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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가 있는 규슈올레 중 가라쓰 코스는 모두 11.2km입니다. 모모야마텐카이치 휴게소에서 히토마사키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보통 성인이 4~5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습니다.
 15개가 있는 규슈올레 중 가라쓰 코스는 모두 11.2km입니다. 모모야마텐카이치 휴게소에서 히토마사키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보통 성인이 4~5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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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적 답사기>의 저자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는 일본편에서 규슈의 가라쓰를 '일본의 관문'이라 표현했죠. 분명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지명인데 말입니다. 만약 가라쓰에 대한 유 교수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거려지신다면 학창 시절에 졸지 않았던 분이겠죠?

저처럼 역사와 지리 울렁증이 있으신 독자님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일본의 남부 도시 가라쓰는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 본토입니다. 180km 남짓이라는군요. 그래서 예전부터 많은 문물이 반도에서 섬으로 전해지는 보이지 않은 다리가 있었던 거죠. 이 가교가 끔찍하게 다가왔던 적도 있었습니다. 바로 임진왜란입니다.

밋밋할 수 있는 규슈올레 가라쓰코스는 사실 거대한 유적지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위해 지방영주들을 긁어모아 만든 진영이 가라쓰 곳곳에 120개 이상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밋밋할 수 있는 규슈올레 가라쓰코스는 사실 거대한 유적지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위해 지방영주들을 긁어모아 만든 진영이 가라쓰 곳곳에 120개 이상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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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의 야욕을 야금야금 키워가던 곳입니다. 하지만 한때 일본 전국에서 모여든 무사로 득실거렸던 도시는 전쟁의 끝과 함께 쇠락했죠. 일본에서 두 번째로 컸다는 도요토미의 나고야성터를 비롯한 무수한 진영이 지금은 흔적으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은 가라쓰를 역사 답사 여행지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가 있죠. 답사라는 말에 벌써 하품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에서 만난 가라쓰관광협회의 이치마루 마유미 팀장은 이곳을 먹거리와 볼거리를 함께 갖춘 완벽한 관광지라고 소개하니까요. 물론 관계자의 말이니 100% 믿으시면 곤란하겠지만요.

[볼거리] 군데군데 숨은 역사의 숨결

규슈올레를 걷다보면 무수히 만날 수 있는 리본입니다. 규슈올레의 코스 개발과 표식 디자인 등은 한국의 제주 올레가 맡았습니다. 제주올레와 같이 이 리본을 따라 걸으시면 됩니다.
 규슈올레를 걷다보면 무수히 만날 수 있는 리본입니다. 규슈올레의 코스 개발과 표식 디자인 등은 한국의 제주 올레가 맡았습니다. 제주올레와 같이 이 리본을 따라 걸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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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가라쓰 코스를 걸었습니다. 시작점은 모모야마 텐카이치 휴게소입니다. 여기서 마지막인 하도마사키 해수욕장까지는 11.2km의 올레길이 마련돼 있습니다. 제주의 올레가 규슈로 건너가 만들어진 것이죠. 난이도는 '하'라고 되어있는데 만만하게 볼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험준한 길이 있는 건 아닙니다. '놀멍쉬멍'(놀면서 쉬면서) 걷는다는 제주 올레처럼 가라쓰 코스 역시 과거의 번영을 상징했던 진영터들 사이로 난 길들이 이어집니다. 400년 넘었다는 구시미치의 산길은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 같습니다. 그 길의 끝에서 올레꾼을 기다리는 건 나고야성터 옆에 있는 '사가현립 나고야성박물관'입니다.

가라쓰의 바다는 제주와 참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몰라도 가라쓰시는 서귀포시와 1994년부터 자매도시를 체결해 교류하고 있습니다.
 가라쓰의 바다는 제주와 참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몰라도 가라쓰시는 서귀포시와 1994년부터 자매도시를 체결해 교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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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물관이 다루고 있는 것은 일본에선 '분로쿠의 역'이라 부르는 임진왜란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가라쓰는 임진왜란을 정점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던 탓에 임진왜란의 역사는 도시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무료로 상설전시 중인 양국의 교류사는 조선과 일본의 시각으로 나누어져 있어 매우 흥미있게 다가옵니다.

박물관에서 만난 이경현 학예사가 일러준 대로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조선의 도공이 잡혀온 곳이 바로 가라쓰라는군요. 그 덕에 가라쓰 도자기는 일본의 3대 도자기로 지금도 명성을 떨치고 있지요. 가라쓰 도자기를 빚어내는 '히나타가마'도 올레길 중간에 만날 수 있습니다.   

[먹거리] 소라구이 껍질에 따라 먹는 청주 한잔 "캬~"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가 끝나는 히도미사키 해수욕장의 주차장에는 소라구이집이 즐비합니다.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먹는 소라구이 한점과 사케 한잔을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가 끝나는 히도미사키 해수욕장의 주차장에는 소라구이집이 즐비합니다.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먹는 소라구이 한점과 사케 한잔을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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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4~5시간쯤 걸리는 가라쓰 코스를 걷다 보면 중간중간 목이 타기도 하고 배가 고프기도 합니다. 코스의 시작점에서 3.7km 떨어진 '차엔 가이게쓰'(다도 문화체험)는 일본의 차 문화를 접하는 동시에 일본 정통 다다미방에서 잠시 쉬는 쉼터이기도 합니다. 기모노를 차려입은 종업원이 분말 녹차에 해당하는 '말차'를 정성스레 따라주는데 그 맛이 매우 진합니다.

미숫가루 같은 걸쭉한 녹차에 힘을 얻어 흡사 제주도 해안 길 같은 하도미사키 산책길을 지나 해수욕장에 들어서면 가라쓰 코스도 끝납니다. 여기에선 여행의 여운을 좀 더 가져갈 수 있는 소라구이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해녀가 아닌 해남이 앞바다에서 따왔다는 소라를 껍데기째 불판에 지글지글 구워서 파는 곳이죠.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가 끝나는 히도미사키 해수욕장의 주차장에는 소라구이집이 즐비합니다.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먹는 소라구이 한점과 사케 한잔을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규슈올레 가라쓰 코스가 끝나는 히도미사키 해수욕장의 주차장에는 소라구이집이 즐비합니다.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먹는 소라구이 한점과 사케 한잔을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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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소라만 쏙 빼먹으면 진짜 재미를 놓치는 겁니다. 40년째 소라를 구워왔다는 야마시타 타츠코(73) 할머니는 "보통은 이렇게 먹지"라며 청주(사케)를 소라껍데기에 따라 먹으라 일러줍니다.

햇살을 튕겨내는 바다와 함께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해진 술까지 넘어가면 기분이 소라마냥 말랑해지는 느낌입니다. 가라쓰 코스를 추천한 이치마루 팀장에게도 "소라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라쓰는 소라뿐 아니라 각종 해산물의 산지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인 건 오징어입니다. 가라쓰는 일본 내에서도 오징어회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횟감으로 적당한 오정어가 많이 잡혀서 그렇다는데 가라쓰시는 초밥·사가규(사가현산 쇠고기)와 더불어 오징어회를 가라쓰 3대 먹거리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갈까] 부산서 가는 밤샘 페리 여행  

뉴카멜리아호가 부산항으로 입항하고 있습니다. 이 배는 매일 부산과 후쿠오카를 오가는 카페리 여객선으로 최대 647명의 승객 수송이 가능하고, 220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선적할 수 있습니다.
 뉴카멜리아호가 부산항으로 입항하고 있습니다. 이 배는 매일 부산과 후쿠오카를 오가는 카페리 여객선으로 최대 647명의 승객 수송이 가능하고, 220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선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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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쓰와 가장 가까운 큰 도시는 규슈의 최대 도시인 후쿠오카입니다. 후쿠오카와는 지하철로도 80분이면 닿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고속버스도 있고, 철도도 있어 도시 간 교통수단은 넉넉합니다.

가라쓰와 후쿠오카 모두 부산을 마주한 도시들입니다. 비행기라면 불과 50분이면 닿을 수도 있는 거리이죠. 하지만 바삐 지내온 일상에서 여유를 찾아가는 길마저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신다면 여객선은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국경을 건너는 일은 확실히 색다른 경험이니까요.

하도미사키 해안은 석양이 아름다운 바다와 주상절리가 어우러져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장소로 유명합니다.
 하도미사키 해안은 석양이 아름다운 바다와 주상절리가 어우러져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장소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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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뉴카멜리아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넜습니다. 고속선과 비교했을 때 덩치가 큰 이 배는 어지간한 파도에도 운항이 가능할 정도의 우직함을 지녔습니다. 저녁에 부산에서 탑승하면 다음 날 아침 후쿠오카 항구에 여행객을 내려줍니다.

팁이라면 배를 좀 타봤다는 분들은 승선할 때 저녁거리를 빼놓지 않습니다. 비행기처럼 꼬치꼬치 수하물 무게도 따지지 않고, 술이며 치킨·족발·회를 잔뜩 들고 타도 말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이 만선을 한 어선 마냥 시끌시끌하고 흥겨운 건 여객선 여행의 재미입니다. 여기에 더해 승무원들이 추천하는 부산항 야경도 빼놓지 말아야 할 볼거리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취재는 고려훼리의 협조를 얻어 진행했다. 규슈올레에 대한 자세한 여행정보는 규슈관광추진기구 홈페이지 (www.kyushuolle.com)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태그:#규슈올레, #가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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