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은 어디가나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나도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쓴다. 내가 일하는 기관은 서비스기관이라 직원들이 마스크를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이용하는 분들은 많이들 쓰고 다니신다. 연계기관에 가도 수업을 받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다.

세상의 소리를 못 들어 눈치코치로 상대의 입모양을 보고 사회생활을 하는 난 메르스로 활동하는데 타격을 많이 받는다. 나름대로 눈치코치가 통하지 않아도 태연한 듯 행동하지만, 내심 항상 긴장하고 있다. 소리를 못 들어서 입모양을 보고 대충 알아 들으며 일을 하는데, 많은 이들이 마스크를 쓰니, 정말 힘이 든다.

이후 메르스가 확산하자, 지자체가 우리 기관을 비롯한 동종기관의 평생교육프로그램의 휴강을 지시했고 마스크를 쓰고 교육을 받던 분들이 휴강이라 오지 않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눈치코치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용객이 줄어들었다.

이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이는 청각장애와 메르스로 인해 벌어지는 하나의 해프닝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끼리 끼리 뭉쳐서 일하는 장애인들의 세상을 뒤로 하고 비장애인들의 세상속으로 뛰어들어와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의 적나라한 생존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한 주를 치열하게 보내고 나는 거울을 보고 놀랐다. 아니 이게 뭔가? 호러나 스릴러의 여주인공모양 한쪽 눈이 아주 새빨갛다. 단순한 충혈의 붉은색이 아닌 그냥 핏물이 눈에 가득 고여있다. 부랴 부랴 병원에 갔다.

"눈의 안압이 높아져서 실핏줄이 터졌네요. 과로하거나 스트레스일 수도 있으니 푹 쉬세요."

사람들의 입모양과 얼굴모양의 눈치코치를 열심히 보고 살 때는 멀쩡하던 눈이었는데 마스크로 가려진 사람들의 얼굴과 입 표정을 읽을 수가 없어 내 눈과 신경계가 많이 힘들었나 보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자주 코피가 터져 아예 부모님께서 학교 옆으로 집을 이사하기도 했다.

이제는 나만을 위해주던 부모님은 가시고 없다. 아무래도 시대가 달라져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일하다 보니 눈이 코보다 더 취약해졌나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의 핏줄이 터진셈이다. 별로 아프진 않고 시력에도 영향이 없다는데 보기가 일단은 참혹하다. 앞으로 이러한 선명한 핏물이 사라질 때까지는 2주 정도 필요하다고 의사가 말했다. 2주 정도면 메르스도 좀 잠잠해질까...

선글라스를 끼고 사무실에 있었더니 주변에서 말린다. 오히려 더 주목을 끄니 안 좋다며... 일단은 병원가느라 반차를 낸 김에  눈에 약을 넣고 계룡산의 넓은 숲길에서 큰 나무들을 바라보며 트레킹을 했다.

동학사 가는 길, 늦은 오후의 숲길은 무척 좋았다. 사람들도 별로 없고 혼자라서 이런 저런 생각도 정리했다. 마음에 덕지 덕지 앉은 때도 바람결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항상 철철 흐르던 계곡의 물길이 흐르지 않고 바닥의 돌들이 가뭄에 훤히 보여 좀 마음이 애잔해졌지만 작은 돌탑들도 쌓으면서 나름 모두를 위한 기도를 하니 훨씬 마음이 나아졌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지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거나 당하면 모두 다 해낸다는 세상이지만... 항상 좋은 마음을 넉넉히 먹지만, 몸은 마음과 달리 세월에 정직하게 반응해서 이러한 세상에 여전히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청각장애라 눈치코치로 살다가 눈치도 못 보아 눈의 핏줄이 터진 지금의 일은 소녀에서 여자였다가 두 딸의 엄마인 중년여자가 된 지금이 아닌,  우리 딸들이 낳은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되었을 때 다가올 일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때론 동심처럼 단순해지고 때론 조그만 바람과 낮은 빛살 한 줄기에도 고마워하는 넉넉한 마음이 생기는 것과 반비례로 몸은 점점 하향선을 타는 것... 이게 바로 인생아닐까. 그런 노후에 대비해 마음과 현실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이게 바로 예비노인의 삶인 것 같다.


태그:#청각장애인식개선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과의 소통 그리고 숨 고르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