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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추억의 간이역이 된 경춘선 화랑대역.
 내 마음속 추억의 간이역이 된 경춘선 화랑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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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소울 메이트(Soulmate)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태어나 오직 한 번 운명이 맺어준 사람, 마음이 통하는 친구, 당신은 내 영혼의 동반자라고 멋있게 표현할 때 쓰곤 했다. 하지만 점점 살기 팍팍해지고 삶이 신산해져만 가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새 마음마저 메말라버렸다. 이제 소울 메이트를 만나기란 천생연분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돼버렸다.

'서울' 메이트만 있고 정작 소울 메이트는 전무한 내게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소울 플레이스(Soul Place)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소울 플레이스'에 대한 의미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죽어도 좋을 만큼 살아보고 싶은 곳일 테고, 어떤 이에게는 닿아보지 못한 곳에 대한 미지의 동경일 수도, 그저 추억 어린 고향을 향한 지친 자의 향수일 수도 있겠다.

우울하고 울적한 날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게 하는 기차와 기차역, 특히 간이역을 좋아하는 내게 경춘선 화랑대역(서울 공릉동)은 좋은 소울 플레이스가 돼주었다. 주로 춘천으로 가기 위해 경춘선 기차를 타지만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아무도 내리지 않는 화랑대역에 발을 내딛곤 했다.

어느 계절에 가도 좋았다. 하지만 커다란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대합실 나무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으면 흐르던 시간이 잠시 머문 듯했던 봄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차가 자주 지나가지 않아 철로 침목 사이로 초록의 수풀들이 고개를 내민 한가로운 철로 변을 걷기도 하고, 가까이에 오래된 나무들로 울창한 태릉도 있어서 차분히 숲길까지 산책할 수 있는 곳. 다른 이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흔치 않은 곳이었다. 그렇게 수년간 내 마음속 안식처가 돼준 간이역 화랑대역은 지난 2010년 경춘선이 복선 전철화 되면서 그만 폐역이 되고 말았다.

내 마음속 그리운 간이역... 흐르던 시간이 잠시 머문 듯

무창포 해변 가는 길에 운명처럼 마주친 장항선 간이역 청소역.
 무창포 해변 가는 길에 운명처럼 마주친 장항선 간이역 청소역.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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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아니지만 추억이 많았던 친구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에 녹슨 철로와 버려진 역사(驛舍) 건물만 남아 있는 화랑대역에 무작정 찾아가보기도 했다. 너무 아쉬웠지만 정들었던 간이역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지내기로 했다. 마음속 깊이 어디엔가 묻혀 있던 간이역 화랑대역이 다시 떠오른 건 바닷길이 열린다는 충남 보령의 무창포 해변을 향해 자전거 여행을 할 때였다.

무창포 가는 길 중간에 보령의 작은 마을 청소면을 지나가게 되었다. '청소슈퍼', '청소정육점' 등 가게 이름도 정다운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순전히 동네 이름에 끌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장항선 기차의 유일한 간이역이라는 청소역(충남 보령시 청소면)과 운명처럼 마주하게 되었다. 기차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 한 대가 역의 분위기를 더욱 한적하게 혹은 쓸쓸하게 해주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간이역이라고 부를 만한 아담하고 소박한 역사(驛舍)가 이렇게 숨어 있는 듯 존재하고 있었다니, 마치 보석을 발견한 마냥 기쁜 마음이 앞섰다. 역 뒤편으로는 푸르른 논밭이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저 멀리로 가을날 억새꽃이 만발하는 것으로 유명한 오서산이 펼쳐져 있었다. 

간이역이 자리한 특이한 동네 이름은 한자로 '靑所'(푸를 청, 곳 소). 이에 어울리게 간이역의 녹색 지붕과 흰색 외벽은 단정하고 소박한 느낌을 풍겨, 간이역만의 멋과 고즈넉함이 더해진다. 상하행 무궁화호 기차가 하루 8번 쉬어가는, 열차도 사람도 드문 청소역에 있으니 마치 작은 암자에 온 것 같았다. 역 안내판에 장항선에서 유일한 등록문화재(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05호)라고 하더니 그럴 만했다.

천천히 건너고 싶은 장항선의 정겨운 건널목.
 천천히 건너고 싶은 장항선의 정겨운 건널목.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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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후 간이역 청소역은 내 마음속 그리운 간이역 화랑대역을 대신해주었다. 얼마 전 장항선 기차를 타고 청소역에 찾아갔다가, 홀로 근무하는 역장 아저씨에게 좋은 소식과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청소역에서 원죽역, 김좌진 장군 묘까지 걸어갈 수 있는 시골 풍경의 임도를 알게 되었다는 게 좋은 소식. 2017년쯤 장항선 직선화 2차공사가 시작되면 지금의 청소역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철길 공사가 끝나면 아마 이 방향으로 기차가 안 다닐 것두 같아유. 예쁜 역인데…. 조심해서 잘가유."

간이역 건물처럼 꾸밈없는 역무원 아저씨의 정다운 말이 자꾸만 여운으로 남았다. 등록문화재가 될 정도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곳인데…. 간이역의 운명이 참 허망하게 느껴졌다. 네댓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작은 대합실 나무 의자에 앉아 창밖의 간이역 풍경을 사진 속에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주목받지 못하지만 평범하고 소중한 우리 같은 존재

허리숙인 소나무 한 그루가 숙연한 분위기를 돋우는 김좌진 장군 묘.
 허리숙인 소나무 한 그루가 숙연한 분위기를 돋우는 김좌진 장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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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역을 뒤로하고 역무원 아저씨가 알려준 철로를 따라 장항선의 또 다른 간이역, 하지만 폐역이 됐다는 원죽역(충남 보령시 청소면)으로 향했다. 장항선 철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임도를 걷다보면 커다란 노거수가 발길을 멈추게 하는, 주변이 탁 트인 공간이 나온다. 일본군과 싸워서 대승을 거둔 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백야 김좌진 장군(1889~1930)의 묘가 있는 곳이다.

넓은 무덤가에 굽은 허리를 한 고개 숙인 고목들이 있어 경건한 분위기가 흘렀다. 특히 무덤 바로 옆에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김좌진 장군에게 절을 하듯 허리를 굽히고 있어 신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나무 때문일까, 1930년 타지인 중국 하얼빈에서 정적에게 암살당해 생을 마친 장군의 삶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무덤 밑 마당에 노란 민들레가 아닌, 보기 드문 토종 흰 민들레가 많이 피어나 무척 반가웠다. 묘지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맙다며 장군이 하얀 민들레로 선물을 주는 듯싶었다.

기차역 안내 알림판이 비석처럼 남아있는 폐역이 된 원죽역.
 기차역 안내 알림판이 비석처럼 남아있는 폐역이 된 원죽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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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건너고 싶은 정다운 기차 건널목을 건너서니 이제는 폐역이 돼버린 간이역 원죽역이 나타났다. 기차역 이름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이 질펀하게 묻어 있는 옛 야외 대합실 나무 벤치가 있어서 겨우 알아보았다. 폐역이 되었는데도 야외 대합실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해, 기차가 서지 않는 대합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담한 간이역 풍경과 소박했을 대합실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폐역이 되기 전엔 주변의 비닐하우스며 논밭, 시골 마을과 어울린 예쁜 간이역이었겠다. 바로 앞에 아직도 장항선 열차가 지나가는 철길이 있어서인가, 적막함과 쓸쓸함 속에서 왠지 모를 아늑함이 느껴졌다. 마치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다 떠난 작가의 무덤 같았다. '청소-원죽-광천'이라고 써 있는 역 안내 나무 알림판은 없어지지 않고 비석처럼 남아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흐르는 시간을 머물게 하는 야외 대합실 나무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이런저런 상념에 절로 빠져들게 되었다. 털털거리는 경운기를 타고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가 마치 아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손짓을 하며 지나갔다. 표정을 보아 '거기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는 뜻이지 싶다.

'빠앙~' 소리를 내며 장항선 기차가 지나가고 나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간이역의 존재란 그런 것 같다. 크고 화려하고 세련되지 못해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평범하고 소중한 우리들 같은 존재.

원죽역의 나무 의자
 원죽역의 나무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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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간이역, #화랑대역, #청소역, #원죽역, #김좌진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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