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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세대, 헬조선, 흙수저에 이르기까지... 청년세대의 절망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넘쳐납니다. 청년들이 참 할 말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어린 것이 뭘 아느냐', '사회문제에 신경 끄고 네 앞가림이나 해라'라는 '꼰대'의 말에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때가 많습니다. '할많하않', 이 신조어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줄임말입니다. '할많하않'이 아닌, 할 말이 많으니 하겠다는 청년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인문학카페36.5도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인문학카페36.5도는 커피를 팔고, 인문학 공동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독특한 카페다. 홍승은씨가 뜻 맞는 청년들과 함께 2013년 12월부터 운영해왔다.
▲ 인문학카페36.5도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인문학카페36.5도는 커피를 팔고, 인문학 공동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독특한 카페다. 홍승은씨가 뜻 맞는 청년들과 함께 2013년 12월부터 운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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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먼저 묻지 마라, 나이나 지위로 대우받으려 하지 마라, '딸 같아서 조언하는데' 같은 수사는 붙이지 마라 등. 24일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지침'의 내용 중 일부다. 하지 말라는 행동을 모두 하는 '꼰대'를 눈 감고 상상해보자. 권위주의적인 중·장년층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나이를 막론하고 이런 말을 일상적으로 내뱉는 이들은 어떤가.

"그래서 돈은 얼마나 버는데? 현실을 생각해"
"원하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니? 다 노력하지 않은 사람 핑계지"

춘천 지역 청년들의 인문학 공동체, '인문학카페 36.5도'가 지난해 12월 발행한 독립출판물 <계간진지> 1호는 세상의 별의별 '꼰대'에 대한 보고서다. <계간진지>는 "'꼰대리즘'은 단순히 '세대'만의 문제도, 꼭 남의 일만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 잡지,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 25일, 강원도 춘천시 인문학카페 36.5도에서 <계간진지> 1호 편집위원 홍승은(29)씨와 허일정(20)씨를 마주했다.

오늘의 메뉴는 '꼰대' <계간진지> 1호를 들고 있는 홍승은(왼쪽)씨와 허일정(오른쪽)씨. <계간진지>의 디자인은 허일정씨가 도맡았다.
▲ 오늘의 메뉴는 '꼰대' <계간진지> 1호를 들고 있는 홍승은(왼쪽)씨와 허일정(오른쪽)씨. <계간진지>의 디자인은 허일정씨가 도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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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이 많아' 만든, 불편한 잡지

"저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입간판에 글을 썼어요. 세상에든, 사람들한테든. 그런데 입간판은 매일 글귀가 바뀌다 보니 휘발성이 강하잖아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은 주제를 잡아 잡지를 내면, 우리의 떠다니는 말들이 정리될 거 같았어요."(홍승은)

홍씨가 뜻 맞는 지역 청년들과 함께 지난 2013년부터 운영해온 '인문학카페 36.5도'는 작은 규모에 비해 유명하다. 인문학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커피를 파는 독특한 공간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매일 다른 글귀를 적어 카페 앞에 내놓는 빨간 입간판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언급하며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고 일갈한 입간판이 대표적이다.

홍씨는 "(이런 카페의 활동을 보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오는 친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이 (자신이 비판하는 사람들처럼) 오히려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인문학카페36.5도의 입간판 홍승은씨는 부산에 위치한 카페 헤세이티의 입간판을 참고해 인문학카페36.5도의 입간판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의 입간판에선 <계간진지>의 표지가 연상된다.
▲ 인문학카페36.5도의 입간판 홍승은씨는 부산에 위치한 카페 헤세이티의 입간판을 참고해 인문학카페36.5도의 입간판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의 입간판에선 <계간진지>의 표지가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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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영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고민과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떤 모임이든 분명히 '꼰대'는 있을 수 있어요. <계간진지> 1호는 그런 사람에 대해 알아보고, 어떻게 하면 함께 갈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그런 잡지예요. 불편한 것들을 계속 이야기 하는 거죠."(홍승은)

그래서 <계간진지>의 초기 이름은 '불편한 잡지'였다. 어감이 썩 좋지 않다는 지인들의 평가에, <계간진지>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문제의식은 그대로 가져갔다.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를 담는, <계간진지>는 '밥만큼 중요한 잡지'를 지향한다. 

"흔히 진지한 사람들을 비꼬면서 '진지충'이라거나 '오글거린다'고 말하잖아요. '단순하고 쿨하게 넘기면 되는 거지, 왜 이렇게 오글거리고 예민하게 그런 걸 고민하나'라는 논리죠. 이런 문화를 오히려 정면 돌파할 수 있는 개념이 '진지'라고 생각했어요."(홍승은)

"'꼰대리즘', 단순히 '세대'만의 문제 아냐"

'진지'라는 단어엔 다양한 뜻이 담겨있다. 끼니로 먹을 수 있는 음식, 언제든지 적과 싸울 수 있도록 부대를 배치해둔 곳, 참된 지식, 나아감과 머무름 등. 다채로운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계간진지>라는 밥상 위에, 첫 호의 주제로 '꼰대'를 올렸다. '세대전쟁'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권위주의를 체화하고,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이들은 모두 '꼰대'에 포함된다.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고 훈수 두는 친구, 교수가 후배를 성희롱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선배 등. 

"'꼰대'라는 게 정말 연령대와 직업의 분포가 아주 넓더라고요. 잡지를 만들면서 꼰대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탐구하게 됐어요.(웃음)"(허일정)

'꼰대공모전'을 열어, 각양각색의 '꼰대'에 관한 경험담을 받기도 했다. 블로그와 SNS 등을 통해 공모전을 홍보했는데, 약 40여 명이 글을 보냈다. <계간진지>의 편집위원은 총 5명. 적은 숫자이지만, 기고글 등을 통해 84페이지에 이르는 지면을 채워나갔다.

그렇다고 <계간진지> 1호가 꼰대의 유형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계간진지>라는 이름답게, 잡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아침밥, 점심밥 그리고 저녁밥. 잡지의 결론 부분인 '저녁밥'에선 '며느리도 안알랴주는 꼰대 퇴치법'과 전문가 인터뷰 등을 담았다. 홍승은씨의 설명처럼, "'정치적'이면서도 유쾌하고,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며느리도 안알랴주는 꼰대 퇴치법 <계간진지> 1호가 꼰대의 유형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잡지의 결론 부분인 '저녁밥'에선 '며느리도 안알랴주는 꼰대 퇴치법'과 전문가 인터뷰 등을 담았다.
▲ 며느리도 안알랴주는 꼰대 퇴치법 <계간진지> 1호가 꼰대의 유형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잡지의 결론 부분인 '저녁밥'에선 '며느리도 안알랴주는 꼰대 퇴치법'과 전문가 인터뷰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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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을 통해 제작한 잡지인 만큼, <계간진지> 1호는 무가지로 배포한다. '끌리는 곳'에 놓아두긴 하지만, 인문학카페 36.5도가 중점적인 배포처다. 주로 카페를 방문한 손님들에게 <계간진지>를 건넨다.

"카페에 중년 손님이 많이 오세요. 그럴 때마다 <계간진지>를 건네 드리는 데, 의외로 '신선하다'며 다양한 반응이 와요. 그분들도 자신이 '나이로 따지면 꼰대일 거 같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텐데, 이걸 통해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거죠. 저희도 <계간진지>를 만들 때는 '꼰대'같은 타인에 대한 분노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내 안의 꼰대를 찾는 데 도움이 됐어요."(허일정)

"다음 주제는 '여성혐오', 불편한 이야기 계속할 것"

'계간'을 붙이긴 했지만, <계간진지>는 일 년에 두 번 나온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봄과 가을이 없어지는 시대적 슬픔을 반영"했단다. 올여름께 나올 <계간진지> 2호의 주제는 '여성혐오'. 최근 <계간진지> 편집위원들의 관심사가 '페미니즘'이라고 했다.

홍승은씨는 '위안부'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한민국효녀연합'(아래 효녀연합)을 만든 청년예술가 홍승희(26)씨의 언니다. 홍승은씨는 효녀연합이 화제가 되면서, "젠더 문제가 그동안 얼마나 등한시되어왔는가 느끼게 됐다"고 했다.

효녀연합이 등장하자 '효녀연합을 지켜주겠다'는 '대한민국오빠연합'(아래 오빠연합)이 생겨났다. 동생 홍승희씨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보다 그의 외모가 부각됐다. 홍승희씨의 이름 앞에 '미소녀', '개념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페미니스트만 아니면 돼? 홍승은씨는 '대한민국효녀연합을 대하는 오빠들의 자세'라는 제목의 입간판 글을 통해, 이들이 "(효녀연합은) 바람직한 사회운동을 하는 개념녀이니 지켜주겠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면 안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 페미니스트만 아니면 돼? 홍승은씨는 '대한민국효녀연합을 대하는 오빠들의 자세'라는 제목의 입간판 글을 통해, 이들이 "(효녀연합은) 바람직한 사회운동을 하는 개념녀이니 지켜주겠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면 안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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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씨는 '대한민국효녀연합을 대하는 오빠들의 자세'라는 제목의 입간판 글을 통해, 이들이 "(효녀연합은) 바람직한 사회운동을 하는 개념녀이니 지켜주겠다. 페미니스트만 아니면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몇몇 사람들은 홍씨를 향해 '열등감에 사로잡혀있는 언니'라거나 '꼴페미'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우리 진영에 분열을 일으키지 말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가부장제와 떨어트려 생각할 수 있을까요. 사실 한국군도 '위안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이런 부분에 대한 성찰 없이 (홍승희씨에 대한 외모 평가를 비판하자) '우리 진영을 불리하게 만들지 말라'는 태도가 오히려 한국 사회의 진보를 막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안타깝죠."(홍승은)

인문학카페36.5도에 진열된 독립출판물들 인문학카페36.5도에 진열된 독립출판물들. 인문학카페36.5도는 <계간진지> 이외에도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낸다.
▲ 인문학카페36.5도에 진열된 독립출판물들 인문학카페36.5도에 진열된 독립출판물들. 인문학카페36.5도는 <계간진지> 이외에도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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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씨는 앞으로도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계간진지> 외에도,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글쓰기 홈페이지 등을 구상하고 있다. 젠더 문제를 다루는 단체와 연대하는 방향도 고민 중이다. 모두 일상의 '불편함'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일이다.

"다양한 글들을 쓰면 쪽지로 피드백이 많이 와요. 젠더 문제로 글을 쓰면 자신을 주부라고 소개한 어떤 분들은 '사실 나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는데 표현을 못했다, 고맙다'고 말해요. 저를 위해서도, 사람들을 위해서도 우리의 이야기가 공론화 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어요."(홍승은)

"'꼰대'라는 주제도 그렇고, '내가 불편한 것'이 곧 사회문제라고 생각해요. 여성 혐오도 최근에야 이슈가 되고 있긴 하지만, 저희의 삶과 직결된 문제잖아요. (계속 불편한 것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면) 불편한 것들이 나아질 거라고 믿어요."(허일정)

인문학카페36.5도의 모습 인문학카페36.5도의 모습. 이곳에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인문학카페36.5도의 모습 인문학카페36.5도의 모습. 이곳에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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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외롭게 하는 것은 '편견' 존재를 외롭게 하는 것은 '편견'. 인문학카페36.5도로 향하는 계단에 적힌 문구.
▲ 존재를 외롭게 하는 것은 '편견' 존재를 외롭게 하는 것은 '편견'. 인문학카페36.5도로 향하는 계단에 적힌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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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예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홍승은#계간진지#인문학카페36.5#효녀연합#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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