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극장 같은송나라 개봉부(開封府),불후의 명작 한 편 상시 상영 중- 이상옥의 디카시 <판관 포청천>중국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명군으로 일컬어지는 조광윤이 창업했고, 수도는 개봉(開封)이다. 금나라에 의해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항주로 도읍을 옮긴 남송과 그 이전의 북송으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송나라 수도 하면 아무래도 개봉이 먼저 떠오른다.
개봉은 북송 시대 인구 150만의 세계적 도시정작 송나라 수도였던 개봉은 생각보다 작은 도시였다. 개봉은 기원전에는 전국 칠웅 중 하나인 위나라 수도 대양으로 불린 것을 위시하여 일곱 왕조의 수도라는 의미로 칠조고도(七朝古都)라 불리기도 한다. 북송 시대(960~1126) 개봉은 인구 150만의, 당시로서는 세계적인 대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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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부에 들어서자 공생명(公生明, 공정함이 밝음을 낳는다)이라는 글을 새긴 돌이 눈길을 끈다. |
ⓒ 이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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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부윤(현재의 시장) 포청천은 송나라 4대 황제였던 인종의 재위 때 인물로 원래 이름은 '포증'이나 신분과 상관 없이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려 백성들이 "청천"이라 불러 포청천으로 알려진다. 한국에서 1990년대 <포청천> 드라마가 인기를 끈 적도 있다.
불행하게도 칠조고도 개봉은 황하의 범람으로 13미터 지하로 매몰돼 버렸다고 한다. 지금의 개봉부는 후대에 마치 가설극장처럼 좀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개봉부 옆에 황하의 범람으로 생긴 호수도 볼 수 있는데, 그 이름도 포공(포청천)호라고 불린다.
가설극장 같은 개봉부의 주인공은 '판관 포청천'포청천이 얼마나 후대 중국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인지 개봉부에 들어서면 금방 알 수 있다. 개봉부가 아예 포청천의 기념관 같았다. 개봉부윤이 모두 183명이었다 하는데, 다른 부윤들은 다 어디로 가고 포청천만 기억들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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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부 안에 있는 개봉부윤 포청천이 집무 보던 곳으로, 개작두, 호작두, 용작두가 앞에 놓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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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송 개봉부가 부정부패로 몸살을 앓을 때 인종이 임명한 포청천이 개봉부윤으로 있으며 탄핵한 사람들은 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 황족도 예외일 수 없었다. '권력자에겐 솜방망이, 서민에겐 쇠몽둥이'라는 말이 포청천에게만은 통하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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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공사에 모셔진 포청천 동상 앞에서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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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부에서 멀지 않는 곳에는 포청천의 사당 포공사(包公祠)도 있다. 사당에는 포공 동상을 만들어 놓고, 단순한 추모를 넘어 민간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숭앙한다. 그날도 포공 동상 앞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소원을 빌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올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