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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도입돼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듣던 검사 적격심사제로 검사 1명이 면직처분 됐습니다. 주요 언론들은 '11년 만에 첫 탈락자가 나왔다'고 단신으로 보도했지만 검찰 내부는 이 일을 두고 술렁였습니다. "내년엔 내 차례가 될 것"이라며 법무부의 적격심사 강화를 저지하겠다는 검사도 나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가뜩이나 '정치 검찰'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 검찰, 여기서 벗어나고자 몸부림 치는 일선 검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2월 25일 검사적격심사 결과로 면직 통보를 받은 A 검사는 비리 혹은 성추문 같은 일로 잘려나간 게 아니다. 오히려 법무부장관과 2003년엔 검찰총장 표창을, 2011년엔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은 적도 있다.

법무부는 A 검사를 퇴직시킨 건 검사 적격심사의 부적격 사유 즉 "검사가 직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검사로서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해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심지어는 당사자인 A 검사에게도 "퇴직을 명함"이라는 단 한 줄의 공문이 전달됐을 뿐, 부적격 사유는 통보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검사 적격심사라는 제도는 지난 2004년 1월 검찰청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검사들이 임용 뒤 7년마다 적격심사를 받도록 한 것으로 그동안 심사는 계속 돼 왔지만 심사 결과로 면직처분이 나온 건 처음이다.

A 검사에 대한 적격심사에 착수하기 직전인 지난해 10월 법무부는 이 제도를 강화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무부의 검찰청법 개정안은 현재 7년인 적격심사 주기를 5년으로 줄이고, 근무성적이 퇴출사유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국회에 제출한 의견조회서에서 법무부는 제도개선 배경으로 "검사 비리 사건이 수년간 지속적으로 발생해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다며 ▲ 2010년 그랜저 부장검사 ▲ 2011년 벤츠 여검사 ▲ 2012년 9억원 뇌물 부장검사 ▲ 2012년 피의자와 성관계 검사 ▲ 2014년 해결사 검사 등을 예로 들었다.

적격심사 강화 법안을 낸 데 이어, 제도 시행 11년 만에 처음으로 검사를 면직처분 했다는 점에서 법무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앞으로 검사 적격심사를 통한 면직처분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평생검사제 보완책으로 시작, 평생검사 없는데 솎아내기만?

하지만, 적격심사제가 도입된 배경을 살펴보면 과연 이 제도를 활용해 검사들을 솎아내야할 당위성에 의문이 생긴다.

지난 2004년 1월 검찰청법 개정으로 이 제도가 도입된 건 '평생검사제'와 맞물려 있다. 참여정부는 검사-검사장-고등검사장-검찰총장으로 돼 있는 검사의 직급과 호봉을 검사-검찰총장으로 단순화했다. 정년이 안 돼도 승진탈락시 사직하는 문화가 당연시 되고 이에 따라 검사들이 승진에 목을 매는 상황을 바꿔 검사의 신분을 보장하고 승진 경쟁에 대한 부담 없이 정년까지 검사로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자연스레 '노는 검사', 인사적체, 검찰 노령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게 검사 적격심사다. 평생검사제에 의존해 무사안일하게 정년을 보장받으려는 검사를 퇴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현재 평생검사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 이들은 없다. 인사철이 되기 전엔 '사법연수원 ○○기 간부들 용퇴', 인사가 발표되면 '고검장·검사장 탈락 검사들 줄줄이 옷 벗어'와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이어진다. 법무부부터 검찰 간부 인사를 발표하며 '고검장급', '검사장급'이란 용어를 써가며 평생검사제를 무색케 하는 형편이다. 

평생검사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보완책으로 만든 제도는 벌써 부적격 탈락자를 배출했고, 법무부는 이 제도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적격심사 한다지만, 심사위원은 100% 외부 인사

법무부는 외국의 사례를 들어 적격 심사강화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의 검찰관적격심사제도가 그것으로, 일본의 검사들은 3년마다 있는 정기심사에 모든 검사들이 적격심사를 받는다. 법무대신의 청구 또는 심사위원회 직권으로 수시 심사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기 심사에 의해 파면된 사례는 없고, 행방불명된 검사를 수시 심사를 통해 파면한 경우가 있는 등 활용도는 낮다.

적격심사위원 구성을 보면,  일본의 경우엔 11명의 위원 중 국회의원이 6명, 최고재판소 판사 1인, 변호사협회장 1인, 학사원 회원 1인, 사법제도에 관해 학식 경험을 가진 자 2인 등으로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돼 있다.

한국은 9인의 심사위원 중 검사 4명을 포함해 법무부장관이 지명·위촉하는 심사위원이 6명이다. 심사를 이끄는 위원장도 법무부장관이 지명한다. 검사의 퇴직을 건의하는 데엔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데, 법무부장관이 지명·위촉한 이들만 찬성해도 의결이 가능한 구조다. 한국과 일본의 적격심사위원회는 구성부터 다른 것이다.

적격심사 강화로 비위 검사를 막을 수 있을 거란 명분도 실제와는 동떨어진다. 적격심사 강화 방안의 세부 내용은 비위사실 적발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근무성적을 심사에 반영하는 게 핵심이다. 법무부가 예로 든 검사들 대부분이 부장 승진을 통과했거나 중요 보직을 거친, 근무실적이 우수한 이들이었다는 점에서 과연 비위 검사를 적격 심사로 걸러낼 수 있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에 면죄부를 준 '정치수사'로 비판받고 있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검사 적격심사를 통해 검사를 면직시킨 법무부는 구체적인 부적격사유도 밝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적격심사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더해져 '정치 검찰'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검사 길들이기, #검사 적격심사, #법무부, #비위, #평생검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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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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