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지인의 소개로 찾은 로사그룹홈. 미리내성지 가까이에 있는, 장미가 유난히 많이 핀 마을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로사'란 가톨릭성녀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영어로는 'rose' 즉 '장미'란 뜻이다. 벌써 이름부터 왠지 그곳에 있어야할 운명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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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화원장 로사그룹홈 마당에 서 있는 성모마리아상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미화원장에게서 성모의 마음과 친정엄마의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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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낳은 큰아이가 명함그림도 그려줘""어서오세요"라고 말하는 원장 이미화씨에게서 왠지 모를 수줍음과 단아함이 묻어난다. 그룹홈 원장 정도(?)라면 털털함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싹 달아났다.
"이 집은 이제 막 시작했다. 아이들은 셋(중3, 중2, 초3)이고, 앞으로도 더 올 예정"이라며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미화씨. 아하! 그랬구나. 이제 시작이었구나.
"우리 집 큰 아이가 그려준 것"이라며 건네주는 명함 속 그림이 예쁘다. 이때만 해도 '우리 집 큰아이'는 미화씨의 친자녀인 줄 알았다. 적어도 그룹홈 자녀와 구분되는 친자녀 말이다.
내가 왜 그런 느낌을 가졌을까. 그건 미화씨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우리 집 큰아이'라는 말투 때문이었던 게다. 평소 함께 사는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이 대목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그 '큰아이'는 전에 서울 복지시설에 있으면서 미화씨가 가슴으로 낳은 아이였고, 지금은 천안 백석대학에 진학해 기숙사생활을 하며 대학을 잘 다니고 있는 숙녀였다. "지금도 그 아이는 나랑 연락하며 여기를 제집처럼 들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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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사그룹홈 전경 정원에 성모마리아상이 서 있다. 이집도 어느 독지가가 임대해서 이미화원장에게 선물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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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녀원에 있을 때..."그녀가 "제가 수녀원에 있을 때..."라고 말문을 연 뒤 놀란 건 나였다. 혹시 실수할까봐 "네, 수녀원이라시면 수녀님?"이라고 되물었다. 그랬다. 미화씨는 7년 전만 해도 '글라라수녀'로 살았었다.
그랬던 그녀가 무슨 일로 속세로 나왔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 일을 하고 싶은 게 큰 이유"라고 고백했다. 이일? 그렇다. 바로 그룹홈을 열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는 일 말이다.
수녀원에 있으면서 복지시설에 있는 아이들과 만나며 그 아이들의 영혼을 그녀는 보았다. '저렇게 좋은 시설에다가 잘해줘도 아이들에게 뭔가 모를 큰 구멍이 있구나.'
그때부터 그녀는 "그 구멍을 다 메워주지는 못해도, 나라도 조그맣게 그 아이들의 구멍마개가 되어주자"고 맘먹었다. 그 구멍이란 바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라고 그녀가 덧붙였다. 그 아이들 중 "'못난 부모, 못된 부모라도 좋으니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하면 마음이 아팠다"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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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함을 보니 이 명함 뒷면에 그려진 그림과 글은 이미화원장이 가슴으로 낳은, 현재 대학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큰아이'가 그린 것이다. 앞으로도 이집에서 많은 아이들이 이 큰아이처럼 친정엄마을 만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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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여자아이들의 엄마가 되려했을까이쯤하고 왜 하필 여자아이들일까?(참고로 현행 청소년 그룹홈은 최대 7명까지 여아는 여아끼리만, 남아는 남아끼리만 모여 살게 되어 있다). 그에 대한 답은 가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자 아이들이 커서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으면 친정엄마가 무엇보다 그립다. 난 이 아이들에게 여기 있을 때도 엄마로서 살겠지만, 퇴소 후(취업연령이 되면 퇴소해야 한다)에도 계속 친정엄마가 되어주고 싶다."순간, 그 말을 하는 그녀 뒤로 성모마리아상(거실 창 밖에 보이는 정원에 세워진)이 눈에 들어오는 건 무슨 이유였을까.
이런 말을 나누고 있는 데, 현재 이집의 맏언니로 보이는 여중생이 인사를 하며 학교에서 돌아왔다. 인사를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는 그 아이는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까. 아직은 서로 처음이라 '덜 익은 정, 어색한 마음'이 서로에게 있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아이가 받을 친정엄마의 사랑이 눈에 그려지는 건 좀 전에 내가 받은 신선한 충격 때문이지 싶다.
버티고 있는 이집이 넉넉한 집이 되기를이런 이 집에도 "최고 어려움은 역시 돈"이라면서 미화씨가 웃으며 말했다. 이 집도 어느 독지가가 그룹홈하는 데 사용하라고 임대해서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다. 올해 시작한 터라 정부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없이 버티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화씨를 언니라 부르며 아무런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이 뜻을 함께 하고 있는 '이모(이집에선 아이들은 복지사를 그렇게 부른다)'가 있어 함께 버티고 있다는 것. 말 그대로 '지금은 버티고 있다는 것'이 앞으로 이 집이 해결해야할 숙제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이집을 시작할 때도 내 힘으로 한 게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느님께서 이때까지 하셨던 것처럼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그녀를 보며 잠시 잊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하느님의 딸 수녀였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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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화원장 아무리 평상복을 입고 있어도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선 수녀복이 훨씬 어울릴 것 같은 느낌, 그것이 바로 운명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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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어떤 아이가 더 올지 기대가 된다"는 말이 마치 소녀가 "내일 가는 학교소풍이 기대돼요"라 말하는 듯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오고 오는 모든 아이들의 친정엄마가 될 생각이라면 말이다.
"로사성녀는 불가능을 믿음으로 가능케 해주는 가톨릭성녀이고, 지금은 힘들게 시작하지만, 해낼 거라는 믿음으로 '로사 그룹홈'이라 이름 지었다"는 그녀에게서 자녀를 살리는 일이라면 슈퍼우먼이 되는 대한민국 '친정엄마'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