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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씩 비가 새는지 부엌 천장으로 물기가 배어 나와서 지붕에 올라 가 살펴봐도 새는 부분을 찾지는 못했다. 우리 집 지붕은 칼라 강판으로 이었지만 채광을 위해 딱 한 장을 선 라이트로 했는데 그곳에서 비가 새는 게 분명했다. 업체 말로는 칼라강판 수명이 50년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면 반영구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선 라이트는 고작 5~6년이다. 고작 5~6년? 5~6년이나 가는 지붕재는 옛날 같으면 특급품에 속한다.

매년 지붕 이기 바쁜 시절

가을걷이도 끝나고 마늘이나 밀, 보리 등 가을 파종까지 끝나면 바로 시작되는 게 이엉 엮기다. 지붕을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형님은 볕 잘 드는 섬돌을 등에 지고 앉아 몇날 며칠 이엉을 엮었다. 당시 지붕재는 몇 안 되는 부잣집 기와지붕 말고는 모두 볏짚이었다. 수명은 딱 1년.

짚으로 엮는다. 타작 끝나고 늦가을까지.
▲ 이엉엮기 짚으로 엮는다. 타작 끝나고 늦가을까지.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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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 전이라 해도 예닐곱 살만 되면 이엉 엮기에 참여한다. 아버지나 형 옆에 앉아 볏짚을 한 주먹씩 추려 대주는 작업이다. 볏단 하나를 깔고 앉아 손바닥에 침을 뱉어가며 엮은 이엉을 앞발로 쭉쭉 밀어내면 이엉이 돼지 창자처럼 주름져서 꾸불꾸불 마당 앞쪽으로 밀려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엉 한 다발에는 보통 20단 정도의 볏짚이 들어간다. 그 정도만 해서 엮어야 어깨에 짊어지고 사다리를 올라 지붕에서 작업하기 알맞은 무게가 된다. 이엉 하나가 한 20킬로그램 될까? 이엉을 엮을 때는 첫서리가 내릴 즈음이라 낮에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일을 한다. 좀 게으르거나 일이 늦은 집에서는 첫눈이 날릴 때 지붕을 이기도 한다.

이엉과 용마루를 초가지붕 위에 올려 매년 갈아 인다.
▲ 지붕 이기 이엉과 용마루를 초가지붕 위에 올려 매년 갈아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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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간집 지붕하나 이려고 하면 이엉이 열다섯 개쯤 든다. 지붕 이는 날은 모내기 이상으로 큰 행사다. 마당에는 요즈음 들판에서 볼 수 있는 볏짚 곤포사일리지 같은 이엉다발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고 대여섯 장정들이 품앗이로 동원된다.

한 해 전에 인 이엉을 걷어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엉 첫 다발은 볏짚 뿌리가 밑으로 가게 해서 지붕에 거꾸로 까는데 그 이유는 처마 끝을 튼튼하게 하기위해서다. 그 다음부터는 한 뼘 간격으로 해서 이엉을 계속 겹치게 이어 깐다. 마지막 단계는 용마루를 지붕 꼭대기에 이는 것이다.

용마루는 만들기는 물론 용도가 이엉과 전혀 다르다. 이엉이 한쪽으로 빗물을 흘러내리게 엮은 것인데 반해 용마루는 지붕 꼭대기에 올려 빗물이 양 옆으로 흘러내리게 엮은 것이다. 엮을 때도 볏짚을 양 옆으로 엮는다.

일꾼이 너댓명 되니까 아낙은 점심을 해 나른다.
▲ 점심 일꾼이 너댓명 되니까 아낙은 점심을 해 나른다.
ⓒ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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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멓게 썩은 옛 지붕이 걷어 내려지고 샛노란 새 볏짚으로 지붕을 이고 나면 꼭 해야 하는 마무리작업이 있다. 새끼줄로 촘촘하게 지붕을 묶어주는 일이다. 바람이 불어 이엉이 곧추선다든가 날아 가버리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새끼줄로 지붕을 묶을 때도 요령이 있다. 이엉 볏짚 길이의 중간 조금 아래쪽에다 새끼줄을 쳐야 튼튼하게 묶인다.

지붕 이는 진짜 마무리 작업은 따로 있다. 처마 끝을 가지런히 잘라내는 마무리 작업이다. 맨 처음 거꾸로 깐 이엉 밖으로 삐져나온 두 번째 이엉 자락을 잘라내서 보기 좋게도 할 뿐 아니라 처마물이 마당에 떨어질 때 지저분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전지가위로 자르겠지만 당시에는 한 손으로 이엉 끝을 잡고 낫으로 잘랐다. 걷어내서 마당에 수북이 쌓인 시커먼 옛 지붕 볏짚은 거름자리로 옮겨져 겨우내 썩혀 이듬해 농장으로 낸다. 부스러질 정도로 삭아버린 상태라 소 마구간에 깔지도 못한다.

매년 이렇게 지붕을 이다가 3~4년이 되면 특별한 지붕이기를 해야 한다. 한 해 지붕만 걷어내다 보니 그 아래 있는 3~4년 된 지붕은 삭고 삭아서 바람에 날릴 정도가 된다. 그래서 지붕 바닥 흙이 드러나게 몇 년 쌓인 지붕을 모두 걷어내는 것이다. 이 해에는 이엉이 더 들어간다. 이엉을 더 촘촘히 깔아야 하니까 삼간집에 스무 개 이상 이엉이 든다. 그 다음해는 전 해 이엉을 안 걷어내고 지붕을 인다. 2~3년 그렇게 한다.

지붕재의 혁명, 슬레이트의 등장

정말 혁명이었다. 슬레이트 지붕의 등장은 농촌의 혁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천덕꾸러기가 되었지만 슬레이트 지붕은 한 순간에 농촌생활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매년 지붕 이는 일이 반 달 일거리였는데 그 노동을 생략 시킨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애써 물 건너고 산 넘어서 나락 단을 집으로 짊어지고 와서 타작을 할 이유가 사라졌다. 논에서 타작을 하고 소 먹이나 마구간에 깔 볏짚만 집으로 가져오고 그냥 논에 두었다가 이듬해 논 갈 때 갈아 엎어 버리면 됐다. 엄청난 노동력의 절감이었다.

지붕 자체도 혁명이었다. 지붕 이는 일이 사라진데다 지붕 처마를 길게 쑥 뽑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서까래 끝에서 반자나 될까 말까 처마를 냈다면 슬레이트 지붕재는 한자 넘게 처마를 끌어 낼 수 있다 보니 섬돌에 빗물이 치지 않게 되었다. 짚 지붕에는 새가 집을 짓는다거나 굼벵이가 파고들어 한 여름에 비라도 새면 난리를 치지만 슬레이트지붕은 걱정 뚝이었다.

슬레이트로 지붕을 이는 집은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와서 구경을 했다. 지붕 이는 전문 일꾼도 등장했다. 이 동네 저 동네 불려 다니면서 지붕 이는 일로 밥벌이를 했다. 슬레이트는 대골과 소골이 있었는데 대골은 골이 굵고 넓었다. 두께도 두꺼웠다. 돈이 좀 있는 집은 대골 슬레이트 지붕을 이었다.

농협에서는 융자를 해 주면서까지 지붕 개량을 독려했지만 가난한 집은 언감생심이었다. 지붕 개량을 하더라도 아래채는 엄두도 못 내고 몸채만 겨우 했다. 지붕개량 덕에 농가마다 거름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소 엉덩짝에 만날 똥 덩어리가 말라붙어 있던 집도 짚을 충분히 깔아 넣기 시작했다. 소 거름이 겨우 내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농촌 산업구조도 바뀌었다. 면 단위 마을마다 두세 개씩 있던 시멘트기와 공장이 사라져 버렸다. 구운 흙 기와는 너무 비싸서 쓰지를 못하지만 제조 공정이 간편하고 저렴한 시멘트기와는 인기를 끌던 지붕재였지만 슬레이트지붕과는 경쟁이 될 수 없었다.

짚 지붕을 이지 않다 보니 볏짚이 길고 짧고에 더 이상 연연해 할 필요가 없어졌다. 슬레이트 지붕 개량은 볏짚 길이가 짧은 통일벼 등 개량 벼가 등장하던 시기와도 맞물린다. 동네마다 있던 삼밭도 사라졌다. 3~4년에 한 번씩 지붕을 통째로 갈아 일 때는 꼭 맨 밑에 지릅대기라고 불리는 껍질을 벗긴 삼나무 대를 짱짱하게 엮어 깔았는데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공업용 면직물의 대량보급과 삼 재배가 사라지는 것과 지붕개량은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물러있다.

인생역전 상전벽해라

요즘 지붕개량 한다고 하면 십중팔구는 슬레이트지붕 걷어내고 칼라강판이나 싱글지붕으로 바꾸는 걸로 이해한다. 인터넷으로 '지붕개량'이라고 검색하면 가구당 최대 280만 원까지 비용을 지원해 주는 슬레이트지붕 걷어내는 안내가 나온다. 지원비의 전액은 폐기물전문 처리업체가 와서 낡은 슬레이트지붕을 에워싸고 분진이 날지 않도록 비닐로 밀봉하여 특수처리 하는 비용이다. 한때는 지붕혁명의 대명사이더니 이제는 1급 발암물질로 전락한 슬레이트지붕.

특급 발암물질로 밝혀져서 골치거리로 전락한 슬레이트 지붕 철거작업. 방진마스크를 쓴 전문업체에서만 철거가 허용된다.
▲ 슬레이트 지붕 철거 특급 발암물질로 밝혀져서 골치거리로 전락한 슬레이트 지붕 철거작업. 방진마스크를 쓴 전문업체에서만 철거가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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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으로 만든 슬레이트 지붕은 함부로 손 댈 수 없게 되어있다. 자기 집이라도 마찬가지다. 슬레이트 지붕 걷어내서 땅에 파묻거나 방치하면 처벌받는다. 등록된 전문업체 아니면 불법철거행위로 자그마치 징역5년 이하에 5천만원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니 상전벽해라 할 수 있다.

지붕에 선 라이트 한 장 사다 새로 깔았다. 더 이상 비가 새지 않았다. 5~6년 뒤에 다시 교체해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살림에서 발행하는 <살림이야기> 신년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글은 전희식이 쓰고 그림은 전새날이 그렸습니다.



태그:#슬레이트 지붕, #초가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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