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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목판에 글자를 새기고 탁본처럼 떠서 매야만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목판에 글자를 새기고 탁본처럼 떠서 매야만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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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모래밭 속의 진주'라며 발탁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여수 앞바다 기름 유찰 사고를 계기로 전격 경질됐습니다. 각계각층의 반대와 우려에도 '모래밭 속의 진주'로 비유하던 절대 권력자의 아집으로 해양수산부장관이 됐던 윤진숙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졸지에 '도루묵'과 같은 신세가 된 것입니다.

도루묵이라는 고기는 원래 목어(木魚)라고 불리던 고기였답니다. 어느 날, 피란 중이던 왕이 목어를 먹어보고는 맛이 좋다며 은어(銀魚)라고 고쳐 부르게 했답니다. 하지만 난이 끝나고, 다시 그 고기를 먹어 본 왕이 그 맛에 실망하며 도로 목(환목 還木)이라고 하라는 데서 도로 목, 즉 도루묵으로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도루목이라는 말은 졸지에 은어가 되었다 다시 도로목이 된 물고기 이야기에 빗대어 덧없는 명예, 소신 없는 권력을 조롱하는 말로 쓰이곤 합니다. 역사적으로 윤진숙만 도루묵이 된 것은 아닐 겁니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당사자들 입장에서 보면 졸지에 도루묵이 된 인사들이 꽤 됩니다. 정치나 권력에 목을 매고 사는 사람들 대분은 어쩜 이미 도루묵이 될 기회와 가능성을 품고 사는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도루묵의 지위는 소신 없고 변덕스러운 왕의 말 한마디에 극과 극을 오갔다. 이처럼, 어명 한 마디에 유배와 제웅용을 거듭하며 부침을 겪었던 신하들이 적지 않았다. 도루묵 이야기는 단순히 물고기 도루묵이 아니라 절대 권력자를 섬겨야 했던 그 시대 선비들 자신의 이야기는 아닐까?"(<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 487쪽)

팝콘처럼 어느새 읽게 되는 책 <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

<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지은이 김영진·박승규┃펴낸곳 무자위┃2014.2.25┃3만 3000원
 <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지은이 김영진·박승규┃펴낸곳 무자위┃2014.2.25┃3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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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지은이 김영진·박승규, 펴낸곳 무자위)를 읽다보면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꼭 영화를 보면서 계속 주워 먹던 팝콘 같잖아"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영화를 보면서 먹으려고 들고 들어 간 팝콘, 영화를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연실 주워 먹게 되는 팝콘처럼 어느새 읽고 또 읽어도 톡톡 터져있는 팝콘 알갱이 같은 상식과 내용들이 연달아 이어집니다.  

책과 무관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싫건 좋건 만나고 읽어야 하는 게 책입니다. 학교에서 배우 것도 책을 통해서 이고, 출세를 위해서 읽어야 하는 것도 책이니 책과 인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수시로, 수없이 대할 수밖에 없는 게 책이지만 정작 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아는 것도 별로 없다는 걸 이 책, <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에서 알았습니다.

이 책은 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책에 대한 역사,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발달사, 책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재료들의 개발사, 책을 만든 사람이 남긴 흔적, 책을 쓴 사람들이 쏟은 땀과 열정,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산 성공적인 인생, 기발함을 넘어 기기괴괴하기조차 한 도서관 등…, 책에서 파생될 수 있는 온갖 이야기들이 마이크로필름으로 담아내고 있는 파노라마처럼 흥미진진하면서도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얼마의 돈만 있으면 어떤 책이든 살 수 있는 게 요즘입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책을 만들 수 있는 세상, 얼마의 돈만 있으면 어떤 책이든 손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다가온 건 아닙니다.

요즘이야 컴퓨터자판만 만 두드리면 책을 만들 수 있는 출력물이 손쉽게 쏟아지지만 활자는커녕 종이조차도 없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대나무에 글을 써 묶고, 나무껍질이나 가죽을 이용해 기록을 하던 때도 있었고, 바위와 같은 돌에 기록을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팔만대장경만 하더라도 나무에 하나하나의 글자를 새겨 목판을 만들고, 판화를 하듯이 한 장 한 장을 찍어내 묶어내야 만 경 한권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인쇄 역사, 책 한 권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던가를 생생하게 더듬으며 확인해 볼 수 있는 흔적입니다. 

목판 인쇄는 탁본을 뜨듯이 한 장 한 장 떠서 엮어야 합니다.
 목판 인쇄는 탁본을 뜨듯이 한 장 한 장 떠서 엮어야 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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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인쇄술, 활자, 종이와 같은 물리적 발달사뿐만이 아니라 책이 만들어지고 발전해 오면서 각계각층으로 쌓인 사연들이 실타래에 실이 휘감기며 만들어내는 궤적과 감긴 수만큼이나 엄청납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잃었던 명작 한 권은 작가가 보낸 인생이었으며 고뇌의 결정체였다는 것을 실감할 즈음엔 책에 대한 생각이 저절로 엄숙해집니다.   

"무엇보다 지구를 살리는 불가사의는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한권의 책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해 종리를 비롯한 자원을 아끼고 살림훼손을 줄인다. 북미의 한 도서관은 일 년에 평균 10만 권의 책을 빌려주고, 5000권 정도의 색을 사들인다. 이 정도 규모의 도서관 하나를 지으면 일 년에 50만 톤의 종이가 절약된다.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250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도 막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오염원으로써 수많은 생물 종이 멸종하는 것을 도서관이 막고 있다고 할 수 있다."(<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 183쪽)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기적의 공간이다. 상처 입은 이들에게는 치유의 공간이다. 하방의 쓸쓸함과 지옥과 같은 고통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잠시나마 평화를 느끼게 해주는 작은 천국이다. 우리 시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은 책에서부터 비롯된다. 기적은 책 속에 둥지를 튼다."(<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 613쪽)

책에서는 속 좁게 책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책과 관련이 있는 모든 이야기, 읽고 나서야 '맞아 이것도 책과 관련이 있어'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이야기들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도서관에는 별별 도서관이 다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 박쥐가 살고 있는 도서관, 낙타를 이용한 이동식 도서관, 탱크 도서관, 숲속 도서관 등, 발상의 전환을 넘어서는 기기괴괴하기까지 한 도서관들이 사진과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이 인류 역사에 기여하는 바를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산해진미를 먹은 듯한 포만감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사를 합니다. 대개의 경우는 집에서 먹지만 아주 가끔은 매식에 의존해야만 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건 집에서 먹는 밥은 한두 숟갈만 먹어도 속이 든든한데 매식(구내식당과 같은)을 하는 경우에는 무슨 이유인지 먹고 돌아서면 속이 헛헛하다는 느낌이 감춰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책은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안녕을 볼 수 있는 창이 됩니다.
 책은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안녕을 볼 수 있는 창이 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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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그렇습니다. 읽을 때는 뭔가가 있어 보였는데 막상 다 읽고 나면 뭐를 읽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머릿속이 헛헛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을 읽고 난 소감은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산해진미를 집 밥상에서 먹은듯한 포만감입니다. 

"깨끗할 '결(潔)'자는 '여모정결(女慕貞潔)'과 '환선원결(紈扇圓潔)' 등 두 군데에서 발견된다. 또 어우를 병(並)자와 아우를 병(竝)자가 서로 통용되는 글자다. 둘을 하나로 보면 999자 또는 998자라고 할 수 있다. 한석봉의 '석봉천자문'을 비롯한 한국의 많은 천자문은 대개 뒤의 결을 열(烈)로 바꾸거나 '결'을 중복된 채로 놔뒀다."(<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 335쪽)

책을 읽으면서 드는 포만감, 책을 읽고 난 후에 느껴지는 든든함은 상식과 전문성을 넘나다는 내용들이 저절로 손이 가게 하는 팝콘처럼 다양한 사진들과 함께 질리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편집돼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저자들은 책을 통해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안녕을 볼 수 있는 창이 바로 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책을 통해 어려운 세상을 극복한 예들을, 창에 드리운 창살무늬처럼 격자로, 꽃문양으로, 빗살무늬 등을 이루며 도드라지게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취업 공장'이 돼버린 대학, 안녕하지 못한 이 세상을 살아 나갈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한 세상을 지혜롭게 극복하며 희망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길이야 말로 책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를 일독하는 데서 부터 시작되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지은이 김영진·박승규┃펴낸곳 무자위┃2014.2.25┃3만 3000원



모든 길은 북으로 통한다

김영진.박승규 지음, 무자위(2014)


태그:#모든 길은 북(BOOK)으로 통한다, #김영진, #박승규, #무자위, #취업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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