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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넘게 지독한 몸살을 앓고 난 끝인지 아직 몸도 마음도 감각이 무디다. 입도 깔깔해 밥 몇 숟가락 억지로 먹다보니 잠시 외출에도 현기증에 휘청거린다.

무언가 입맛을 돌릴 자극적인 걸 먹고 싶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창문을 통해 들어 온 산은 몸살을 처음 앓기 시작했던 4월 16일과는 다르게 제법 풍성해졌다. 높은 산이나 올라야 곰취나 산마늘 같은 걸 채취할 수 있지만 그건 빨라야 다음 달 초순부터다. 가까운 골짜기만 가도 무언가 봄의 향기를 가득 담은 푸성귀들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섰다.

야자수처럼 생긴 우산나물은 향이 짙으나 절집에서는 삽주와 더불어 귀한 산채로 쓰였다. 보기엔 전혀 별개의 식물로 보이지만 우산나물은 국화과의 식물이다.
▲ 우산나물 야자수처럼 생긴 우산나물은 향이 짙으나 절집에서는 삽주와 더불어 귀한 산채로 쓰였다. 보기엔 전혀 별개의 식물로 보이지만 우산나물은 국화과의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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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렇게 빨리 계절의 변화가 일어난 줄 모르고 지냈다는 걸 골짜기에 들어서자 깨달았다. 낮은 지대엔 이미 우산나물은 잎을 활짝 폈고, 두릅도 이미 억세어진 것도 많다. 물론 혼란스럽게 온 봄 탓에 아직 순을 내지 못한 두릅도 있고, 나뭇잎이 먼저 활짝 펴니 키 작은 나물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게 많다.

먹기 가장 좋은 상태의 두릅이다. 어떤 이들은 새순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 순을 모두 감싸고 있을 때만 먹을 수 있는 줄 알지만 이만큼 자라야 제대로 된 두릅향과 맛이 난다. 엄나무순과 마찬가지로 오가피과에 속하며 데쳐 무치거나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전을 부치기도 한다.
▲ 두릅 먹기 가장 좋은 상태의 두릅이다. 어떤 이들은 새순을 감싸고 있는 껍질이 순을 모두 감싸고 있을 때만 먹을 수 있는 줄 알지만 이만큼 자라야 제대로 된 두릅향과 맛이 난다. 엄나무순과 마찬가지로 오가피과에 속하며 데쳐 무치거나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전을 부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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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새순을 감싼 껍질)이 덜 펴진 두릅을 별도로 모아 한 장 촬영했다. 도시 사람들은 이보다 작은 것도 눈에만 띄면 따는데 별로 먹을 게 없다. 최소한 이 크기는 되어야 한다.
▲ 두릅 갓(새순을 감싼 껍질)이 덜 펴진 두릅을 별도로 모아 한 장 촬영했다. 도시 사람들은 이보다 작은 것도 눈에만 띄면 따는데 별로 먹을 게 없다. 최소한 이 크기는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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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을 따며 산책에 나선 것처럼 이리저리 걷는데 초피(추어탕을 먹을 때 넣는 가루를 만드는 열매와 잎을 채취하는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순이 그새 이렇게 자랐나 싶다. 아직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여린 것도 있지만 한 뼘 넘게 자란 초피순도 많다.

몸살만 아니라면 초피순을 따다 아내에게 튀김을 해 달래 막걸리나 맥주 한 잔 했으련만…부질없는 생각이라 싶어 걷는데 여전히 눈엔 초피나무들만 보인다. 그 순간, 입에 알싸한 초피장아찌 맛이 그려지고 침이 고인다. 생각도 하지 못 했는데 입맛이 먼저 알아차렸다. 초피장아찌의 알싸한 맛을!

초피의 여린 순은 튀김이나 전(부침개), 장아찌를 담가 먹는다.
▲ 초피 초피의 여린 순은 튀김이나 전(부침개), 장아찌를 담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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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cm 길이 되게 순들을 따 모았다. 손에 더 이상 잡을 수 없게 되자 이번엔 주머니에 넣고 다시 따 모았다. 튀김만 생각하고 장아찌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아둔함도 잊고 순을 땄다. 길이가 제법 긴 것도 아직은 질기지 않아 장아찌나 튀김을 해도 된다.

초피와 비슷한 나무가 있다. '산초나무'다. 더러 초피와 산초를 혼동해 추어탕을 하는 식당에서도 초피가루를 달라고 하면 산초가루지 왜 초피가루냐고 한다. 나무나 잎, 열매는 비슷하지만 쓰임 자체가 전혀 다르다. 또한 초피는 비교적 따뜻한 기후에서만 자생하고, 산초는 전국의 산 어느 곳에서나 계곡이나 비교적 낮은 지역에서는 볼 수 있다. 이곳 강원도도 영동권인 이곳 오색지역을 비롯해 고성군에서도 초피는 자라지만 영서지방인 인제군이나 홍천에서는 볼 수 없다. 해양성 기후 때문이다.

초피는 여린 잎과 줄기를 모두 튀김이나 장아찌로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민물고기와 같은 종류로 탕을 끓일 때 다져 후추 대신 사용한다. 가을로 접어들면 초피열매나 잎을 따 말려 씨앗을 뺀 뒤 가루를 내 추어탕과 같은 비린 음식에 사용한다.

산초는 가을에 열매를 따 건조시킨 뒤 초피와 다르게 씨앗을 사용한다. 기름을 짜는 것이다. 두부를 구워 먹을 때 사용하는 산초기름이 바로 이 산초열매의 씨앗으로 짠 기름이다.

누룩취나 노리대라고도 불리는 누리대는 양양사람을 알아보는 산나물이다. 셀러리를 닮은 고산식물이다.
▲ 누리대 누룩취나 노리대라고도 불리는 누리대는 양양사람을 알아보는 산나물이다. 셀러리를 닮은 고산식물이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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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군에서는 설악산과 점봉산에서 채취한 누리대(누룩취)를 썰어 넣고 초피잎을 잘게 썰어 장떡을 부쳐 먹기도 한다. 요즘에야 누리대를 먹는 이들이 늘었지만 예전엔 이곳 양양군 사람들만 먹던 나물이다. 심지어 산에서 소백산이나 태백산과 같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고장의 산에서 등산을 하다 누리대를 뜯어 손에 든 사람을 만나면 어김없이 양양사람인 줄 알아 볼 정도였다.

누리대는 당귀와 비슷하다. 그러나 가장 많이 닮은 식물은 셀러리다. 줄기 전체에 홈이 패인 것도 셀러리와 같고, 잎의 모양도 셀러리와 같다. 맛은 모 제약회사에서 생산하는 노루모산과 비슷하게 누릿하다. 심지어 "노린재 맛이 난다"는 사람들도 있다. "노린재를 먹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노린재 맛이 난다는 건 뭐냐"고 면박을 주지만 양양에 사는 어르신들은 지금도 누리대를 '노리대'라고 불러야 알아듣기도 한다. 누룩취란 말은 나물로 사용되기에 최근에 붙인 이름 같다.

간장으로만 담글 수도 있으나 고춧가루를 간장에 불려 버무려 담갔다.
▲ 초피장아찌 간장으로만 담글 수도 있으나 고춧가루를 간장에 불려 버무려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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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냉큼 찬물에 헹궈 건져놓고 간장부터 끓였다. 집간장과 양조간장을 적당히 섞고 물로 간을 맞춘 뒤 소주 몇 잔 따라 함께 끓여 물기가 빠진 초피에 곧장 부었다.

산나물로 장아찌를 담글 때 간장을 식혀 붓는 이들이 있는데 오래 저장하기에 적합한 방법이 아니다. 오이지도 소금물을 팔팔 끓여 곧장 부어야 아삭한 맛이 오래 지속되고 더디게 시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항상 간장으로만 담근 초피장아찌를 먹었지만 이번엔 고춧가루로 버무려 담근 장아찌를 먹기로 했다. 간장을 붓고 하루 정도 두어 간이 알맞게 고루 배게 한 뒤 간장을 모두 따라냈다. 이 간장에 고춧가루를 넣고 불린 뒤 숨이 죽은 초피를 넣고 버무렸다.

고춧가루로 버무린 초피장아찌가 완성되자 밥 한 주걱 퍼 담았다. 초피장아찌 얹어 따듯한 밥 한 수저 입에 넣자 가장 행복한 밥을 먹는 기분이다. 눈물 그렁하게 하는 추억의 맛이다.

아빠가 먹는 걸 보던 딸이 말했다.

"아빠, 어떤 맛이야? 이상할 거 같은데…"

"먹어볼래"라며 작게 하나 뜯어 밥과 함께 주니 맛을 본 딸이 인상을 찡그린다.

"아빠, 이걸 어떻게 먹어? 이렇게 먹는 사람 많아? 아빠 혼자만 이런 거 먹는 거 아니야? 이건 정말 아빠만 먹는 아빠표 장아찌 같은데…"

졸지에 딸에게 아빠만 먹는 아빠표 장아찌를 담그는 사람이 됐다.

유기농농산물이란 이름으로 판매되는 농산물이 많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목초액을 살포해 해충을 막는 등의 수고로 재배하는 농가도 많다. 그러나 정말 믿을 수 있는 건강한 밥상을 만들어 주는 자연의 소산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http://www.drspark.net의 ‘한사 정덕수 칼럼’에 동시 기재됩니다.



태그:#초피, #초피장아찌, #누리대, #두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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