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보강 : 4일 오후 2시 35분]

"인터넷 사이트 함부로 차단했다간 큰 코 다친다."

불법 인터넷 사이트 신고가 들어오면 일단 막고보는 잘못된 행정심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이 정부 정책을 비판한 패러디 사이트를 피싱 사이트로 오인해 차단한 정부 산하 기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일 사단법인 오픈넷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정부 정책 비판 사이트를 피싱 사이트로 오인해 3일간 차단

KISA는 지난해 4월 당시 금융결제원이 운영하는 '금융 앱스토어'가 피싱에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하려고 만든 패러디 사이트 '금융 얩스토어'를 실제 피싱 사이트로 오인해 강제 차단했다. 당시 KISA는 25분 만에 번복했지만,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3일 동안 접속 차단을 풀지 않았다(관련기사: '피싱 경고' 사이트도 불법? KISA 제대로 낚였네).

금융결제원에서 운영하는 금융앱스토어(왼쪽)와 한 개발자가 피싱 위험을 경고하려고 패러디해 만든 '금융얩스토어'
 금융결제원에서 운영하는 금융앱스토어(왼쪽)와 한 개발자가 피싱 위험을 경고하려고 패러디해 만든 '금융얩스토어'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이에 오픈넷은 비판 사이트 개설자 대신 KISA와 금융결제원, 이통사들을 상대로 공익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12월 1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2심 재판부는 KISA가 정보통신망법 위반 여부를 최종 심사할 고도의 주의 의무가 있는데도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과실이 있어 비판 사이트 접속 차단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이통사도 제때 접속 차단을 풀지 않은 과실을 인정해 원고에게 정신적 위자료로 1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금융결제원은 해당 사이트가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했을 개연성만 있어도 신고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봐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픈넷 자문을 맡아 이번 소송을 진행한 박지환 변호사는 "KISA의 잘못된 인터넷 사이트 접속 차단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판결이 나온 건 처음"이라면서 "재판부도 인터넷 사이트 접속 차단이 일부 게시물 삭제보다 표현의 자유를 더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고 지적했다.

금융결제원은 지난해 4월 국내 은행 모바일 뱅킹용 앱들을 한 데 모은 '금융 앱스토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픈넷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금융거래 앱들을 한 데 모으면 오히려 '피싱'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폐지를 요구했고, 한 대학생 웹 개발자는 금융 앱스토어를 사칭한 피싱 사이트를 패러디해 그 위험성을 알렸다. 

하지만 당시 금융결제원은 이를 '피싱 사이트'로 보고 KISA에 접속 차단을 요구했다. 박지환 변호사는 "해당 사이트는 비전문가가 보더라도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한 피싱 기능이 없는 단순 사이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일부 아쉬운 점도 있지만 KISA의 잘못한 행정 심의를 인정한 것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오픈넷은 "이번 판결은 접속 차단 관련 행정심의에 요구되는 '엄격한 주의의무'를 인정한 것임은 물론, 다소 과격한 패러디 형식으로 정부 정책 비판 행위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고 판단한 것"이라면서 "앞으로 정부가 각종 행정 심의를 통하여 국민의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에 대해 족쇄를 채우려 하는 모든 시도에 대하여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KISA는 이번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태그:#오픈넷, #한국인터넷진흥원, #접속차단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