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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아래 새정치연합)이 공천 혁신을 내세웠을 때다. 양당은 서로 '혁신'의 타이틀을 쟁취하기 위해 당 개혁을 주장했다.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박근혜 대통령은 '변화=공천=물갈이(현역 의원 25% 탈락 규칙)'라는 보다 구체적인 혁신의 원칙을 제시했다.

이후 새누리당은 현역 의원 46.6%를 솎아냈다. 잘라낼 의원이 많은 다수당은 현역 의원을 물갈이 하는데 유리하다. 그렇다 해도 확실한 것은 새누리당 스스로 제시한 혁신의 기준을 충족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 새누리당의 혁신은 성공적이었다.

고비 때 혁신 이미지 선점한 새누리당

19대 총선으로부터 약 3년이 지났다. 또한 20대 총선을 1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정윤회 문건 파문과 연말정산 파동, 주민세·자동차세 논란 등 잇따르는 정부 정책의 혼선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일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연이은 실책이 자칫 당의 발목까지 잡을까 노심초사 하던 와중에 유승민 의원이 지난 2일, 의원총회를 거쳐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이번 새누리당의 원내대표 경선을 두고 '친박 VS 비박'의 대결인 동시에 '당청관계 회복 VS 혁신'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이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이번 의총을 통해 '비박'으로 '혁신'을 이루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내실이 있든, 없든 '혁신'이라는 타이틀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은 19대 총선을 앞뒀을 때와 똑같다.

네거티브 전략, 토론사회자까지 '걱정'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에 선출된 날, JTBC 뉴스룸 2부에서는 새정치연합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가 진행됐다. 사회자는 토론 초반 "저희들이 쟁점으로 정한 것이 서너 가지 되는데 어려우면 뒤에 한 두 가지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후 사회자는 "마지막으로 좌클릭, 우클릭 당의 정체성이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느냐를 토론하려 했는데 도무지 시간이 되지 않는다"며 토론을 마무리지었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여론조사에 '지지후보 없음'의 포함 여부 ▲계파 간 공존 가능 여부 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만 논쟁이 오갔다. 토론은 그동안 누가 잘못했는지를 가리기 위한 네거티브 공세가 주를 이뤘다. 계파 갈등을 종식시킬 만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나 책임 있는 발언은 전무했다.

당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할 지를 이야기하며 새정치연합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였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사회자가 토론 도중 "한 가지 생각이 좀 드는 게 이번 전당대회 끝나면 이렇게 서로 계파 문제로 싸웠는데 별 문제가 없겠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당내 경선 때마다 증폭되는 계파 갈등 "당 스스로 분열하는 것"

새누리당은 최근 정윤회 문건 파문과 정부 정책의 혼선으로 발생한 지지층 이탈을 막고자 혁신의 일환으로 비박계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같은 날 새정치연합은 TV토론회에서 계파 갈등의 온상을 드러내며 당대표 후보자조차 '저질 토론'이라고 말하는 촌극을 빚었다. 어느 정도 지도부와의 위계질서가 형성돼 있는 새누리당은 당내선거 이후 일정 수준의 교통정리가 이뤄지지만, 계파 연합의 과두체제인 새정치연합은 계파 갈등이 일상적이라는 평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 구경꾼 그리고 방해꾼 새누리당은 최근 정윤회 문건 파문과 정부 정책의 혼선으로 발생한 지지층 이탈을 막고자 혁신의 일환으로 비박계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같은 날 새정치연합은 TV토론회에서 계파 갈등의 온상을 드러내며 당대표 후보자조차 '저질 토론'이라고 말하는 촌극을 빚었다. 어느 정도 지도부와의 위계질서가 형성돼 있는 새누리당은 당내선거 이후 일정 수준의 교통정리가 이뤄지지만, 계파 연합의 과두체제인 새정치연합은 계파 갈등이 일상적이라는 평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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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민주당 역시 계파에 따른 과두체제로 공천 갈등을 원만히 조율하기 힘든 구조였다. 게다가 시민사회단체와의 통합으로 연합 정당 구도가 되면서 공천 갈등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공천 파문, 계파 갈등을 대비하지 못했다. 광주 동구에서는 경선 과정에서 사상자까지 발생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 과정에서도 혼선을 빚었다. 심지어 선대위가 출범하는 날 당 최고위원(박영선 의원)이 공천 과정을 비판하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선대위 명단에 포함됐던 당내 핵심 인사(손학규 전 대표)는 선대위 불참을 선언했다. 선대위가 출범했지만, 공천 갈등은 마무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공천 혁신의 성과를 거둔 쪽은 새누리당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총선 패배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계파 갈등의 당사자들도 이 같은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문재인 의원은 토론회에서 "친노, 비노가 평소에는 얘기되지 않는다. 우리가 당내선거를 치르면 이것(계파)이 우리 스스로를 분열시키고 공격하는 그런 프레임으로 증폭된다"고 진단했다.

물론 이렇게 '계파 갈등'이라는 큰 틀로 뭉뚱그려 비판하는 것은 자칫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게 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과 문제의식을 마냥 외면하기는 어렵다. 새정치연합은 야당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을 뿐만 아니라 1년밖에 남지 않은 총선을 대비해야 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지난 2일 토론회에서와 같은 계파 간 충돌 자체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앞으로 당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토론회에서 보였던 19대 총선 패배의 그림자

같은 자리에서 이인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룰 논쟁을 지루하게 해가지고 국민들에게 실망 끼쳐 드릴 거면 저는 이 자리에서 퇴장하는 게 옳다. (중략) 이제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시고 민생과 혁신을 이야기하는 전대를 하도록 해주시던가 아니면 전 이 자리에서 나가겠다."

그러나 토론회가 끝날 때까지 민생에 관해서는 소득 주도 성장을 하겠다는 등의 짧은 설명 몇 마디가 전부였다.

새누리당은 혁신(이미지)을 선택했다. 유승민-원유철 조가 선출되자 "청와대 눈치만 살피는 여당이 아닌 당이 정치의 중심에 서길 바라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 (심상정 의원 트위터)라는 평가가 나왔다. 친노, 비노, 486 각 계파가 포지셔닝에만 몰두했던 토론회의 잔상에서 19대 총선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19대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 152석, 민주당 127석이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www.reframelive.com)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계파, #문재인,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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