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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코사니 가는 길.
 올드 코사니 가는 길.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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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루피요?"

1천 루피짜리 지폐를 내밀고 있는 내게 간디 아쉬람 매니저가 1루피를 말했다. 1루피를 달라는 줄 알고 다시 물었다. 1천루피를 내겠다는데 1루피를 달라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매니저는 빙그레 웃으며 어쩔 줄 모르는 나를 그 큰 눈으로 빤히 쳐다봤다. 1루피를 달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아, 예. 잠깐만 기다리세요."

나는 어깨에 걸쳐 멘 천 가방을 뒤적여 1루피짜리 동전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에게 동전을 내밀었다. 그는 1루피짜리 동전을 받아 들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입을 뗐다.

"1루피를 기부해도 상관없습니다."

매니저는 내게 1루피를 기부해도 상관없다고 거듭 말하며 덧붙인다.

"... 당신이 원하는 만큼 기부하시면 됩니다. 당신은 1루피를 기부하길 원하십니까?"

그때야 나는 '1루피만 내라'는 것이 아니라 '1루피 이상 당신이 원하는 만큼 내라'는 말뜻을 알아챘다. 애초 작정했던 천 루피를 다시 내밀었다. 천 루피는 간디 아쉬람에서 6일을 머물고 매일 한 끼 정도의 식사를 신세 진 대가다.

외국인들은 간디 아쉬람에서 일주일까지 머물 수 있다고 알려준 가텀씨 말로는 보통 인도 사람들은 간디 아쉬람에서 일주일 기준으로 먹고 자고 할 경우 500루피에서 1천 루피 정도를 기부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외국인 여행객임을 감안해 1천 루피를 내기로 했던 것이다.

일반 게스트하우스로 치자면 아주 싼 가격이었다. 코사니에서 가장 싼 게스트하우스에서 식사까지 제공받으려면 최소 하루 400루피를 지불해야 한다. 내가 1천 루피를 내밀자 매니저는 영수증까지 발급해주며 두 손 모아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나 역시 공손히 두 손을 모아 '가난한 여행자이다 보니 기부금을 적게 내 미안하고 또 잘 지낼 수 있어서 고맙다'며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서로가 고마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등에 걸쳐 멘 배낭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배낭을 걸쳐 메고 언덕길을 내려서는데 구멍가게 아저씨가 부른다.

간디 아쉬람 길목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아저씨와 정이 들었다.
 간디 아쉬람 길목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아저씨와 정이 들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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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오늘 코사니 떠납니까?"
"아니오."

간디 아쉬람을 오고가려면 골목길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골목길을 빠져나오기 전에 양옆으로 두 군데의 구멍가게가 있다. 한 사람은 콧수염을 길게 기른 중앙아시아 계통의 인디언이고 다른 한 사람은 평범한 인디언 아저씨다.

간디 아쉬람을 오고 갈 때마다 여기서 물이나 식빵, 과일 등을 사곤 했는데 늘 망설였다. 내가 지나칠 때마다 두 사람 모두 인사말을 건네 오기 때문이다. 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저 가게에 미안하고 저 가게에서 구입하면 이 가게에 미안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번가라 가며 물건을 구입해왔고 두 사람은 그걸 잘 알고 있다.

빡빡머리 영화배우 율 브리너가 나오는 아주 오래된 영화, <대장 부리바>(Taras Bulba 1962년작)의 코사크족처럼 콧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 사내가 다시 묻는다.

"어디에 숙소를 구했습니까?"
"올드 코사니 가는 쪽에요."
"아, 거기 참 좋은 곳이죠."

방귀 소리까지 들리는 방... 괜히 미안했다

올드 코사니 월세방 문틈으로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
 올드 코사니 월세방 문틈으로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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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사니에서는 옛 마을을 '올드 코사니'라고 부른다. 가텀씨와 락시미 아쉬람 부럼 선생이 민박집을 알선해줬다. 가텀씨와 내 방은 본래 한 개의 방이었는데 둘로 나눈 것이었다. 둘 사이에 얇고 헐렁한 문짝 하나로 연결돼 있다. 기침 소리는 물론 어지간한 방귀 소리조차 들려왔다. 가텀씨는 기침 소리를 죽여야 했고 나는 노트북 자판기를 조심스레 두들겨야 했다. 거기다가 몸이 피곤하면 코를 고는 습관이 있었기에 가텀씨에게 미안했다.

어차피 외국인들에게 주어진 일주일이 되면 간디 아쉬람에서 나와야 했다. 하여 며칠 전부터 가텀씨와 락시미 아쉬람의 부럼 선생에게 허름한 숙소라도 좋으니 적당히 머물 수 있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월세방 침대 머리맡으로 붉은 아침 기운이 들어온다.
 월세방 침대 머리맡으로 붉은 아침 기운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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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에 서서히 제 모습을 들어내는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와 구름으로 뒤덮힌 코사니 산아래 모습. 산책길에 펼쳐져 있다.
 아침 햇살에 서서히 제 모습을 들어내는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와 구름으로 뒤덮힌 코사니 산아래 모습. 산책길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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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도움으로 민박집에 월세를 얻을 수 있었다. 보름 정도 더 머물 작정이었는데 한 달을 계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세도 큰 부담이 없어 망설임 없이 그러자 했다. 애초 인도에 온 목적이 그러했듯 인도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좀 더 친밀하게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곳에서 한 달 이상을 머물러야 할 것이었다.

민박집이 자리한 곳은 대부분 농가로 이뤄진 올드 코사니와 뉴 코사니의 중간 지점에 있었다. 보증금 없는 5천 루피짜리 월세방은 그야말로 전망이 끝내 주게 좋았다. 방을 나서면 마당처럼 너른 베란다가 나오는데 그 베란다에 서 있으면 파노라마처럼 펼친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가 가슴팍으로 고스란히 안겨온다.

난다데비는 방 안에서도 품을 수 있다. 샤워 시설을 갖춘 화장실 딸린 3평 남짓한 방에는 얇은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거기에 노트북을 올려놓을 만한 간이 책상이 하나 있다. 그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창문을 통해 난다데비가 훤히 들어온다.

민박집은 이층 건물이다. 아래층은 살림집이고 마당처럼 너른 배란다가 있는 위층은 민박으로 사용하고 있는 방 세 칸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검은 피부에 콧수염을 기른 민박집 주인 비놋씨는 그 중에 첫 번째 방을 내줬다. 첫 번째 방의 침대 머리맡으로 아침 해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돈은 한 달 뒤에 주세요"

구름 걷힌 1900고지 북인도 올드 코사니의 차밭. 영국으로 수출을 할 만큼 질이 좋다고 한다.
 구름 걷힌 1900고지 북인도 올드 코사니의 차밭. 영국으로 수출을 할 만큼 질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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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어 놓고 돈을 지불하려 하자 나와 영어 수준이 엇비슷한 비놋씨가 손을 내 저으며 말했다.

"한 달 후에 지불하면 됩니다."
"예?"

나를 언제 봤다고, 중간에 인사말도 없이 사라지면 어쩌려고 선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인가.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내가 지갑을 매만지며 머뭇거리고 있자 그는 내 의중을 간파 했는지 덧붙인다.

"락시미 아쉬람의 부럼 선생은 내 친구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믿습니다."

그는 내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자신의 집을 '내 집처럼 여기시오'했던 부럼 선생을 통해 나를 믿고 있었다. 부럼 선생이 고마웠다. 두 차례의 만남으로 나를 철석같이 믿어 준 그가 고마웠다.

월세방에서의 첫날, 새벽 산책길을 나서기 위해 침낭 속에서 빠져 나왔다. 아직 방안이 어둡고 늦가을 날씨만큼 새벽 공기는 차갑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데 침대 머리맡의 창문 너머 동쪽 산자락이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방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오자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솟아오르는 붉은 햇살의 조명을 받아 거무스름한 어둠의 옷을 벗고 있는 만년설 히말라야의 여신 난다데비가 시나브로 흰 살결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섰다. 올드코사니로 향하는 산책길 앞으로 난다데비가 펼쳐져 있다. 민박집 주변에는 몇몇 호텔이 들어서 있는데 인도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어깨에 두터운 숄을 두르고 호텔 베란다에 줄지어 있다. 하지만 올드 코사니를 향해 길을 걷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저 황홀한 여신과 단둘이 걷는 기분이다.

호텔을 벗어나 올드 코사니로 접어들 무렵 난다데비는 점점 구름에 뒤덮여 가고 산 아랫마을과 숲은 온통 구름에 뒤덮였다. 멀리서 보면 나와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또한 구름에 덥혀 있을 것이었다. 구름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아침 햇살이 숲 속 곳곳을 뚫고 들어와 구름을 거둬가기 시작한다.

아스팔트가 깔린 올드 코사니로 깊숙이 들어서자 농가조차 쉽게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된 것인데 인적 드문 이 시골길에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것은 군사도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다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자그마한 호텔이 들어서 있고 한두 채의 농가가 뜨문뜨문 들어서 있을 뿐이다.

길 위에 뿌려진 꽃잎들... 평화로웠다

길거리에 누군가 꽃을 뿌려 놓았다.
 길거리에 누군가 꽃을 뿌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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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와 외떨어진 곳에는 차밭이 펼쳐 있다. 가텀씨 말로는 아주 오래 전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무렵부터 있었던 차밭이라고 한다. 이곳 코사니 차의 질이 좋아 영국에 수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차밭을 지나 한참을 걸었는데도 좀처럼 민가가 나오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그 어떤 곳으로 점점 깊이 빠져 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발길을 돌린다. 더 이상 낯선 길을 걷는 것은 무리였다. 한 달을 더 머물기로 했기에 조금씩, 조금씩 영역을 넓히기로 했다.

등굣길을 서두는 아이들과 환한 미소를 주고받다가 잠시 멈춰 섰다. 구절초를 닮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 위에 누군가 꽃을 흩뿌려 놓았던 것이다. 조금 전 지나쳤을 때는 분명히 보지 못했던 꽃이다.

내가 차밭으로 향할 때 누군가 뿌려 놓은 꽃들이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처럼 이별의 꽃일까? 어젯밤 함께 보낸 어느 누군가 이른 아침 떠나야 하는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이 꽃들을 뿌려놓은 것일까. 그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 꽃들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기를 바란 것이었을까? 적어도 그런 가슴 아픈 꽃은 아니듯 싶다. 길거리에 뿌려진 꽃을 보자마자 내안으로 아주 편안한 마음, 평화로운 마음이 스며들었다. 도대체 누가 이른 아침 길거리에 꽃을 뿌려 놓았단 말인가. 그 궁금증은 인디언 할머니를 만나고 풀렸다.

꽃이 뿌려진 도로 옆에 언덕 아래에서 인디언 할머니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 막 머리를 감고 길게 풀어 헤친 머리채를 말아 올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머리채가 길게 늘어져 있을 때의 할머니 모습은 인디언과 닮아 있었다.

"나마스테."
"나마스테."

산책길에서 만난 아메리카 인디언을 닮은 할머니로 부터 짜이를 얻어 마셨다.
 산책길에서 만난 아메리카 인디언을 닮은 할머니로 부터 짜이를 얻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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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을 하고 나서 내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식으로 소형 카메라를 내보이자 엷은 미소로 고개를 옆으로 까닥해 보인다. 긍정의 뜻이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 고맙다며 다시 인사를 올리자 할머니는 손으로 마시는 시늉을 하며 내게 말했다.

"짜이. 짜이."
"고맙습니다."

예상치 않은 할머니의 제안이었지만 나는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며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할머니의 낡고 허름한 집은 언덕 위에 있었다. 집 앞으로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 낡은 의자를 전망 좋은 곳으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걸레를 가져와 의자를 깨끗하게 닦아 놓고 내게 권한다.

내가 의자에 앉아 난다데비를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을 무렵 할머니가 짜이를 내왔다. 할머니처럼 콧물을 훌쩍이며 짜이 잔을 들고 집안을 둘러 봤다. 부엌에는 장작개비 몇 개로 불을 지핀 흔적이 보인다. 조금 전 짜이를 끓인 흔적이다.

여느 농가처럼 할머니 집에는 두 개의 작은 방이 있었는데 하나는 침실이고 다른 작은 방에는 힌두 신들의 사진이 다양하게 걸려 있다. 작은 신전인 셈이다. 그리고 방문 앞 난간에는 히말라야 설산 난다데비를 향해 향불이 타오르고 있다. 오랜 세월을 가늠하게 해주는 향로 등의 제물로 보아 매일 아침 향을 지피고 힌두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듯했다.

짜이를 다 마실 무렵 방안에서 할아버지가 나왔다. 그는 할머니처럼 영어를 전혀 못했다. 하지만 그가 힌두 신들이 모셔져 있는 방안을 손짓하는 것으로 보아 '종교가 무엇이냐' 물어 보는 것 같았다.

"나는 특별하게 믿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모든 종교의 신들을 경배한다."

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하늘을 향해 손짓하며 두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며 '나마스테'라고 말했더니 노부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환하게 웃는다.

히말라야 설산이 훤히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한 할머니의 집에는 부엌과 두 개의 방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힌두신을 모셔 놓았고 그 앞에 향불을 지펴 매일 아침 기도를 드린다.
 히말라야 설산이 훤히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한 할머니의 집에는 부엌과 두 개의 방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힌두신을 모셔 놓았고 그 앞에 향불을 지펴 매일 아침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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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집 근처에서 봤던 차밭이 떠올라 손짓, 발짓으로 '짜이 농사를 짓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까닥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다. 노부부의 집을 빠져 나오면서 혹시 몰라서 "머니? 루피?"했더니 슬며시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경솔한 짓을 했구나'싶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노부부의 미소는 짜이 한잔에 담긴 자비심을 돈으로 환산하려 했던 내 자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간디 아쉬람에서 나오면서 기부금을 냈을 때처럼 이 정도의 돈이면 충분하겠지 식으로 몸 속 깊이 박혀 있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통제 당하고 있었다. 스스로 낯선 인도 땅에서 자본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길을 걷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실상은 자유롭지 못했다. 자본에 통제 당하고 있었다.

노부부의 집을 내려서다가 길거리에 뿌려진 꽃들이 떠올랐다. 다시 노부부의 집으로 올라가 저만치 꽃들이 뿌려진 도로를 손짓했더니 할머니가 웃는다. 그리고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치더니 합장을 하며 힌두어로 뭐라 말한다. 그 말 중에서 내가 알아듣는 단어가 딱 하나 있었다.

"시바!"

길거리에 뿌려진 꽃은 힌두신, 시바에게 바치는 꽃이었다. 할머니와 간단한 대화조차 나눌 수 없어 할머니의 의중을 알 길이 없었지만 할머니의 꽃은 단순히 시바 신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었다. 할머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할머니가 꽃을 뿌리는 순간, 이미 할머니 자신의 꽃이었고 또한 꽃이 뿌려진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꽃이었다.

꽃이 뿌려진 길을 걸으며 어찌 나쁜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 길거리에 뿌려진 그 꽃을 만나는 순간 내 안으로 평화로운 마음이 깃들지 않았던가. 할머니가 길거리에 뿌린 꽃에는 평화로운 마음이 깃들게 하는 자비, 낯선 이방인을 불러 짜이 한잔을 대접하는 자비로운 마음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평화로운 아침은 자비심이 깃든 길거리에 뿌려진 작은 꽃과 낯선 이방인을 위한 짜이 한 잔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세상의 평화는 자비심이 담긴 길에 뿌려진 꽃과 짜이 한잔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세상의 평화는 자비심이 담긴 길에 뿌려진 꽃과 짜이 한잔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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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간디아쉬람 기부금, #올드 코사니, #월세방, #산책길 꽃과 짜이, #자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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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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