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는 안산 하늘공원의 정식명칭은 하늘공원부곡공원묘지다. 1986년 시립 공설 공원묘지로 건립된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 100명이 잠들어 있는 봉안담이 마련되어 있다.
▲ 안산 하늘공원 세월호 봉안담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는 안산 하늘공원의 정식명칭은 하늘공원부곡공원묘지다. 1986년 시립 공설 공원묘지로 건립된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 100명이 잠들어 있는 봉안담이 마련되어 있다.
ⓒ 박호열

관련사진보기


"보고 싶은 승혁이에게. 벌써 널 보낸 지 8개월. 하루하루가 힘들 것 같은데 어느새 하얀 눈송이가 내리는구나. 행복한 그곳에서 잘 있으리라 믿는다. 아직도 가슴이 먹먹한데 오늘도 너의 곁에 와서 우리의 옛일을 더듬어보는구나. 참 착하고 예쁜 우리 아들이었는데… 승혁아! 엄마아빠는 늘 승혁이를 가슴에 품고 있단다. 사랑한다, 승혁아!"
- 하늘로 보내는 편지(단원고 2학년 6반 김승혁 엄마아빠)

2014년 4월 16일 이후 시간이 멈춰 버린 단원고 아이들의 마지막 쉼터가 안산에 있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까르르~ 웃음소리에 왁자지껄 떠들며 청춘의 빛을 마음껏 발산하던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영원한 수학여행을 떠난 곳, 안산 하늘공원입니다. 잔혹한 갈림길에서 살아 돌아온 아이들은 겨우 75명뿐이었습니다.

2015년 새해를 맞아 지난 2일 호주머니에 노란 리본 챙겨 만지작거리며 하늘공원으로 가는 길에 나섰습니다. 채 피지 못한 청춘이 안타까워서일까요. 하늘은 날카로운 바람을 보내 공원 입구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어대고, 바싹 마른 잎들은 '세월꽃' 인양 안간힘을 쓰며 부르르 떨고 있습니다.

수암봉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하늘공원은 1986년 안산시 공설 공원묘지로 건립된 후 묘역과 봉안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묘역을 지나 담장 모양의 봉안담 중 한 곳에 들어서면 '세월호 희생자(단원고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기역자 형태의 봉안담이 눈 안 가득 들어옵니다. 단원고 2학년 100명의 아이들의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때로는 교실에서, 때로는 친구들과, 때로는 고독하게, 때로는 공책에 남몰래 기록하며 꿈을 키우던 아이들은 한날 한시에 지상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슬처럼 사라진 아이들은 얼마 후 엄마아빠의 통곡을 뒤로 하고 한 명씩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하늘공원 한 켠의 봉안담을 교실 삼아 칸칸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잘 생기고, 예쁘고, 복스러우며 믿음직스럽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거나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사진 속에서 걸어 나와 친구들과 장난을 치거나 수다를 떨며 하늘공원 곳곳을 뛰어다닐 것처럼 싱그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갇혀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시간은 엄마아빠의 지극한 사랑으로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대신 엄마아빠와 친구들은 새로운 교실이 된 봉안담을 생전의 해맑은 모습을 담은 아이들 사진과 꽃, 절절한 마음이 담긴 쪽지들로 예쁘게 단장해 '4월 16일 이전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유가족 희망은 정부에서 힘 합쳐주는 건데…"

안산 하늘공원 봉안담에 안치된 단원고 2학년 6반 고 김승혁군 가족사진. 군에 간 큰 아들이 자대배치를 받은 후 가족사진을 보내 달라고 해 4월 16일 열흘 전에 찍은 마지막 가족  사진이다. 엄마 왼쪽이 승혁이 오른쪽이 쌍둥이 형 준혁이다.
▲ 단원고 2학년 6반 고 김승혁군 봉안함 안산 하늘공원 봉안담에 안치된 단원고 2학년 6반 고 김승혁군 가족사진. 군에 간 큰 아들이 자대배치를 받은 후 가족사진을 보내 달라고 해 4월 16일 열흘 전에 찍은 마지막 가족 사진이다. 엄마 왼쪽이 승혁이 오른쪽이 쌍둥이 형 준혁이다.
ⓒ 박호열

관련사진보기


단원고 2학년 6반 고 김승혁군의 아버지 어머니가 새해를 맞아 안산 하늘공원 세월호 봉안담을 찾아 승혁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 김상길씨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힘을 합쳐줘야 하는데, 정부가 틀어버리면 누가 밝힐 수 있겠냐”며 깊은 시름을 털어 놨다.
▲ "승혁아~ 엄마아빠가 왔어" 단원고 2학년 6반 고 김승혁군의 아버지 어머니가 새해를 맞아 안산 하늘공원 세월호 봉안담을 찾아 승혁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 김상길씨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힘을 합쳐줘야 하는데, 정부가 틀어버리면 누가 밝힐 수 있겠냐”며 깊은 시름을 털어 놨다.
ⓒ 박호열

관련사진보기


멈춰버린 시간 앞에서 한없이 사진을 보던 한 엄마아빠를 만났습니다. '김승혁 1997.6.3.~2014.4.16.' 승혁이는 4월 15일 밤 9시경 아빠에게 전화해 무슨 선물을 사갈지 물었습니다. 마지막 통화 후 일주일이 지난 23일 승혁이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승혁이는 어떤 아들이었을까. 아버지 김상길씨는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했으며, 눈가에는 깊은 속울음이 맺혔습니다.

"승혁이는 위에 쌍둥이 작은 형과 군대 간 큰형이 있어요. 살아있는 아들들은 잘 해주고 있어요. 우리가 힘들어서 그렇지 허허… 준혁이는 다른 학교를 다녀 천만다행 참사를 피했어요. 승혁이는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아주 착한 딸 같은 아들이었어요… 엊그저께 책상에서 뒤늦게 승혁이가 엄마아빠에게 쓴 편지를 찾았어요. 어려운 집안과 가족을 생각하는 의젓한 내용이어서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아버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유족의 애끓는 마음이 잘 반영이 되도록 특별법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수차례 약속했습니다. 해가 바뀌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국회 특별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앞두고 있습니다. 김상길씨는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까요.

"올해는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유가족의 희망은 정부에서 힘을 합쳐주는 거거든요. 그런데 정부가 틀어버리면 누가 밝힐 수 있겠어요? 대통령이 무서워서 다들 나서지 못하는 상황인데(깊은 한숨)… 그래도 특별조사위원회의 새누리당 위원들이 정부 눈치만 보지 말고 최소한이라도 협조를 했으면 하는 기대는 품고 있어요. 그래도 안 되면 정부와 힘겨운 싸움을 해서라도 진상을 규명해야죠."

아버지는 "큰 아들이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군에서 전화를 한다"며 그제야 눈가에 엷은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새해에 "승혁이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냐"는 기자의 물음에 어머니는 "저는 우리 아이 이름은 마음속으로만 부르지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아요"라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기자도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하늘공원에 세 시간 남짓 머무는 동안 기자는 헤어진 여친의 남동생 진광이에게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왔다는 '의리남' 박훈희(관동대 졸업)씨, 첫 조카 성원이가 따뜻한 곳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라고 기도하기 위해 온 이모 가족 등을 만났습니다. 박씨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감추려고 해 진상규명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움의 벽, 사랑의 벽, 통곡의 벽

‘세월호 희생자(단원고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안산 하늘공원 세월호 봉안담. 아이들의 봉안함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쓴 편지와 쪽지, 국화, 과자, 음료수 등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
▲ 안산 하늘공원 단원고 학생 봉안함 ‘세월호 희생자(단원고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안산 하늘공원 세월호 봉안담. 아이들의 봉안함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쓴 편지와 쪽지, 국화, 과자, 음료수 등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
ⓒ 박호열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희생자(단원고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안산 하늘공원 세월호 봉안담 아래에 2학년 5반 고 이진환군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보고싶다 remember 4.16 진환’이라는 글귀를 장식한 팝아트를 붙여 놓았다.
▲ '리멤버 416' ‘세월호 희생자(단원고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안산 하늘공원 세월호 봉안담 아래에 2학년 5반 고 이진환군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보고싶다 remember 4.16 진환’이라는 글귀를 장식한 팝아트를 붙여 놓았다.
ⓒ 박호열

관련사진보기


안산 하늘공원 봉안담에는 자식을, 형제를, 친구를, 제자를 먼저 떠나보낸 이들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계절이 세 번 바뀌고 새해를 맞았지만 봉안담 어느 구석에도 잊힌 흔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사랑과 분노가 정비례하며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의 영혼을 시린 가슴으로 끌어안고 있습니다. 

하늘공원 봉안담은 단원고 교실처럼 국화와 친구 사진·편지·쪽지·과자·사탕·음료수 등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아이들의 봉안함에는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며 함께 찍은 친구들의 사진이 많았습니다. 단란한 가족사진을 넣어 만든 교회 달력도 있습니다. 가족사진이 있는 달은 4월이었습니다.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엄마아빠와 누나·친구·선생님이 쓴 편지와 쪽지에는 더 안아주지 못하고, 더 함께하지 못하고, 더 사랑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그렁그렁 눈물이 되고 통곡이 되어 차갑게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엄마 맘에 엄마 눈에 가득한 내 사랑 정은이… 세상을 다 녹여버릴 것 같은 맑고 평화로운 그 웃음이 사무치게 그리워 엄마 가슴에 그 미소를 가득 품고 또 품는단다. 고맙고 사랑스러운 딸…"(2학년 2반 박정은 엄마)

"아들 새해 첫날이다. 엄마아빠랑 아들 보러 왔어. 선균 엄마님이 떡국 가져왔네. 선균이랑 맛있게 먹어. 옷 따듯하게 입고 있겠지. 아빠는 아들 옷 입고 왔어… 미안해 사랑한다. 잘 있어. 또 올게."(2학년 4반 나강민 아빠)

"늘 보고픈 내 동생 순범아. 오지 않을 것 같던 2015년이 어느새 하루 남았구나. 잘 지내고 있지? 가족들이랑 떨어져서 외롭지 않지? 별이 된 순범아 사랑해."(2학년 6반 권순범 누나)

"오늘 생일 너무 축하해. 친구들이 너 엄청 보고 싶어 하던데. 꿈에 자주 찾아가줘. 거기선 부디 더 행복하게 지내길 바랄게~ 생일짱. 축하 축하."(2학년 7반 손찬우 친구)

"너무도 사랑스러웠던 나의 제자 은정아. 그 어떤 말로 너를 표현할 수 있겠니. 분명 하늘에서도 별과 같이 빛날 울 애기. 선생님은 네가 그리워 가슴이 아프다. 넌 정말 훌륭한 아이였어 은정아."(2학년 9반 조은정 길쌤)

아이들에게 쪽지를 쓴 엄마아빠의 삶은 바뀌었습니다. '엄마, 아빠'로 불리던 이들은 이제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 유가족을 지난 한 해 동안 박근혜 정부는, 새누리당은, 일부 언론은 '거리의 투사'로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엄마아빠들은 올해 1월 1일 현재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171일째 거리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11일 공식적인 수색은 끝났지만 '희망과 치유의 공간' 팽목항에도 세 가족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조은화(1반)·허다윤(2반)·남현철(6반)·박영인(6반)과 양승진·고창석 선생님 그리고 일반인 승객인 권재근씨와 아들 권혁규군, 이영숙씨와 세월호의 원형 그대로의 인양을 기다리기 위해서.

2015년 새로운 달력을 넘기기 시작했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달력과 함께 잊힐 수도 지워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새해 첫 날은 또 다른 4월 16일뿐이니까요. 진상 규명이 되는 그날까지 매일 매일이 2014년 4월 16일일 테니까요.


태그:#안산 하늘공원, #세월호 봉안담, #세월호 인양, #하늘공원부곡공원묘지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