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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의 기치를 내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교육문제 해결의 유일한 대안 세력이다. 나아가 전교조는 한국사회 여타 운동단체보다 강력한 조직력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운동단체의 위상 역시 매우 높다. 이 글은 교육문제 해결의 유일한 대안 운동단체로서 전교조가 그간 보여준 운동 노선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그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제언하고자 한다.

1989년 전교조 결성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자 해방 후 수십 년 누적된 교육모순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따라서 교사의 노동조합 결성 투쟁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사건으로 그 투쟁의 정당성은 확보된다. 다만 1989년 당시 반대세력에 의한 참교육 이념 논쟁은 전교조 결성의 역사적 의의를 깎아내리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기획된 이데올로기 전술일 뿐이다.

따라서 투쟁의 명분과 정당성을 획득한 1989년 전교조 운동은 운동의 대의를 견지하는 한, 운동 노선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될 부분은 거의 없다. 시대가 전교조 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한 만큼, 운동 방법 및 전술 면에서 시행착오를 제외한다면 전교조가 견지한 운동 노선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다. 촌지 거부 운동, 일제 보충 수업 반대 운동, 강제 야간 자율학습 반대 운동 등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 운동은 참교육 운동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단적인 사례이다.

문제는 이후 1990년대 반합법 시기 전교조 운동이다. 불투명한 정세 속에서 전교조 운동의 침체기가 지속된 시기이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당시 해직교사 복직은 전교조가 주도하는 당당한 복직이 아니었다. 정권 차원의 시혜적 복직은 해직 교사 복직을 계기로 현장 동력을 크게 추동해내기보다 조합원 절대 다수로 하여금 운동을 관망하는 상태로 정치시켰다. 원상복직이 아닌 재임용 복직은 복직 조합원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특별채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구 수준을 현실적으로 설정하였다면 충분히 협상력(이 문제는 민주 정부 10년 동안에도 해당된다)을 발휘할 수 있었음에도 상층 지도부는 현실적인 대중 노선의 입장에 서질 않았다.

복직 과정이 주체적인 투쟁의 결실로서 맞이한 것이 아님에도 전교조 지도부는 경직된 투쟁전술을 고집하였다. 군부독재 정권이 종막을 고하고 문민정부 출범이라는 객관적인 정치정세의 변화가 가져다 준 해직교사 복직이었음에도 전교조는 객관적인 정세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 원직복직이라는 당위성에 입각한 채, 현실적으로 협상력을 상실한 것이다. 결국 복직 과정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문민정부의 시혜적인 조치로 막을 내렸다. 이후 학교현장은 동력이 살아나질 못하였으며 패배주의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교무실에서 동료교사에게 전교조 신문조차 돌리는 것이 쉽지 않은 시기였으니까.

민정당 - 민자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으로 변신을 꾀하며 지속된 지배 집단의 영속화는 1990년대 전교조 운동을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했다. 현장 동력이 살아나지 않은 상태에서 합법화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은 지속되었고 급기야 전교조라는 이름에서 '노동'조합의 깃발을 내리자는 논란으로까지 비화된다. 아무튼 1990년대 반합법 시기 전교조는 복직투쟁에서 교사대중의 요구에 기초한 현실적인 운동노선을 수용하지 않은 결과, 이후 학교 현장은 장기간 침체되었고 운동복원력은 미미했다. 현장 상황과 유리된 대중 동원만이 1990년대 내내 관성적으로 지속되었을 뿐이다.

1999년 합법화 이후 전교조 운동은 어떠한가? 비록 투쟁의 온당한 결실로 전취한 것은 아니지만 자유주의 정권과의 주고받은 거래로 전교조는 합법화에 성공한다. 전교조 합법화는 이후 조합원 수 9만 명이라는 폭발적 확대에 힘입어 조직을 크게 팽창시켰고 전교조 위상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갖게 하였다. 이는 일정 부분 전교조 운동의 투쟁 결실이 가져온 고무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해방 후 수십 년 지속된 교육모순의 심화라는 객관적인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 학교정책이 학교현장을 포위한 채 쑥대밭을 만들던 현실은 그 객관적 요인의 결정판이다. 문제는 대중 운동 노선의 채택 여부에 있었다.

똑같은 신자유주의 학교 정책임에도 교육과정 개정 투쟁이나 네이스 반대 투쟁은 학교현장과 어느 정도 유리된 채 정치투쟁의 성격을 짙게 띠고 진행되었다. 반면에 성과급 반대 투쟁은 교사 대중의 호응이 대단했다. 그것은 교사 대중의 직접적인 이해와 직결된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대중 노선이며 전교조가 응당 지향해야 할 운동 노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교조는 운동 노선을 수정할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관성적인 운동으로 일관하였다. 그 결과 한국사회 교육모순이 조금이라도 해결되기는커녕 심화되는 현실 앞에서 전교조는 교육운동 대안세력으로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고 존재감도 약화되어 갔다. 운동에 대한 자기 성찰의 부재가 낳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전교조 운동에도 오늘날 담임교사의 업무 강도는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입학사정관제와 맞물린 채 돌아가는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현실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전산화된 탓에 구호로는 '교직원 업무의 경감'을 외치고 있지만 교사의 잡무는 계속 가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1980년대 초반 담임교사의 업무와 견주어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이며 노동 강도가 크게 강화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책임과 의무만 강화되어 온 담임교사의 역할 앞에서 학년 초 담임 기피현상은 전국적인 현상으로 일상적인 풍경이 된 지 오래고 그것은 교사 개인의 심성 문제를 넘어서는 교육모순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그러나 전교조가 내건 숱한 투쟁들 가운데 담임 수당 현실화 투쟁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교조가 교사의 사회경제적 권익과 근무조건 향상을 내건 운동 단체임에도 싸워야 할 교육모순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현실은 전교조의 존재감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직의 저변확대와 국민의 지지를 받기에는 전교조가 자신의 정체성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조합원 각자에게 전교조는 무엇인가라는 의구심이 만연하는 속에서 전교조 조직의 불투명한 정체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전교조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성찰하지 않는 것 같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자. 교육선발제도로서 이미 공정성을 잃어버린 비교육적인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전교조의 입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입시철에 반복되는 자기소개서 대필하는 세태나 풍경을 탓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부풀려진 자기소개서를 쓰도록 유혹하는 입시현실 앞에서 그리고 과장된 문체로 쓰게 되는 교사추천서가 버젓이 횡행하는 현실 앞에서 왜 전교조는 비교육적인 입시제도에 대해서 대안을 제시하거나 비판하지 못한 채 방관자로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미 전국적으로 편법이 횡행하는 인문계 고3 특별활동 수업도 그렇다. 특별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특별활동을 한 것처럼 전국의 교사들이 암묵적으로 아이들에게 편법을 가르치는 교육현실 앞에 전교조는 왜 답을 주지 않는가? 이게 교사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는 것인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상황을 지속시킬 것인지 생각할수록 암담하다. 교육문제가 산적하지만 교육모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전교조 스스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콘텐츠로 무장한다면 해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결국 교육운동의 유일무이한 대안세력인 전교조가 자기 성찰을 통해 풍부한 교육콘텐츠로 거듭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포획된 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 노선만으로 일관한다면 전교조의 미래는 없다. 전교조의 실체인 교사 대중의 사회경제적 이해와 근무조건 향상을 위해 투쟁하도록 운동 노선을 수정하고 그에 충실하게 사업을 집행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행복하면 아이들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1989년 전교조 결성 당시 촌지거부운동이 국민적 지지를 얻었듯이,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성과급 반대 투쟁이 교사 대중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듯이 전교조 운동 노선에 대한 성찰과 노선 수정은 시급하다. 담임수당 현실화를 위해 전교조가 투쟁하고 입학사정관제 등 검증되지 않은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 그리고 수백 수천 가지 복잡한 입시전형에 대해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들은 교사대중의 저변 확대뿐만 아니라 국민적 지지를 획득해 나가는 길이다.

나아가 연간 수십 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해결을 위해 혁명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입시 경쟁 과열과 사교육비 조장의 근본 요인인 학벌주의 이데올로기를 해체시키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개혁적인 교육콘텐츠 제시는 전교조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운동 노선일 것이다. 거기다 학교 현장에 5명 정도 전문적 상담교사 배치 및 방과후 돌봄 교실 운영 확대 등 대정부 투쟁을 전극 전개한다면 국민은 전교조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담임 수당 현실화 투쟁, 교사추천제 개폐 투쟁, 부풀려진 생활기록부 간소화 투쟁, 공문서 등 교사 잡무 철폐 투쟁을 바탕으로 학급 당 학생 수 감축 투쟁과 교사 수업시수 감축 투쟁, 법정 교원 수 확보 투쟁, GDP 대비 교육비 예산 확보 투쟁 등 전교조 스스로 교육 공공성 강화 투쟁을 힘차게 진행하는 방향으로 전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적 지지를 회복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에 맞서는 상층지도부든 단위학교 현장 활동의 최전선이든 묵묵히 한국사회 교육모순과 투쟁하는 교육동지들의 헌신과 희생에 항상 경의를 표하며 이 글이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한 단계 높여주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태그:#교육노동운동, #전교조, #운동 노선, #담임 수당 현실화, #입학사정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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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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