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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자락길 3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에 가득 핀 메밀꽃
 앞산자락길 3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에 가득 핀 메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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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앞산자락길 3구간(이팝나무길)은 2구간(맨발산책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해서는 그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2구간을 걸어온 사람에게는 맨발산책길이 끝나면서 앞산순환도로가 나오는 지점, 즉 횡단보도 바로앞에 차량 진입 금지 설치물이 마련되어 있는 곳이라고 말하면 되겠다. 앞산을 바라보면서 3구간 출발점 앞에 서면 뒤에는 통일주차장이 있고, 앞산순화도로 건너편인 오른쪽에는 대덕맨션과 미리내맨션이 우뚝 서 있다.

이 지점을 좀 더 정취있게 설명할 수는 없을까? 앞산자락길 3구간을 표시하는 이정표를 앞에 두고 서면 등 뒤가 온통 메밀꽃 천국이다. 물론 메밀꽃은 9월 중에 활짝 피어나니 다른 철에 이 길을 걷는 이에게는 이 설명 또한 온당하지 못하다. 지금이 9월이기 때문에 '이팝나무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구경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팝나무는 4-5월에 꽃을 피운다. 

3구간이 시작되는 골짜기에는 강당골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강당은 다수의 사람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는 건물이다. 서원의 본 건물을 흔히 강당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뭔가 궁금해진다. 옛날에 이 골짜기 안에 서원이 있었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강당이 있기는 있었다. 이 골짜기의 물이 흘러내려 모이는 지점에 큰 못이 있었고, 못가에 강당이 한 채 있었다. 그래서 강당 뒤편에 있는 이 골짜기에 강당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못은 언젠가 메워졌고, 강당도 허물어져 자취를 잃었다. 

은적사 대웅전. 왕건이 사흘 동안 숨어 지냈다는 왕굴은 대웅전 왼쪽에 있다.
 은적사 대웅전. 왕건이 사흘 동안 숨어 지냈다는 왕굴은 대웅전 왼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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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 정도 걸으면 은적사가 나온다. 사찰 입구에는 신라 고찰이라는 자랑섞인 안내판이 서 있다. 927년 동수대전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사흘간 숨어 지내다가 안일암으로 옮겨갔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절이다. 대웅전 왼쪽에 왕건이 숨었다는 굴이 있다. 설화의 백미는 왕건이 들킬까봐 거미들이 굴 앞에 빽빽하게 거미줄을 쳐서 지켜주었다는 부분이다.

그래서 절에는 '숨을 은(隱)'과 '자취 적(跡)'을 써서 은적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왕건이 숨어지낸 자취가 남아 있는 절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은적사에 왔으니 왕굴을 보고 돌아서야 한다. 하지만 왕굴이 너무 얕다. 왜 왕건이 사흘만 이 절에 머물고 다시 안일암으로 옮겨가서 숨었는지 이해가 된다.

은적사 왕굴
 은적사 왕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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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사에서 잠깐만 걸으면 한때 대구 최대의 유원지 구실을 했던 큰골에 닿는다. 이 골에 큰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고산골, 강당골, 매자골, 안지랑골, 달비골 등등 앞산 골짜기들 중 가장 큰 골짜기이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놀이기구, 의자형 삭도,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금 이곳에는 케이블카만 남아 있다. 케이블카는 앞산 정상 턱밑의 대덕산성 유적까지 운행된다. 각종 놀이기구들이 작동되었던 곳은 빈 터로 남았고, 풀들이 무성하다. 하지만 잡초가 무성하다고 표현할 지경은 아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단체로 놀러를 와서 신나게 뛰어노는 날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이들의 퐁퐁 솟아오르는 목소리들로 앞산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케이블카 아래 공터에서 뛰어놀고 있다.
 아이들이 케이블카 아래 공터에서 뛰어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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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간을 산책하고 있는 수녀님들
 4구간을 산책하고 있는 수녀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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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부터 충혼탑까지의 앞산자락길 제 4구간에 남구청은 '호국선열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송두완 의사와 임용상 의사 기념비, 이시영 선생 순국 기녑탑, 낙동강 승전기념관, 그리고 충혼탑이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락길을 걸으면서 그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자락길 아래에 있다.

이시영은 대구가 낳은 독립투사이다. 그가 만주에서 38세의 나이로 병사했을 때 안창호는 "나라의 큰 별이 졌다"고 애통해 했다. 만주에서 '날개 달린 호랑이'로 불린 지용겸비의 뛰어난 독립투사였던 이시영은 본래 1910년대 국내 무장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조선국권회복단 창립 간부였다. 4구간이 끝나면 조선국권회복단이 창립된 안일암이 나온다. 한 순간이라도 속히 안일암이 보고 싶어서인지 내 발걸음은 자꾸만 빨라진다.

이시영 순국기념비
 이시영 순국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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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대구앞산자락길 답사기는 계속됩니다.



태그:#앞산자락길, #은적사, #이시영, #조선국권회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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