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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창문과 바닥을 닦고 있다. 아이들도 손을 거들었다.
 부모들이 창문과 바닥을 닦고 있다. 아이들도 손을 거들었다.
ⓒ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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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열 시, '꿈꾸는 어린이집' 마당에는 벌써 부모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평일의 피로를 늦잠으로 달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다른 곳에 맡기면서까지 터전으로 달려왔다. 봄, 가을 1년에 2번 있는 대청소날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다 보니 터전(어린이집)의 대청소 역시 학부모들이 스스로 해결한다. 물론 돈을 모아 전문 청소용역업체에 위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돈 문제를 떠나 청소가 공동육아 부모들에게 주는 의미들이 남다르기에 부모들이 직접 청소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우선 청소를 하면서 부모들이 어린이집 시설의 현재 상황을 직시할 수 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 화장실, 마당, 모래놀이터 등을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부실한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채워간다.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직접 청소하면서 돈을 주고 시켰을 때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공간에 대한 애정을 쌓을 수 있다. 또한 함께 청소를 하면서 다른 부모들과 정을 쌓아가는 것 역시 대청소의 중요한 목적이다.

터전 곳곳에는 역할 분담표가 붙어 있었다. 시설이사를 맡고 있는 '수박'이 사전에 터전을 면밀하게 둘러보고 필요한 일들을 세분화했고 그 역할에 맡게 부모들을 배치했다. 세세하게 짜여진 역할 분담표에서 전문가다운 꼼꼼함을 엿볼 수 있었다. 터전 마당에는 수박이 가지고 온 전문 장비들이 즐비했다. 가정집에서는 갖추기 어려워 보이는 전문적인 공구세트는 물론이고, 공사현장에서나 보았던 이름도 알 수 없는 꽤 무겁고 값나가는 장비들도 있었다. 

터전 실내에서는 주방, 각 방, 화장실, 베란다 등 '아마'들이 바쁘게 묵은 먼지들을 닦아내고 있었다. 부모들은 창문과 선풍기를 뜯어내고, 에어컨 필터를 빼냈다. 모래놀이터에는 정화 차원에서 천일염을 뿌리고 갈아엎었다. 아이들과 함께 가꾸는 텃밭에서도 겨우내 쌓인 낙엽들을 걷어내는 일이 한창이었다. 정작 본인들 집에서는 대청소를 하지 않을 텐데 어린이집을 위해 구슬땀 흘려가며 일하는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일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부모들이 청소하는 것에 대해 여러 목소리들이 있다. 맞벌이하는 학부모들의 고충, 여유없는 학교재정,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을 다듬어보고자 하는 마음들... 학교재정으로 용역을 통해 청소하는 방식도 장점도 있다. 시간되고 의사가 있는 부모들이 모여서 청소가 주는 교육적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실청소를 하는 것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화장실이 준 깨달음

아이들 텃밭에서 낙엽을 걷어내고 있다.
 아이들 텃밭에서 낙엽을 걷어내고 있다.
ⓒ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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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여에 걸쳐 화장실의 미끄럼방지 깔판을 씻고 바닥과 벽 청소를 했다. 찌든 때로 색이 검게 바랜 타일 사이를 집중적으로 닦았다. 몇 번 닦으니 하얀 색이 되돌아왔다. 화장실 문 앞에 더러워진 걸레들이 놓여 있었다. 화장실 청소하느라 걸레를 빨 수 없어서 부모들이 문 앞에 놓은 것 같다.

10여 분에 걸처 손으로 걸레를 빨아서 문 앞에 놓으려고 보니 다른 걸레들이 쌓여 있다. 또 다시 빨았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걸레만 빤 것 같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걸레들이 끊이지 않고 방문했다. 하지만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허리가 너무 아팠다. 나를 안쓰럽게 쳐다본 장금이(영양교사)가 한마디 했다.

"그냥 세탁기로 돌리면 될 텐데... 너무 더러우면 버리고."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왜 그렇게 걸레를 열심히 빨았을까? 너무 더러우면 그냥 버려도 됐을 텐데... 생활의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1층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다. 허리가 쑤시게, 손마디 시리게 느꼈다. 지금까지 살면서 화장실 청소를 해본 적이 없었다.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알지 못한, 누군가의 수고로움 때문이란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여태껏 고생했을 어머니와 안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아내의 수고를 덜어줘야겠다.

돼지혀 잘리다

1시를 훌쩍 넘겨서야 청소가 얼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개학맞이 고사 준비를 했다. 터전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탁자 위에 돼지머리와 과일 떡 등을 올려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고사상이 차려졌다. 준비회의 당시 진짜 돼지머리 말고 모형을 쓰자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놀라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신기해하고 재밌어하면서 쓰다듬었다.

우리 터전에 올해 새로운 식구가 된 조합원들의 인사가 있었다. 6가구가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별칭으로 소개하려니 어색해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새로운 식구들에게 환영의 큰 박수를 보냈다.

개학 맞이 고사를 지내고 있다. 아이들도 함께했다. 돼지는 우리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었다. 혀마저도.
 개학 맞이 고사를 지내고 있다. 아이들도 함께했다. 돼지는 우리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었다. 혀마저도.
ⓒ 김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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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수박(시설이사)가 고사를 진행했다. 수박이 미리 준비한 몇 장의 고사 제문에는 '미디어귀신', '불량식품 귀신', '불통귀신' 등이 써있었다. 수박은 "귀신들아 물러가라"하며 종이를 한 장씩 불태웠다. 불이 붙은 종이는 눈깜짝할 새에 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부모와 아이들을 깜짝 놀랐다. 마술용 특수용지였던 것이다. 아이들의 재미를 위해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쓴 수박의 센스에 또 한번 놀랐다.

이사진부터 각 방별로 어린이집의 발전과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절을 했다. 아이들도 절을 했다. 절할 사람이 더 이상 없자 지게(재정이사)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우며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후 칼을 가지고 나왔다.

설마설마 했다. 지게는 매우 익숙하게 돼지 혀를 잘랐다.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 자연스레 얼굴이 찡그려졌다. 꼭 굳이 그렇게 해야 했나 생각했지만 원래 고사 지내고 바로 썰어서 먹는 거라며 지게는 왼손에 돼지 혀를 올려놓고 두부 썰 듯 잘라 한 조각을 내 입에 집어넣었다. 처음 먹어 보았다. 순대간과 비슷한 식감이지만 더 쫄깃했다. 돼지 특유의 냄새가 났다. 그래서 얼른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지게가 아이들한테 돼지 혀를 보여주며 말했다.

"너희들도 먹을래?"

아이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거부할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한 아이가 신기한 듯 조심스레 하나 먹더니 다른 아이들도 먹겠다고 달라붙었다. 지게는 돼지 혀를 계속 썰어 아이들 입에 넣어주었다.

돼지 혀는 금세 동이 났다. 아이들은 맜있다며 더 달라고 했지만 이미 돼지 혀는 증발해 버린 상태였다. 아이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지게가 돼지 귀를 만지작 거렸다. 아이들 보는 앞에서 돼지 귀를 잘라 버리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적이지 않을 것 같아 말렸다. 지게는 주방에 가서 썰어오겠다면 돼지머리를 들고 사라졌다.

우리들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부모들이 각자 준비한 나물들과 밥이 큰 대야 안에서 맛있게 비벼져 있었다. 26가구가 함께 아이들을 키워가는 우리 공동육아의 어린이집의 모습이 비빔밥과 닮아 있었다. 서로의 맛을 지켜가면서도 함께 모여 더 매력적인 맛을 만들어가는 모습.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커 가길 바란다.


태그:#꿈꾸는 어린이집, #꿈구는, #어린이집, #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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