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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는 이영철씨. 계산대 모니터에 있는 그림 속 모습처럼, 활짝 웃었다.
 환하게 웃는 이영철씨. 계산대 모니터에 있는 그림 속 모습처럼, 활짝 웃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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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와 고기를 뒤집을 때마다 하얀 김이 올라왔다. 꽤나 뜨거울 법한데, 이영철(48)씨는 재료를 볶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씨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게 맺혔다.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재료를 손질하는 데 집중하다가도, 카운터 쪽에서 '맛있겠다'는 소리가 나면 슬쩍 돌아보고 웃었다. 이씨가 '영철 스트리트 버거'를 제대로 만들어본 건 4년만이다.

지난 7월, 경영난으로 인해 폐업을 결정했던 고려대 명물 '영철버거'가 20일 부활했다. 1월 6일로 예정된 본개업을 준비하기 위한 가개업이다. 2005년부터 유지해온 안암동 96번지 1층 매장을 떠나, 맞은 편 건물 2층에 새로 자리 잡았다.

야채와 고기를 뒤집을 때마다 하얀 김이 올라왔다. 꽤나 뜨거울 법 한데, 이영철(48)씨는 재료를 볶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씨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게 맺혔다.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집중하다가도, 카운터 쪽에서 ‘맛있겠다’는 소리가 나면 슬쩍 돌아보고 웃었다.
▲ 버거를 만드는 이영철씨 야채와 고기를 뒤집을 때마다 하얀 김이 올라왔다. 꽤나 뜨거울 법 한데, 이영철(48)씨는 재료를 볶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씨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게 맺혔다.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집중하다가도, 카운터 쪽에서 ‘맛있겠다’는 소리가 나면 슬쩍 돌아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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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야 좋지만, 늘 부담스럽지요. 응원하는 만큼 잘 만들어가야 할 텐데... 아직까지도 제 마음이 쉽게 제자리를 찾지 못해서 불안하고, 초조하고... 쑥스러워요."

20일 가게에서 만난 이영철씨의 얼굴에선 설렘보다 긴장이 느껴졌다. 그는 이날 "오전 5시까지 오픈 준비를 하느라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재개업 준비를 시작한 건 지난달부터. 때문에, 아직 갖추지 못한 것이 많다. 가게 간판조차 새로 달지 못했다. 이씨는 "겨우겨우 힘겹게 시작했다"면서도, "고객과의 신뢰 때문에 올해 안에는 꼭 다시 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5개월이라는 빠른 시간 안에 재기를 꿈꿀 수 있던 것은 폐업 소식을 듣고 도움을 보낸 학생들 덕분이다.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제48대 학생회가 대표적이다. 정경대 학생회는 지난 9월부터 약 한 달간 소셜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비긴어게인 영철버거'라는 이름의 모금을 진행했다. (관련 기사 : 하루 만에 2000만 원, "영철버거를 살립시다")

이 펀딩에 고려대 학생을 비롯한 2765명(머니후원 1870명, 지지서명 895명)이 참여했고, 총 6811만 5000원이 모였다. 당초 목표했던 금액 800만 원의 8배가 넘는 액수다. 펀딩 하루 만에 2000만 원이 넘게 모였다. 이 돈으로 새로운 매장을 얻고, 가게를 꾸몄다. 이씨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브랜드 디자인과 마케팅을 도운 이들도 있다.

이에 보답하듯, 이영철씨도 영철버거의 변화를 꾀했다. 7000~8000원대의 '수제버거' 전략만을 고집하지 않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저렴한 '영철 스트리트 버거'를 부활시켰다. 또 '비긴어게인 영철버거' 프로젝트가 '지역공동체 회복'을 핵심 기치로 내세운 만큼, 재개업 이후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와 힘을 합쳐 여러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철버거가 자리 잡는 일이지만, 과거 어려운 시기에도 해왔던 활동이니까요. 내가 빵 하나 덜 먹으면 되니까... 이런 일을 해야 제가 당당해지고, 힘이 생기는 거 같아요.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노력하려고요."

'영철버거 살리자' 펀딩 성공으로 재개업... "응원하는 만큼 잘 해야죠"

영철버거를 먹는 학생들
▲ 영철버거를 먹는 학생들 영철버거를 먹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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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가게는 영철버거의 새 시작을 도운 이들로 북적였다. 오전엔 지난 11월부터 영철버거의 마케팅을 돕고 있는 서울의 한 대학 경영대학원생 4명이 안암역 인근에 영철버거의 재개업을 알리는 홍보물을 돌리고 왔다.

'비긴어게인 영철버거' 펀딩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정경대 학생 3명은 케이크를 들고 가게를 찾았다. 케이크엔 이영철씨가 고려대 후문 리어카 노점에서 처음 영철버거 장사를 시작한 시기이자 매년 학교에 기부했던 장학금을 의미하는 숫자, '2000' 모양의 초가 꽂혀있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분주하게 개업 준비를 하던 이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 정설아(고려대 경제학과, 21)씨는 "안암 상권도 1, 2년 사이에 많이 변해서 사장님과 학생들의 교류가 많지 않고 그저 물건을 사고 파는 관계에 그치는데, 영철버거는 그렇지 않다"며, "이걸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며 펀딩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정씨는 이영철씨와 "가족 같은 관계"가 됐다며, 가게에 자리 잡자마자 친구들과 영철버거 포장 상자를 접는 일을 도왔다. 그런 그들을 보고 이영철씨도 "이제 친구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케이크를 준비한 고려대 정경대 학생들. 이영철씨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등장했다. 이들은 '비긴어게인 영철버거'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들이다.
▲ 케이크를 준비한 고려대 정경대 학생들 케이크를 준비한 고려대 정경대 학생들. 이영철씨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등장했다. 이들은 '비긴어게인 영철버거'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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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어게인 영철버거' 펀딩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정경대 학생 3명은 케익을 들고 가게를 찾았다. 케익엔 이영철씨가 고려대 후문 리어카 노점에서 처음 영철버거 장사를 시작한 시기이자 매년 학교에 기부했던 장학금을 의미하는 숫자, '2000' 모양의 초가 꽂혀있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분주하게 개업 준비를 하던 이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 케이크를 들고 웃음짓는 이영철씨 '비긴어게인 영철버거' 펀딩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정경대 학생 3명은 케익을 들고 가게를 찾았다. 케익엔 이영철씨가 고려대 후문 리어카 노점에서 처음 영철버거 장사를 시작한 시기이자 매년 학교에 기부했던 장학금을 의미하는 숫자, '2000' 모양의 초가 꽂혀있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분주하게 개업 준비를 하던 이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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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영철버거의 재개업 소식을 듣고 찾아온 고려대 학생도 있었다. 영철버거 단골이었다는 김선숙(26)씨와 이철우(26)씨는 이날의 첫 손님이었다.

이씨는 "고연전과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영철버거 사장님이 도움을 많이 주셨다"며, 영철버거와 얽힌 기억을 되짚었다. 김씨와 이씨는 학창시절 즐겨먹었던 영철 스트리트 버거를 시켰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 가게에 들른 이영철씨의 노모는 눈물을 흘리며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옆 카운터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분주히 움직이던 이영철씨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영철버거와 관련한 문서 작성에 도움을 주던 고려대 국문학과 퇴직 교수, 방송사 PD가 되어 영철버거의 재개업을 취재하러 온 고려대 졸업생까지. 이날 오후 1시까지 버거를 먹고 간 손님은 단 두 명뿐이었지만, 작은 가게는 조용해질 틈이 없었다. 취재를 마치고 가게를 떠나기 전, 이영철씨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해요. 그렇지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감사하다고 꼭 써주세요."

영철버거의 원조인, '스트리트 버거'. 2004년 새로운 메뉴를 도입하고 영업을 확대했다. 또 2007년엔 프랜차이즈 사업을 본격화 하면서 가맹점이 80여 개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제품이 늘어나고, 가격이 올랐다. 이영철씨는 재개업을 하며 스트리트 버거를 부활하기로 결정했다.
▲ 완성된 영철 스트리트 버거 영철버거의 원조인, '스트리트 버거'. 2004년 새로운 메뉴를 도입하고 영업을 확대했다. 또 2007년엔 프랜차이즈 사업을 본격화 하면서 가맹점이 80여 개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제품이 늘어나고, 가격이 올랐다. 이영철씨는 재개업을 하며 스트리트 버거를 부활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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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철버거의 원조인, '스트리트 버거'.
▲ 완성된 영철 스트리트 버거 영철버거의 원조인, '스트리트 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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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영철버거, #이영철, #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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