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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얼 출신이라고 인재를 버려두고, 어머니가 개가했다 해서 그 자식의 재능을 쓰지 않는 제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늘이 낳았는데 사람이 그걸 버리니, 이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다."
"천하에 가장 두려워할 바는 오직 백성뿐이다. 특히 호민은 딴 마음을 품고 자기 소원을 실현하려는 자로 몹시 두려워해야 한다. 지금 백성의 원망은 고려 말보다 훨씬 심하다."

허균(1569~1618)의 개혁의지가 가장 잘 나타난 '유재론'과 '호민론'에서 이와 같이 일갈했다. 역사 속에서 민중의 힘을 발견하고 능력 있는 인재의 적극적인 등용을 소신껏 주장하였다.

허균은 명문가 출신의 기대주였으나 이러한 신분적 특권을 스스로 박차버리고, 단지 서얼이라는 이유만으로 좌절당하는 현실을 결코 좌시하지 않고, <홍길동전>이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에서 개혁의 세상을 꿈꾸었다.

허난설헌 생가
 허난설헌 생가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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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세상에 맞추는 대신 세상을 자신에 맞게 고치려고 했던 개혁가 허균은 당대 사대부들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소외된 백성의 입장에서 유교사회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새로운 정치사상을 주장했다. 실천적이고 개혁적인 지식인 이었지만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쉽게 오지 않았다.

조선 중기 개혁적 사상가였던 허균과 탁월한 감각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도 그 천재성을 떨쳤던 허난설헌(1563~1589)의 사상과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영상자료, '국조시산', '하곡조천기', '난설헌집', '석란유분' 등을 전시하고 있는 강릉 초당마을의 허난설헌 생가터와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을 다녀왔다.

허난설헌 생가 앞 소나무 숲
 허난설헌 생가 앞 소나무 숲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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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이 낳은 오누이 문인인 허균과 허난설헌 기념관은 강릉 바닷가 사천과 이어진 교룡산 정기와 경쾌하게 펼쳐진 동해바다와 경포호의 아름다운 풍광, 솔향기 가득한 평지에 위치한다. 특히 허난설헌 생가터는 사랑마당, 행랑마당, 뒷마당을 담으로 넓게 나누어 놓아 아름다운 조경이 주변의 소나무 숲과 잘 어울리고 전통적인 한옥의 멋을 더해준다.

허난설헌 생가터는 조선 선조 때 이들 남매의 아버지인 초당 허엽이 살던 곳으로 허난설헌이 태어나고 허균이 살았으며, 오늘날의 지명인 초당은 허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초당순두부로 유명한 곳이다. 강릉으로 여행을 간다면 동해바다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근심을 털어버리고, 경포대에 올라 주변의 경관을 내려다보고 나서 초당순두부로 허기를 채우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허난설헌 동상과 그 뒤 생가 모습
 허난설헌 동상과 그 뒤 생가 모습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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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은 일곱 살에 시를 지을 정도의 신동으로 천부적인 시재를 타고 났다. 현재 200여  수 이상의 시가 전해진다.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나 보통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다는 허난설헌은 짧은 생을 살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매천 황현은 허균, 허난설헌, 허봉 남매를 가리켜 '초당 가문에 세 그루 보배로운 나무이며 그중 난설헌의 글재주가 가장 돋보여 신선재주를 닮았다고 '찬국조제가시'에서 칭송하였다.

허균을 보고 있는데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허균이 꿈꾸던 세상은 오지 않았고, 200여 년이 흘러 다산이 세상에 나와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 등의 저서를 통해 조선을 개혁해야 한다고 외쳤다.

다산은 썩고 병든 나라를 고치고, 바꾸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고치지 않는 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신념으로 가득 찼었다. 다산은 형이상학적인 학문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 행정 등의 구체적인 나랏일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실력배양의 학문인 실학이야말로 경세의 학문이며 조선을 살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국조시산', 허균이 엮은 시선집. 1706년에 간행된 목판본
 '국조시산', 허균이 엮은 시선집. 1706년에 간행된 목판본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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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는 관료들의 부패가 극심해 다산 선생은 개혁하지 않으면 조선은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시의 위정자들은 백성들의 삶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조선은 망하고 말았다.

권력을 가진 자가 부패하고, 돈을 가진 자가 부패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는지 명백히 밝혀진 역사에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청렴이란 공직자의 본질적인 임무다. 모든 착함의 근원이요 모든 덕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아니하고는 고위공직자 노릇할 사람이 없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는 청렴으로 시작해서 청렴에서 끝나야 한다. 청렴한 사람이 진짜 큰 욕심쟁이라고 설파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다산 선생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하고, 이를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허균, #허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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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고전과 서예에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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