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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을 가까이 했던 독서광이었다. 그는 바둑을 즐겼고 문제의 해답을 바둑에서 찾았다. 그는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다. 그의 저서는 이런 습관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 그는 만반의 준비를 하는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엣지(Edge)있는 결단력의 소유자다.'

참 멋진 선비이지 않은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성웅 이순신, 영웅 이순신, 애국자 이순신, 명량해전의 영웅, 광화문 광장의 두 주인공 중 한 사람, 이순신 장군이다. 앞의 멋들어진 표현들은 김덕수 교수가 <이순신의 진실>에서 말한 '탁월한 전략가 이순신'을 소개한 걸 간추린 내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은 본래의 이순신일까. 난 언제부터인가 역사의 인물들에 대하여 몹시 궁금한 질문들을 가슴에 품어 왔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이순신이다. 아마도 고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우상화 작업의 선두에 이순신 장군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박정희에 의해 성웅이 된 사람, 이순신! 그의 원래 모습은 어떤 걸까.

영웅 이순신에 더하여

<이순신의 진실> (김덕수 지음 / 플래닛미디어 펴냄 / 2016. 3 / 330쪽 / 1만8000 원)
 <이순신의 진실> (김덕수 지음 / 플래닛미디어 펴냄 / 2016. 3 / 330쪽 / 1만8000 원)
ⓒ 플래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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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워 온 이런 영웅(?)은 실제의 역사적 인물과 미화된 신화적 인물, 둘 중 어디에 가까울까. 언제부터인가 신화적 인물에 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뻥튀기 기계에 한 번 튀겨 내어 역사책에 기록했다면 좀 심한 표현인가. 역사적 영웅들의 면면에서 '뻥튀기' 혹은 '신화화'라는 단어를 배제하면 어떻게 될까.

<이순신의 진실>은 그걸 시도한 책이다. 표지에 '오해와 왜곡을 극복하고 다시 부활시켜야 할 이순신의 정신'이란 긴 부제를 보며 사뭇 가슴이 설레 책을 펼쳤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 책의 멋진 시도에도 불구하고 '엣지(Edge)있는 결단력의 소유자'와 같은 표현은 미화이지 싶다.

저자는 '이순신에 덧씌어진 허구를 걷어내며'라는 PART. 1에서 역사책은 물론 소설, 영화나 드라마의 이순신이 역사적 이순신과 다르다는 점을 들어 인간 이순신과 신화화 된 이순신을 가려내려고 노력한다. 이런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PART. 2 '이순신을 읽는 핵심 키워드'에서 전혀 다른 의미의 우상화 작업에 함몰돼 버린다. 이는 전에 출간한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를 대폭 보강한 리더십 강의록이라고 할 수 있다. 단원의 제목들만 봐도 충분히 신화적이며 영웅 리더에 대한 표상이 이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직격'을 지녔던 진정한 프로 ▲'소통' 전문가 ▲영혼을 지닌 명승부사 ▲감성의 달인 ▲휴브리스 함정에 빠지지 않았던 창의적 인재 ▲철인 ▲모럴해저드를 극복한 청백리 ▲다중지능의 멀티 플레이어 ▲팀워크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한 명감독 ▲장재론을 통해 본 매력남 이순신 ▲부하 장수들을 춤추게 했던 임파워먼트 ▲공직자의 대표 브랜드

어떤가. 이렇게 완벽한 인간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인간 이순신을 말한다면서 또 하나의 영웅 이순신을 소개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인간 이순신을 만나려고 펼친 책에서 성웅 이순신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서운했다. 박정희가 만든 교과서 속의 이순신을 다른 각도로 만나는...

역사적 이순신에 대하여

저자는 오랫동안 이순신 연구에 천착해 온 공주대학교 사회과 교수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장계 등의 사료를 연구하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 애쓴다. 특히 이순신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부유한 외갓집에서 자랐다는 것, 충무공 탄생일이 음력 4월 28일이 아니라 1945년 3월 8일이라는 것, 역적 집안이 아니라는 것 등을 사료를 들어 설명한다.

이순신은 명석한 머리를 지닌 이가 아니어서 28살에 본 시험에서 떨어지고 32살 늦은 나이에 무과에 합격했다고 한다. 변방 오지에서 14년을 이름 없는 하급 장교로 복무했으며, 상관과의 불화로 여러 차례 파면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체질이 그리 건강하지 않아 위장병과 전염병에 자주 걸렸다. 우리가 아는 늠름한 장군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저자는 광화문 광장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충분한 사료 검토 없이 제작되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너무 용감하고 왼손잡이로 묘사됐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오른손잡이며 선비상이라고 말한다.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이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었다. 용모는 단아해서 마음을 닦고 몸가짐을 삼가는 전형적인 선비와 같았다'고 기술한 바 있다. 그런데 동상에 나타난 그의 얼굴은 기골이 장대하고 험상궂게 생긴 용장의 전형적 모습이다. (중략) 분명히 말하건대, 그는 오른손잡이였다.'(본문 37쪽)

외에도 저자는 이순신의 죽음과 그의 가문을 둘러싼 오해를 거둬내려 노력한다. 거북선 제작에 얽힌 비밀, 한산도해전의 의문점, 백의종군의 진실, 명량해전이 벌어졌던 전투 현장의 진실 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증명하려 애를 쓴다.

원균에 얽힌 이야기도 사료적으로 검토한다. '원균=간신, 이순신=영웅'의 이분법적 인식의 틀을 과감히 깨야 한다며 "원균은 나라를 위해 싸웠고 그 과정에서 부자가 함께 전사하는 비운을 겪었다"며, 집안의 대가 끊기면서까지 싸운 원균 집안의 가족사를 아울러야 한다고 말한다. 동감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원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거둔 건 아니다. 원균이 이순신과 '화합하기 힘든 인물'이라며 일방적으로 선배 원균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원균이 '육전에 필요한 리더'였다며 해전의 미숙함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다시 한 번, 저자의 '성웅 이순신'을 '인간 이순신'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여전히 이순신을 리더십의 귀재로 다루고 있다. 박정희의 우상화와는 차원이 다른 면에서 이순신이 리더십의 대가가 되어 있다. 폄하도 안 되지만 완벽한 인간 모델로의 이순신도 어딘가 위험성이 있다.

저자가 책을 쓰며 "다시 부활시켜야 할 이순신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는 의도 때문인지, 박정희 시대 때 배웠던 '교과서의 신화화 된 성웅 이순신'이 다시 부활하여 '완벽한 리더십의 대가 이순신'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느낌이다. 책을 다 읽어도 여전히 이순신은 영웅으로 남는 건 무엇 때문일까. 독자들도 읽고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순신의 진실> (김덕수 지음 / 플래닛미디어 펴냄 / 2016. 3 / 330쪽 / 1만8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이순신의 진실 - 오해와 왜곡을 극복하고 다시 부활시켜야 할 이순신의 정신

김덕수 지음, 플래닛미디어(2016)


태그:#이순신의 진실, #김덕수, #영웅 이순신, #신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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