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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요즘 대학생 아이들은 연애편지를 쓰지 않는다(물론 연애편지를 쓰는 아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연애편지는 고사하고 글 쓰는 행위 자체를 무척 부담스러워 한다(물론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연애편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글을 자발적으로 쓸 때가 있긴 있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나고 성적을 확인한 다음 수업 담당 교수들에게 보내는 메일이 그것이다. 연애편지의 내용이 그렇듯이 아이들의 메일 내용도 패턴이 비슷한데, 열심히 했는데 왜 내 성적이 요 모양 요 꼴이냐, 좀 봐주라 뭐, 그런 식이다.

아무튼 아이들은 글쓰기를 무척 싫어한다(다시 말하지만 얼마든지 예외도 있을 것이다). 리포트라고 써 온 글들을 읽어보면 인터넷의 바다에서 손쉽게 건져 올린 내용들을 적당히 짜깁기해 온 글이 의외로 많다(물론 정말 이 친구가 이런 정도의 글을 직접, 진짜로 썼을까 싶을 만큼 잘 된 글들도 없지는 않다). 더러는 너무 서툴러서 그랬겠지만, 아예 통으로 가져온 글들도 없지는 않다.

지난 학기 어떤 과목의 경우 나는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공부를 하면서 같은 제목의 리포트를 부과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가져온 글들이 아주 붕어빵 일색이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라는 문장을 입력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자료가 사르트르의 관련 글인 모양인데, 아이들은 너나없이 사르트르의 충실한 복사기가 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을 지나치게 강조한 탓도 있었으리라 짐작은 한다. 이야기가 좀 옆길로 샌 듯도 싶지만, 사실은 그 말이 그 말이다. 대학생 아이들은 연애편지든 무엇이든 글쓰기를 무척 싫어한다는 것이다.

왜 싫어할까? 귀찮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대해 쓰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먼저 읽어야하는 데 읽기가 귀찮은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나 모바일과 같은 첨단 매체가 읽는 것들을 대체한 지가 오래인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 되었다(물론 읽어야만 살아남는 많은 경우에서 여전히 읽어야 할 것들은 읽혀지고 있다). 다음으로는 아마 글쓰기라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억압 때문일 것인데, 그러니까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글 쓰는 행위에 대한 부담감으로 작용하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웬 대자보라니?

중국의 현대 소설가 '다이 호우잉'이 쓰고 신영복 교수가 번역해서 '다섯수레'에서 펴낸 장편소설이 하나 있다. <사람아 아, 사람아>라는 제목의 소설인데, 나는 벌써 그 소설을 세 번이나 읽었다.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면 이 소설은, "역사의 격동 속에서 사랑과 우정, 이상과 신념이 어떠한 운명을 겪어 가는가, 어떠한 것이 무너지고 어떠한 것이 껍질을 깨고 자라나는가를 보여주려" 한 작품이다.

빨간 볼펜으로 군데군데 밑줄을 그어가며 나는 이 소설을 읽었는데,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역사는 결코 과거가 될 수 없어. 역사와 현실이 하나의 배를 공유하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떼어 낼 수가 없어" 라거나, "겪은 고통이 인간의 가치를 재는 척도가 되지는 못해. 고통은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비열하게도 만드니까" 라거나, "많은 사람들은 역사란 인민이 만드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역사를 서술하거나 기록할 때 '인민'이라는 개념에서 과연 생명이 있고, 개성이 있는 실체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일까?" 등의 문장들이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소설이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와 그 격변의 시기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그들은 무엇보다 '대자보'라는 형식을 빌려 상대를 공격하고 또 반박하면서 치열한 사상투쟁을 전개해 나갔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정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대자보라는 형식은 이렇게 중국 문화대혁명 때의 대자보와 자연스레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기존의 낡은 질서를 비판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했던 대자보는 문화대혁명이 불붙는 계기가 됐다. 중국 사회를 크게 뒤집는 힘(그것의 긍정 혹은 부정적 영향과는 별도로)을 '대자보'라는 새로운 통신 매체가 발휘한 것이다. 이렇게 중국에서는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의 시기까지 대자보(大字報)라는 독특한 형식의 매체가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의 대자보도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러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변혁에 있어 문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생생히 체험한 이는 레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당시 러시아가 다른 서구 사회에 비해 문화의 상대적 결여 상태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는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로서 종속된 계급의 자발적인 동의를 확보하는 장치인데, 당시 러시아는 문화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피지배계급의 지배체제에 대한 종속성이 낮았고 그 결과 혁명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레닌의 말은 문화수준이 높은 사회일수록 사회변혁의 가능성은 적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그렇다고 우리사회의 문화수준이 높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상업주의에 오염된 지 오래라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허버트 마르쿠제 역시 문화수준이 높은 산업사회에 사는 '자유로운 노예'는 혁명을 몽상하지 않는다는 언명을 한다. 대학생 아이들이 써서 내다붙인 대자보들이 사람들의 반응을 일정하게는 이끌어내고 있으나 나는 딱 거기까지라고 본다. 물론 대자보를 통해 일정한 울림이 있고 따라서 그러한 현상이 갖는 사회문화적 함의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우리사회에서 1970~9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던 대자보도 문화대혁명 때의 그것과 성격이 비슷한 측면은 있다. 체제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린 상황에서 대안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한 점에서 그러하다. 1980년 광주에서의 비극도 그러한 형식을 통해 조금씩 그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대자보라는 이 독특한 표현매체는 무언가 비정상적인 상황(혹은 매우 절박한 상황)이라는 배경과 함께 기존의 언론(혹은 언로)이 제대로 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체로 정치적 힘을 갖고 있지 못한 민중세력의 대안언론으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욱, 연애편지는 고사하고 메일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쓴 대자보라는 형식의 글은 내게 '너희들이 웬일이니?'하는 느낌이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회관계망(Social Network Service)의 활용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이(나아가 고등학생들과 편의점 알바생과 성매매에 종사한다는 여성까지) 대자보라는 낡은 형식에 호응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내가 앞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정하게 유의미한 측면이 있다고 했던 까닭은 다음과 같다. 곧, 과거와 같은 거대담론 내지 집단적 의식의 표출이 아니라 각자의 일상적 불안과 고단함이 배어있는, 그래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의 내용이 대자보라는 낡은(사실은 요즘의 대학생 아이들에겐 낡은 게 아니라 오히려 신선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은 대자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니까). 형식과 만나 일정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불안한 시대의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세상의 어지러움이 극에 이를 때 도참(圖讖)이 번성했다. 통일신라 말의 최치원은 "계림의 잎은 누렇게 말라 가고 곡령의 소나무는 푸르다(鷄林葉黃 鵠嶺松靑)" 하여 신라의 쇠망과 고려의 흥기를 예언하였다 한다. 왕조의 변혁기와 혼란기에 번성하는 도참은 기존 집권층의 체제 유지를 위하여 봉사하거나 반체제적 세력이 민심을 회유하는 데 이용되었다. 때로는 민심의 동향을 그대로 알리는 풍향계로도 기능하였다. 물론 우리시대의 저 대자보들이(최치원의 예언이라는 것도) 도참과 그 성격이 같은 건 아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 아니라면 우리시대의 대자보는 어느 쪽으로 기능할까?

푸코에 의하면 어떤 발화는 그 발화가 이루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단지 해석학적 정밀성만으로는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내다붙인 대자보는 파편화된 개인들의 일상적 고민을 담고 있지만 그것들이 일정하게 우리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학교에서 보면 아이들은 예전의 우리 세대의 아이들이 아니다(물론 시대가 변했는데 같은 아이들일 수는 없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우리 세대는 박정희 독재체제의 억압을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시대적 소명의식에 갇혀 있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분단체제의 종식과 노동계급의 해방과 같은 거대담론에 크게 저항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당연하게도 모두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캠퍼스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그랬다. 그렇지 않은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계간 창작 21 20414년 봄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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