싶어하는 교육강국 핀란드는 1960년대부터 교육정책의 핵심목표가 연령, 거주지, 경제상황, 성별, 인종, 국적, 장애, 모국어 사용여부 등과 무관하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시민들에게 동등하게 주는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협약 제3조에 명시된 아동이익 최우선의 원칙이다.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원이 필요하다. 인적자원이나 물적자원 등 다양한 자원 없이 인권은 미사여구로 끝나게 된다. 아동이익 최우선의 원칙은 이러한 자원이 분배되거나 활용되는 과정에서 혹은 법과 제도를 적용함에 있어 아동의 이익과 입장을 가장 먼저 고려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배가 침몰하는 순간, 한정된 구명조끼와 구명보트가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제공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 번째는 협약 제6조에 명시된 생명, 생존과 발달의 원칙이다. 아동의 생명은 다른 누구의 것이 될 수 없다. 설령 부모나 국가라 해도 아이의 생사를 멋대로 결정할 수 없으며, 아동 생명의 고유함과 존엄함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그들의 생존과 전인적 발달을 도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원칙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아동의 발달적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예컨대, 학대피해 아동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때도 아동의 연령과 성숙도, 그리고 그들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네 번째는 의견존중과 참여의 원칙이다. 협약 제12조에 따라 국가는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능력을 갖춘 아동이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연령과 성숙도에 따라 그 의견에 적절한 비중을 부여해야 한다. 참여는 어느 날 갑자기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또한 이 원칙의 실현을 위해서는 아동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준비와 성인의 들을 준비가 필요하다. 박수도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성인도 경청할 수 있는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동은 이미 '시민'이다

아동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아동 존중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인지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실천이다. 얼마 전, 교육에서 만났던 선생님은 자녀를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자녀와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아동의 인권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녀를 내가 '키우는' 존재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동거인으로 대하니 마음도 편해지고, 관계도 보다 좋아졌다고 했다. 실상 아동을 예뻐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보다 많은 의지와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가정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지역사회와 국가에서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동은 이미 '시민'이다. 사회의 구성원이며,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이다. 아동과 함께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어려운 그 일을, 우리가 해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병수님은 국제아동인권센터 국장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아동인권 , #아동보호 , #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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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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