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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를 떠나 진짜 캠핑의 시작. 프랑스다.
▲ 꿀꺽. 프랑스의 위용이 느껴지나? 바로 리옹이다. 터키를 떠나 진짜 캠핑의 시작. 프랑스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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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캠핑을 하려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프랑스로 입국해서 자동차를 인수받는 절차를 밟는다. 물론 도시는 파리다. 분명 출국 전 푸조리스 에이전시 사람이 말하기를 "도착 후 공항에서 전화 한 통 걸어 위치만 알려주면 끝이고 그 후론 그 사람들이 알아서 척척척 한다"고 했다.

척척척. 우린 그 말이 유럽 전역, 아니 프랑스 전역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적용되는 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터키에서 출발해 프랑스 내륙하고도 남쪽으로 살짝 치우친 리옹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이후 어떤 시련을 안겨줄 것인지 전혀 몰랐다.

한국을 떠나 태국, 터키를 돌며 두 달 동안의 여행을 마칠 즈음 캠핑 시작을 알리는 터키 출국일이 점점 다가오자 '과연 터키를 떠나 프랑스 지방의 작은 공항에서 자동차를 빌리고 캠핑 장비를 구입하는 일이 가능할까'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났다. 물론 그때도 터키 저가항공인 페가수스 비행기가 이용하는 공항은 자동차를 받기로 한 리옹국제공항과 전혀 별개의 초미니 동네 공항이란 사실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리옹 동네를 우습게 보았거나 페가수스 저가항공 취항노선을 과대짐작했거나.

국가간 이동을 할 땐 늘 거져주는 기내식을 받아먹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기내식을 10유로 주고 사먹을 때는 일반적인 경험과 달라 약간 낯설긴 했다. 하지만 흡족한 맛 때문에 기분은 이내 흥분됐다.

그러나 비행기가 착륙하고 공항에 내려섰을 때 '리옹 괄호하고 세인트에셍 괄호닫고'란 국제공항의 규모가 필리핀 보라카이 깔리보 국제공항의 위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곤 뭔가 우리의 계획과 어긋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왜냐하면 유럽 대륙의 국제공항이 이렇듯 수수하고 앙증맞으면 안 되는 것 같으니까.

야, 리쌍훈! 정말 이러기야?

그러나 남편은 통화를 몇 차례 하며 "터미널 3으로 오래"란 말을 한다. 여보세요. 여긴 터미널이라고는 들었다놨다 이거 하난데 뭐 자꾸 터미널 3 소리를 하시는지. 영어 소통이 다소 불편한 세인트에셍 공항의 심하게 소박한 사무실에서 묻고 물었더니... 우리가 차를 받아야 하는 공항은 이곳에서 80km 떨어진 리옹국제공항이란다.

5월 16일 오후 1시 언저리 햇빛은 떴으나 공기는 써늘했다. 큰 배낭, 중 배낭, 바퀴가 휘청대는 트렁크, 송현, 송주, 아이들의 잡동사니 가방. 이렇게 많은 짐들을 챙겨 교통편을 갈아타며 4시 이전에 리옹국제공항으로 다시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급피로가 밀려온다. 물론 마음 속에선 짬뽕과 스벌을 반복하여 되뇌이고. 평상시엔 자신이 완벽하고 꼼꼼한 척 혼자 다하는 듯 하더니 무슨 일처리를 이렇게 하는가 싶어 남편이 한심하고 밉다. 야, 리쌍훈!

하루 반절이 다 지난 시간에 어떻게 어린 애 둘을 데리고 바퀴가 으스러질 정도의 캐리어와 배낭을 끌고 메고 '세인트에셍 공항 -세인트애센 시내- 리옹시내- 리옹공항'에 가서 차를 받는단 말인가. 어쨌거나 유럽에 발을 디딘 첫날이고 이른 저녁 공기가 점점 써늘해지는 듯도 해서 우린 왜 이런 일이 있어났는가에 대한 추궁은 미루기로 했다.

말로 합의는 하지 않았으나 극도로 예민해진 정신과 피폐한 몸 컨디션을 가지고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였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공항 셔틀을 타고 일단 세인트에센까지만 가서 호텔 1박을 하기로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일정, 지출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얼마나 뚜렷한 일정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일단 '내일 천천히 자동차를 찾자'고 결정이 하자 스트레스는 가벼워졌다. 밥솥이 든 트렁크보다.

'이것이 프랑스의 위용이군!'

프랑스 사람들은 어디서나 주저앉아 무엇을 우적우적 먹는다 하더니만 나는 그 장소가 어느 정도의 상식선인 줄 알았다. 한국인의 일반적인 눈으로 보자니 그들이 뭔가를 먹는 장소는 정말 특이했다. 절대로 적당하지 않은 장소(공항 셔틀버스 타는 정류장 바로 앞 둔치)에서 한 남자는 샌드위치를 모로 누워 먹고 있다. 그는 정류장 앞에 있으면서 눈길은 사람에게 조금도 주지 않은 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정말 어디서나 먹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여자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버스에 올랐다. 여기서 굳이 여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 후에 여러 대중교통 운전자가 여자인 경우가 참 많았다. 그냥 성 고정관념이 투영된 직업의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편협한 인식을 깨는 데 작은 신선함이었다.

세인트에셍의 역을 나와 뒤돌아보니 역전 풍경이 참 현실감이 없다. 지대는 넓고 건물은 깨끗하고 인적은 드문드문하고 바람은 서늘하다.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우린 순간 머뭇거렸다. 무슨 영화 세트장에 온 것 같다. 망해가는 어느 지자체의 영어마을 세트장같다. 물론 그보다 훨씬 크지만. 이것이 프랑스의 위용이군.

비현실적인 크기, 색감, 유동인구밀도다.
▲ 세인트에센역이다. 아~ 너무 한갓지다. 비현실적인 크기, 색감, 유동인구밀도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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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에센 시내 역 앞 호텔 중 하나를 골라 묵었다. 저녁 시간이었기에 지치고 주린 배로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사를 막 마친 이곳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밥을 먹을 수 있냐니까 오늘 식당 장사는 끝났단다.

말을 끝내고 내려다 보니 사장님이 앉았던 자리엔 친구와 뭔가를 싹싹 긁어 먹었는지 음식물의 흔적이 거의 없는 그릇만 있다. 정말 장사가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싹싹 긁어 먹었다. 겨우 시간은 6시도 안 되었는데. 우린 할 수 없이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리들'이란 마트에 갔다.

호텔에서 먹을 수 있는 끼니는 빵, 유제품, 과일 정도다. 마트 문 앞에 어떤 남녀는 큰 개 한 마리씩 옆에 끼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낯선 환경에서 찬 공기로 호흡하는 우리의 처지와 그들의 행복한 표정은 너무 이채로웠다. 한 끼를 위해 구걸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분명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도 않을 것 같은, 자족하는 인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남자의 앞윗니가 없어서 '자족'이란 낱말을 쉽게 떠올렸지 싶다. 난 앞윗니가 빠지면 저렇게 웃지 못할 테니까. 대단한 인간이다.

유럽캠핑의 첫 날 우린 그렇게 그토록 만나길 고대하던 우리의 자동차와는 만나지 못한 채 세인트 에센 역 앞 호텔에서 질감과 식감 모두 낯선 빵과 참 시원한 유제품을 먹으며 밤을 맞았다.

"내일은 우리가 꼭 너를 찾으러 갈 거야. 기다려 붕붕."

맛나니? 맛나노?
▲ 프랑스에서의 첫날 첫끼니는 유제품과 빵이다. 맛나니? 맛나노?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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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맞벌이 가족 리씨네 여행기'는 2012년 다녀온 유럽여행기 입니다.



태그:#맞벌이부부, #유럽캠핑, #프랑스, #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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