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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얼었던 몸을 푼 계곡의 물이 경쾌하게 흐르고 있다. 지난 2월 23일 가마골 풍경이다.
 겨우내 얼었던 몸을 푼 계곡의 물이 경쾌하게 흐르고 있다. 지난 2월 23일 가마골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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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지나면서 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며칠 남지 않았다. 봄을 마중하러 용추산 가마골로 간다. 지난 2월 23일이었다. 가마골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가 도계를 이루는 담양군 용면에 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용추산 골짜기의 얼음이 어느새 다 녹았다. 간간이 고드름만 보인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경쾌하다. 잔뜩 움츠렸던 나뭇가지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칼바람과 눈보라를 견뎌낸 고로쇠나무도 몸을 풀고 있다.

입춘을 전후해 시작된 고로쇠 수액 채취는 곡우 전후까지 계속된다. 우수와 경칩 사이에 난 수액을 으뜸으로 친다. 산촌사람들의 고로쇠 수액 채취도 한결 수월해졌다. 나무에 구멍을 뚫고 고무관을 꽂아 수액을 받아내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러나 나무에서 바로 물통으로 받아내지는 않는다. 미리 설치해 놓은 연결관을 통해 집수정으로 한데 모은다. 별도의 위생처리도 거친다.

고로쇠 수액을 주는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를 위한 고무관을 매달고 있다.
 고로쇠 수액을 주는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를 위한 고무관을 매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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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나무와 수액을 받아내는 물통. 용추산 가마골에서 본 풍경이다.
 고로쇠나무와 수액을 받아내는 물통. 용추산 가마골에서 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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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 수준이에요. 날씨가 널뛰기를 했잖아요. 추울 때는 엄청 춥고, 다른 날은 따뜻하고, 아침저녁으로 일교차도 컸고요."

고로쇠 수액 채취량이 예년만큼 된다는 조현복 용소산장 여주인의 말이다. 조씨가 건네준 고로쇠 수액 한 사발에 새봄의 활력이 가득하다. 금세 온몸에 생기가 돈다. 덕분에 올 한 해 건강 걱정을 덜었다. 현지에서 마시는 고로쇠 수액이 가장 맛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고로쇠나무는 겨울에 뿌리를 통해 땅속의 수분을 빨아들인다. 추위를 견뎌내는 고로쇠나무의 생존방식이다. 날이 풀리면 햇볕을 받은 줄기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머금고 있던 수액이 팽창한다. 이때를 틈 타 채취하는 게 고로쇠 수액이다. 일교차가 커야 수액이 많이 나는 이유다.

가마골을 따라 숲길을 걷는 발걸음이 활기차다. 새봄의 기운은 사람의 발걸음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가마골을 따라 숲길을 걷는 발걸음이 활기차다. 새봄의 기운은 사람의 발걸음에서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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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골에서 만난 한 주민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 있다. 팔지 않고 집에서 식구들끼리 마실 것이라고.
 가마골에서 만난 한 주민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 있다. 팔지 않고 집에서 식구들끼리 마실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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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 수액은 언뜻 숭늉처럼 뿌옇다. 설탕물 같기도 하다. 맛은 달짝지근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마시기에 부담이 없다. 수액에는 당분, 칼슘, 마그네슘, 칼륨, 비타민과 갖가지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우리 몸에 빠르게 흡수돼 몸속의 노폐물을 없애준다. 한꺼번에 많이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다. 피부 미용과 관절염, 골다공증, 신경통, 변비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립 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다.

도선국사와 관련된 일화도 재밌다. 통일신라 때 백운산 자락 옥룡사에서 수도하던 도선국사의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앉아서 수도한 후유증이었다. 가까이 있던 고로쇠나무에서 흐르는 수액을 마신 다음 무릎을 펼 수 있었다는 얘기다. 뼈에 이롭다고 골리수(骨利水)로 불린다.

담양 용추산 숲길. 길섶에 쌓인 낙엽이 늦가을의 느낌까지 안겨준다.
 담양 용추산 숲길. 길섶에 쌓인 낙엽이 늦가을의 느낌까지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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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산 가마골의 출렁다리. 사령관굴 터로 연결되는 길이다. 용소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용추산 가마골의 출렁다리. 사령관굴 터로 연결되는 길이다. 용소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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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운은 고로쇠나무를 보듬은 가마골에도 넘실대고 있다. 계곡을 따라 줄지어선 단풍나무가 생기를 머금었다. 산자락의 참나무, 배롱나무, 산딸나무의 빛깔도 살아나고 있다. 이름 모를 들풀도 따스한 봄날을 그리고 있다.

흙과 자갈이 섞인 길도 정겹다. 몇 해 전 아스팔트 포장을 걷어낸 길이다. 임도를 따라 용소로 가는 발걸음이 가뿐하다. 계곡 쉼터도 한가롭다. 옛 방식대로 고로쇠 수액을 받고 있는 주민도 만난다.

출렁다리와 시원정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겨우내 찌든 감정을 개운하게 씻어준다. 출렁다리에서 연결되는 사령관동굴 터도 애틋하다. 빨치산 노령지구사령부의 김병억 사령관이 지냈다는 굴이다. 가마골은 빨치산 격전지 가운데 하나였고, 최후의 작전지구였다. 소설과 영화 '남부군'의 배경이기도 하다.

용소에서 신선봉과 용추사, 용연폭포로 연결되는 길도 있다. 신선봉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아득하다. 임도를 따라 용추사로 갈 수도 있다.

출렁다리에서 내려다 본 용소. 영산강의 시원지다. 그 옆으로 숲길이 단아하다.
 출렁다리에서 내려다 본 용소. 영산강의 시원지다. 그 옆으로 숲길이 단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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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의 시원지 용소. 연못 왼편에 '용소'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영산강의 시원지 용소. 연못 왼편에 '용소'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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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 아래로 보이는 푸른 물웅덩이가 용소다. '남도의 젖줄' 영산강의 발원지다. 둘레가 20∼30m쯤 된다. 용추산 기슭에서 내려온 물이 계곡을 따라 흘러 모이는 곳이다. 연못을 이룬 물빛이 투명하다. 물속까지도 환히 비친다. 전설 속의 황룡이 용틀임했다는 연못이다.

옛날 담양부사가 소문으로만 듣던 이 계곡을 보려고 관속들에게 행차를 준비시켰다. 하지만 행차 전날 밤 꿈에 백발의 신선이 나타나 '내일은 승천하는 날이니 오지 말라'고 했다. 부사는 이를 무시하고 가마골 행차를 강행했다.

마침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하늘로 솟아오르던 황룡이 다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이를 본 부사도 기절해 회생하지 못했다. 연못에서 용이 솟았다고 '용소'다. 용이 피를 토하고 죽은 계곡이라고 '피잿골'이라 불렸다.

복원된 가마 터. 오래 전에 있었던 전통 가마 가운데 하나다. 용추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복원된 가마 터. 오래 전에 있었던 전통 가마 가운데 하나다. 용추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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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사 풍경. 백제 성왕 때 처음 지어진 절집이다. 곡절을 거쳐 1961년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추사 풍경. 백제 성왕 때 처음 지어진 절집이다. 곡절을 거쳐 1961년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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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곡 일대에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많았다고 '가마곡'으로 불리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마골'로 바뀌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숯가마가 많았다. 지금은 임도를 개발하면서 발견된 전통 가마 하나가 복원돼 있을 뿐이다. 용추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용추사는 526년(백제 성왕 4년)에 처음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 주지 태능스님이 승병을 일으켜 김덕령 장군과 합세해 일본군과 싸웠다. 화가 난 일본군이 절집을 불태워 버렸다. 태능스님이 1630년(인조 8년)에 다시 지었다. 6·25땐 빨치산의 은둔지로 활용된다고 국군이 불을 질러버렸다. 1961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척에 가볼만한 곳도 여러 군데다. 담양호 용마루길이 담양호반에 있다. 담양호를 가로지르는 목교가 있고, 호반을 따라가는 나무데크 길과 오솔길이 있다. 추월산 절벽에 걸려있는 보리암 풍광도 멋스럽다. 암자에서 담양호와 금성산성이 한눈에 보인다. 금성산성도 지척이다.

담양호 용마루길의 목교. 담양호반을 따라 거닐 수 있는 길의 출발점이다.
 담양호 용마루길의 목교. 담양호반을 따라 거닐 수 있는 길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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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88고속국도 담양나들목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담양호반을 거쳐 용치삼거리까지 간다. 여기서 우회전, 792번 지방도를 타고 순창 방면으로 3㎞쯤 가면 가마골 입구에 닿는다. 내비게이션은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소길 261.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가마골, #용소, #고로쇠, #용추산, #용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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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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