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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클리셰가 된 구절이지만 좋은 말이다. 느닷없지만, 연애에 적용시켜보자. 누구나 겪어봤을만한 짝사랑은 어떨까?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내도 돌아오는 답장은 성의가 없거나 아예 응답조차 없을 때가 있다. 밥을 먹자거나 영화를 보자고 하면 뭐가 그렇게 바쁜지 항상 기약 없는 나중으로 미뤄진다. 나는 이렇게 연애하고 싶어 죽겠는데 상대방의 마음은 굳게 닫힌 강철문처럼 단단하다. 두드리면 열린다며?

청년과 정치는 어떤가? 청년도 정치와 연애하고 싶다. 자기가 낸 목소리가 실제로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면 그 순간이야 말로 '연애 같은 정치'이며 '열린 정치'가 아닐까? 그러나 투표를 하거나 당원이 되어 정당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마주치게 되는 것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이나 좌절감이다.

많은 사람들은 청년세대에게 정치적으로 힘이 없는 이유를 청년세대의 정치적 무관심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일정부분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즉, 청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만드는 정책적, 제도적 미비함을 청년세대의 정치적 무관심 자체와는 별개로 따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무관심과 괴리감 사이에서

무엇이 청년으로 하여금 정치를 '허탈한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가? 가장 피부로 와 닿는 예시는 정치인들의 공약이다. 공약은 공적인 약속이다. 투표하는 선거인은 보통의 경우 입후보자의 공약에 따라 표를 던진다. 그러나 공약을 믿고 뽑았더니 바뀌는 게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최근 들어 정당 활동 혹은 단체에서 정치활동을 시도하는 청년들도 있다. 새누리당 이준석, 손수조,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장하나, 그리고 지금은 해체된 통합진보당 김재연 전 국회의원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정치권에 '청년'의 개념이 도입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양대 정당인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두 정당도 호의적이었다. '국회의원연구단체 청년플랜 2.0' 혹은 '함께여는미래' 등이 그 대표적 예다. 젊은 피를 수혈하자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실실적으로 정당 내에서 청년의 지위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고 있다.

정당 보조금 분배만 봐도 알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당보조금 150억 원에서 30%정도는 정책개발비로 10%는 여성참여비로 나가는 반면, 청년위원회에는 고작 1%도 명시되어있지 않다. 2014년 청년위원회 예산은 5천 4백만 원이 전부였다.

게다가 정당들이 체계적인 정치교육시스템을 통해 청년 정치인들을 양성하기보다는, 무분별한 인사 영입에 집중하면서 청년들은 정치에 참여할 기회에서 더욱 소외되고 있다. 정당의 기능이란 무엇인가? 여론형성 및 조직화, 정치지도자의 배출 이외에도 정치교육과 훈련을 담당하는 역할도 가지고 있다.

정당 내에 정치교육시스템이라는 토양이 굳건하면 몇 명의 훌륭한 장관, 대통령도 발굴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율하는 정치 능력, 공익성을 키워 주는 건 정당이 해야 한다. 현실은 다르다. 총선 전에 당내에 사람이 없으니까 느닷없이 성공한 기업가, 언론인, 교수를 영입한다.

청년들을 계속해서 정치 참여에 있어 좌절하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약·정책이 갖는 이중성에 있다. 정치권이 내놓는 대의(왜 이 공약을 내놓았는가?)가 그러한 공약이 추진되는 배경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가가 어떠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럴듯한 대의 뒤에 숨겨진, 겉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이해관계(누구에게 이 공약이 이익이 되는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린이집 누리과정 도입에 대해 여성복지, 출산장려, 보육지원 등의 대의가 이야기 되지만, 이러한 정책이 실제로 추진되는 과정에 들어갈 때는 어린이집연합회, 전국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 등의 수많은 주체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안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계약기간 연장을 통한 고용 안정이라는 대의 뒤에는 기업의 상대비용 절감이라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정당들이 정당 내부의 청년 정치인을 강조할 때도 청년의 발언권이나 참여라는 대의를 강조하지만, 청년을 '표밭'으로 인식하고 제스처를 취하는 정도의 정당이 갖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청년을 위한 공약 그 이면에는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다.

두려운 민주주체

대학생들이 정치를 두려워하거나 무언가 말하기 창피해하거나 혹은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 이유 역시 단순히 '정치적 무관심'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목표는 언제나 대학으로만 설정되어 있다. 우리는 민주주체로서의 시민이 되는 것을 교육받지 않고, '민주주체로서의 시민'이라는 개념이 시험에 나오느냐 안나오느냐, 나온다면 어떻게 그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하는지를 교육받는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정치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 합의점을 모색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교육에서 정치는 '합의점을 모색해 가는 과정'의 개념이 아닌 '시험문제의 답을 찾아내는' 진리의 개념으로 환원된다. 교과과정 외에도, 학생회 활동이나 학급회의가 좀 더 학생이라는 주체가 학교를 직접 바꾸면서 정치를 경험하도록 하는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정치적 효능감이 쌓일수록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국가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점차 넓혀나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발의한 제안이 내가 속한 집단, 공동체를 바꾸는 경험에서 느낄 수 있는 정치적 효능감을 우리 교육에서는 경험하면서 자랄 수 없다.

청년이 20대 중, 후반을 지나면서도 스스로 자립하기가 힘든 조건도 문제다. 사회적으로 몇 살에는 졸업을 해야 하고 몇 살에는 취업을 해야 하고 마치 매뉴얼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소셜 타임'이 청년들에게 부담감을 쥐어 준다. 이중에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엄청난 부담감이 청년 개인에게 주어지게 된다. 정치라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활동인 반면 내 생활조차 힘들어 진다.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으니 목소리를 낼 용기조차 거세당하는 것이다.

청년은 정치와 당당하게 연애하고 싶다. 자신이 낸 제안이 무시되지 않고 전 세대와 공동의 합의, 타협을 거쳐서 조금이라도 사회를 바꾸는 정치, '연애같은 정치' '두드리면 열리는 정치'가 하고 싶다. 청년 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이제 삽 하나 생긴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점점 곡괭이, 호미를 가져올 것이다. 그 흙길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청년세대로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세대가 합의의 길로 갈 수 있는 흙길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민환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청정넷은 7월 13일부터 7월 19일까지 서울청년주간(http://youthweek.kr/)을 열었습니다.



#청년정치#정치효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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