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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학생인 필자의 일상은 이러하다. 평일에는 학교생활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주말엔 과제와 여가생활을 한다. 나름대로 매일 부지런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맘껏 여가를 즐긴 날들은 매우 드물며 이제까지 밀린 학자금 대출도 다 갚지 못한 형편이다. 이렇게 하루 평균 5시간도 못 자는 날들이 허다한 버거운 일상을 보냄에도, 나는 자신이 즐거운 인생을 사는 한 사람임을 확신한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적어도 내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소위 '88만원 세대'라 일컫는 이들의 구성원인 내가 어떻게 그런 확신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삶이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 당신을 위해 이제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이 글을 통해 풀어내 보겠다.

우선 나는 물론 내 또래의 수많은 사람이 포함된 '88만원 세대'란, 한마디로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2007년 전후 한국의 20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가 처음 쓰인 책인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씨는 치열한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20대들을 표현하는 용어로 이 단어를 채택하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지금의 20대 중 상위 5% 정도만이 5급 사무원 이상의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평균 임금 88만 원 정도를 받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현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으로 비롯된 말이며 나 또한 이 말에 공감한다. 현실은 여유를 느끼기엔 너무나 치열한 경쟁들로 가득 찬 공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 역시 '경쟁'만이 길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경쟁이 아닌-어쩌면 경쟁보다 더욱 치열한-삶을 사는 이들이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바로 '호모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 부른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같은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나라의 저임금 비정규직인 이십 대들을 '88원 세대'라 부르듯, 유럽에서도 이런 유럽의 20대들을 부르는 말로 '천유로 세대'라는 말이 있다. 이렇듯 취업난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남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한 '대니얼 세디키'도 험난한 취업의 문턱에서 수많은 좌절을 겪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와중 그는 계속 좌절하기보다 미국 50주를 돌아다니며 50가지 직업을 체험해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되고, 이를 직접 실천에 옮겨 사람들에게 알려져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기분이며 이 일을 하며 정말 자신의 인생을 사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주체적인 이들을 우리는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호모루덴스'라 부를 수 있다.

작년 개봉작이던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역시 위와 같은 '88만원 세대'의 도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잉여'라 불리던 네 남자가 '공부-대학-취업' 한국사회의 정석과 같은 길을 벗어나 행했던 새로운 도전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재주를 살려 호텔 홍보 영상을 만들고, 마지막엔 존경했던 가수의 마지막 뮤직비디오를 본인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영광을 맛보기도 한다. 이러한 그들의 도전은 영화로 제작되어 2013년 다큐멘터리 중 최단기간으로 2만 관객을 돌파하고, 청소년을 위한 영상물로 선정될 정도로 다양성 영화임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멋진 그들의 삶도 모두 성공적이고 쉽기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가기 전 등록금을 못 내 하고 싶었던 일을 하자고 결정한 것이 이 모험의 시작이었고, 그 시작 후에도 유럽에서 무일푼인 상황에까지 처하기도 했다. 이처럼 원하는 삶을 즐기는 데에도 고난은 따르며,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렇게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 즉 삶의 원동력을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놀이'의 본질이자 의의라 생각한다. 만약 이들의 이러한 '도전' 또는 '놀이'를 단순하게 일시적인 쾌락과 현실감각 없는 철없는 행위로만 여긴다면, 이러한 결과는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특별한 삶을 살았던 이 영화의 주인공들 역시 우리 '88만원 세대'의 일부이며, '스펙 쌓기'에만 갇혀있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개척했기 때문에 비로소 이러한 도전도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성공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낸 이들의 경우가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적용될 가능성도 있을까? 우리는 그 가능성을 '신(辛) 놀이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 놀이문화'란 '냉혹하고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야무지게 준비하고 즐긴다'는 뜻으로 단순히 논다는 의미를 뛰어넘은 뜻이다.

이와 관련된 연구를 시행한 제일기획은 '놀이'는 새로움에 대한 도전, 경쟁력을 위한 차별화, 긍정적 개인주의, 재미의 확장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자면, 바로 젊은이들이 ''신(辛) 놀이문화'를 통해 '매운 현실을 놀이로 승화시킨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 성공적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설문 조사가 있다. 19세에서 24세의 연령대가 참여한 '신(辛) 놀이문화'와 관련된 이 조사의 결과로는 이들이 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스펙'조차도 오락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행, 봉사활동, 학회, 공모전, 이색 아르바이트 등이 모두 여기에 분류되며 응답자의 58.7%가 '스펙 쌓기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답했으며 '노는 것도 스펙 쌓기와 관련이 있다'는 대답도 41.3%를 차지했다.

제일기획에서는 이들을 '혹독한 현실에서도 긍정적인 자세로 어려움을 극복한 세대'라고 규정하며 "국제 감각을 갖춘 'G세대(글로벌 세대)'와 번듯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88만원 세대' 등 양극단으로 분류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88만원 세대의 호모루덴스'의 가능성을 특별한 한 개인적 사례가 아닌, 보다 많은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88만원 세대'를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도 개인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의 가능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사회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 예로 90년대 후반부터 시행된 스웨덴의 '생애 첫 자금 지원' 제도를 통해 스웨덴 청년들은 등록금에 보태거나, 주거권에 사용할 수 있으며, 이 돈을 통해 전 세계로 배낭여행을 가 경험과 지식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또한, 그외에도 비정규직에 관한 문제와 같이 우리 사회는 이러한 제도적 정비와 더불어 국민의 정신적 성숙이 필요하다. 개인이 삶에 있어 자주적인 독립성을 인정받고 싶어도 학벌과 물질적 요소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시선과 환경은 정형화된 인간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 분명 제도적, 정신적으로 고쳐야 할 점들이 존재하는 병든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치유할 가능성을 스스로 배제해선 안 된다.

한계는 그 한계를 규정짓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삶이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그 삶을 즐기도록 주체적으로 개척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놀이'이자 '삶의 본질'임을 잊지 말자. 이제 답답한 일상에 지친 당신도 나와 함께 삶의 노래에 목청을 높이자.

덧붙이는 글 | 참고 자료
제일기획-'辛놀이(NORI) 세대, 그 안에 숨겨진 코드 찾기'
SBS스페셜-88만 원 세대의 힘겨운 데뷔전
우석훈, 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7
한경애,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그린비, 2007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호재 감독, 2013년 작)



태그:#88만원 세대, #호모루덴스, #놀이,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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