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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에이즈 장기요양사업의 현황과 대책'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차명희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상담팀장, 이훈재 인하대 교수, 권미란 에이즈인권연대 활동가. 환자 보호자들은 토론회 제목이 쓰인 현수막 뒤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에이즈 장기요양사업의 현황과 대책'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차명희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상담팀장, 이훈재 인하대 교수, 권미란 에이즈인권연대 활동가. 환자 보호자들은 토론회 제목이 쓰인 현수막 뒤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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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가 올해로 70이 넘었어요. 44세 아들이 에이즈 판정을 받고 지금 3년째 S병원에 누워 있는데,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S병원은 아들이 죽기 직전까지 열이 올라도 제게 제대로 연락도 안 해주더니 지난 1일에는 매달 간병비로 50만 원씩을 더 내라고 하대요. 저는 91세 친어머니까지 모시고 사는데다 당뇨에 혈압에 지병도 많아 돈을 낼 능력이 못 됩니다. S병원에서는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다'고 하는데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요? 병원에서조차 환자를 짐승처럼 취급하는데 대체 어디로 가야하는지...."

"한 직장에서 13년간 일할 정도로 성실했던 아들이 작년 9월에 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 환자들이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너무 속상합니다. 에이즈라는 사실 때문에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어오려고도 하지 않고 환자를 벌레 보듯 하고요. 갈 곳이 없어 병원을 계속 옮겨 다니는데 정말 불안합니다. 아들 얘기만 하면 제 속에 있는 것들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아요. '아들아 어쩌다 병에 걸려도 이런 병에 걸렸니…'. 너무 불쌍해서 계속 울음만 나옵니다. 하루 이틀로 끝날 문제도 아닌데 정부에서는 왜 내버려두고 있는 건가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들은 모두 흐느끼고 있었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5일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의 현황과 대책'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HIV/에이즈인권연대 나누리+' 등 시민단체가 주최했다.

에이즈에 걸린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 6년째 투병 중인 남편을 요양하는 부인 등 환자 보호자들은 토론회 제목이 쓰인 현수막 뒤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에이즈에 걸린 가족을 위한 지정병원을 찾고 있다. 적지 않은 간병비를 요구하는 요양병원에서 치료는커녕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에이즈로 3년째 투병 중인 아들에게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냐'며 울먹이는 70대 노모의 호소에 참석한 이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돈 없으면 나가라는 병원, 손 놓은 정부... 환자들 "최소한의 권리 보장해야"

에이즈 감염인 및 인권단체가 지난 2013년 11월 27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S병원에 대해 항의하며 "에이즈 환자를 존중하는 새로운 요양병원을 마련하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같은날 해당 병원에서 피해를 입은 환자들의 증언대회를 열기도 했다.
▲ "병원인지 사육장인지.. 새로운 요양병원 마련하라" 에이즈 감염인 및 인권단체가 지난 2013년 11월 27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S병원에 대해 항의하며 "에이즈 환자를 존중하는 새로운 요양병원을 마련하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같은날 해당 병원에서 피해를 입은 환자들의 증언대회를 열기도 했다.
ⓒ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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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들이 언급한 S병원은 정부가 지정한 국내 유일의 에이즈 감염인 요양병원이다. 그러나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해당 병원에서 수 년간 환자 구타와 성추행, 사망사고 등 인권침해 논란이 이어졌고, 결국 지난해 시설위탁 지정이 해제됐다. 해당 병원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끊어진 것이다. (관련기사: '환자 사망·성폭행' 논란 병원, 뒤늦게 "죄송")

S병원에서는 지난달 에이즈 환자들에게 "추가 간병비를 내든지, 아니면 2월 28일까지 병원을 나가라"고 통보했다.

권미란 'HIV/에이즈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는 "S병원에 입원한 에이즈 환자의 가족들은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라며 "환자들은 이런 병원에 그대로 남든지 아니면 병원에서 쫓겨나야 한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질병관리본부가 임시 병원이라도 마련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해당 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10여 명은 쫓겨나듯 다른 시설로 옮겨갔고, 그마저도 어려운 환자 40여 명은 병원에 남아 갈 곳을 찾으며 애태우는 상태다.

토론회에서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환자가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자 가족 중 한 명은 "6년째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남편을 돌보고 있다"며 "에이즈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현실은 잘 알지만, 그러나 이들에게도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와 치료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며 흐느꼈다. 그는 "이 상황에서 환자에게 나가라는 건 정말 죽으라는 소리"라며 "보호자들도 언제 좌절감 때문에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최소한의 대접을 받으면서 머물 수 있는 병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국가에이즈관리사업 모니터단 활동을 하며 에이즈 환자들의 실상을 알게 된 이훈재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4대 중증질환에 대해 책임지고 보장하겠다고 했는데, 그 중 하나인 희귀난치성질환에 에이즈도 포함된다"며 "그런데 고통받는 에이즈 환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는 에이즈 환자를 거의 방치하는 수준인데, 외국처럼 중기 이상의 에이즈 환자를 법정 장애인으로 분류해 보호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갈 곳 없는 에이즈 환자들의 문제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에이즈 문제를 담당하는 김종국 질병관리본부 사무관은 이날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경기도와 지방 의료원 등 에이즈 환자들을 받아줄 만한 병원들을 대상으로 협의 중인데 쉽지 않다"며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들도 일반인들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서 에이즈 환자라고 하면 다 꺼려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일단 시급한 환자에게 간병비를 지원하고, 3~4월 중으로는 병상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덧붙였다.  


태그:#에이즈 병원, #S병원, #질병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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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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