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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마이뉴스>가 수여하는 '2013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 중 한 명인 김종술 시민기자의 워크숍 특강을 들었다. 그간의 취재 뒷이야기를 전하는 그에게서 발로 뛰는 현장 기자의 성실함과 치열함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조문가는 심정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밀양 리포트 취재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김 기자는 할머니들의 손과 다리에 든 피멍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해 주었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듯했다. 밀양에서 주민과 경찰 간의 격렬한 몸싸움은 일상사가 된 듯했다. 주민들이 경찰과 '일시 휴전'한 후 점심 식사를 하려는 순간, 경찰이 모닥불을 끄면서 도시락을 발로 차기도 했다고 한다. 전쟁 중의 포로들에게조차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

김 기자는 유한숙 할아버지가 사망한 뒤 밀양시장 면담을 위해 방문했던 1박 2일간의 일정을 '마지막 전쟁'에 빗댔다. 오죽하면 '전쟁'이라는 단어를 빌려와 표현했을까. 김 기자가 전해 준 밀양의 상황은 '전쟁'보다 더했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과 수녀 등 10여 명이 밀양시청 앞에서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경찰은 농성 해산을 요구하며 이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과 수녀 등 10여 명이 밀양시청 앞에서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경찰은 농성 해산을 요구하며 이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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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은 1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시청을 항의 방문한 13명의 주민들들 '보호' 명목으로 감금했다. 그들은 흙바닥에서 밤샘 농성을 하던 이들에게 전해지려던 방석과 은박지, 일회용 비옷까지 강탈했다고 한다. 경찰은 연대자들의 항의에 시위용품 반입 금지 규정을 들먹였다.

김 기자는 그때 주민들이 슬프고 억울해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표현했다. 주민들뿐이었을까. 밀양의 처참한 상황을 전하던 김 기자의 표정과 목소리에서도 분노와 참담함이 짙게 배어 나왔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김 기자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왜 이래야 하나. 밀양의 대한민국 경찰은 어찌하여 살기등등한 '민중의 몽둥이'가 되었나.

밀양문제, 밀양만의 것이 아니다

밀양 문제는 밀양만의 것이 아니다. 송전탑 설치에 대한 찬반 입장은 어떻게 보면 부차적인 것이다. 밀양은 우리나라가 현재의 에너지 정책 기조를 계속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탈핵으로 갈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원전이 우리나라의 전체 전기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원자력 르네상스'니 뭐니 하는 말들 때문에 거의 100%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놀라지 마시라. 원전은 고작(?!) 30% 정도다. 나머지는 거의 전통적인 화력발전이다.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는 1~2%로 아주 미미하다.

사람들은 원전 없이는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값싼 원전 만큼 효율적인 발전 기술이 어디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른바 경제성 논리다. 2011년의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안전성 신화는 조금 약해진 듯하다.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원전의 민낯이 사람들에게 제법 널리 알려졌다. 원전에서 빠져 나오는 세슘의 반감기가 10만 년이나 된다는 말은 이제 상식처럼 되었다.

안타깝게도 공포와 경악은 잠깐이었다. 탈핵을 결정한 다른 많은 나라에서와 달리 한국에서는 탈핵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필요악이지만 경제성과 효율성 차원에서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전기를 안 쓰고 살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이탈리아는 후쿠시마 사고 직전 원전을 재가동하려고 했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다. 재가동에 반대하는 여론이 뜨거워졌다. 이탈리아 정부는 원전 재가동 여부를 묻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95% 이상의 국민들이 재가동 반대에 표를 던졌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23기의 원전이 가동 중에 있다. 5기가 건설 중에 있고 14기는 건설 예정 상태에 있다. 현재 계획대로 간다면 원전산업은 확대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양산업이다. 줄기차게 원전 개수를 늘리고 있는 한국만 빼고 전세계 주요 국가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왜 그런지 보자.

세계 핵 발전소 수는 지난 25년간 정체되었다. 유럽은 정점을 찍은 1988년의 177기에서 130여기 수준으로 줄었다. 미국 역시 1990년대 초에 정점을 찍은 뒤 30년간 원전을 한 개도 짓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탈핵 전도사'인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서구 주요 선진국이 사양산업인 원전에서 손을 떼고 있는 게 현재와 미래의 추세라고 단언한다. 그는 2070~2080년경이면 세계 원전 개수가 0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등에서 일어난 핵 사고의 영향이 컸겠지만 원전 산업 자체의 경제성과 안정성 문제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사양산업은 갑자기 뚝 끊기는 경착륙 현상을 보이면서 역사에서 사라질 때가 많다고 한다. 경착륙의 여파를 막기 위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연도별 신설 발전시설 규모를 정리한 그린피스(Greenpeace) 자료('Energy Revolution', 2012; 김익중 교수의 저서 <한국 탈핵> 83쪽에서 참조)가 단서를 제공해 준다.

지난 16년간(1996~2012)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은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여 왔다. 반면에 원자력은 정체나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수치가 증명한다. 원자력과 풍력, 태양광의 연발 발전 용량(단위: MW) 비중은, 1996년 7030 대 1280 대 0에서 2012년 2920 대 44711 대 32000으로 변했다. 2008년에는 전세계에서 아무도 원전을 짓지 않았다.

대한민국만이 원전을 향해 뚜벅뚜벅 외길을 걷고 있다. 값싸고, 안전하며, 심지어는 친환경적이라는 신화에 빠져 우리만의 '원자력 르네상스'를 즐기려 한다. 반면에 재생가능에너지는 비싸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찬밥 대접을 한다.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가 똘똘 뭉친 핵 마피아들은 재생가능에너지가 전기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마이클 슈나이더의 연구 결과(김익중 교수의 위 책 86쪽에서 참조)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총 전기 생산량 중 재생가능발전과 핵발전의 비율은 평균 20% 대 11%다. 거의 두 배 차이다. 캐나다·스웨덴·스위스는 재생가능에너지가 원전을 압도한다. 캐나다는 네 배(60퍼센트 대 15퍼센트)나 앞선다.

많은 이가 얕잡아 보는 중국조차도(?!) 원전 비중은 전체의 2%에 불과하다. 풍력과 태양력을 이용한 재생가능에너지의 발전비중은 20%나 된다. 무려 10배 차이가 난다. 중국의 풍력발전 비중은 설비용량 부문에서 전세계 1등, 태양광은 4등이다. 미래의 경착륙에 대비하는 길,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탈핵은 가능한가. 가능하다. 재생가능에너지를 추앙하는 세계 주요 국가들을 보면 된다. 그들을 그냥 베끼고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나라가 압도적인 세계 꼴찌이니 조금만 베껴도, 누구를 보고 베껴도 된다. 중요한 것은 탈핵으로의 전환이다.

김종술 시민기자는 3, 4월 중에 밀양에서 또 한바탕의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도 현장으로 달려가겠다는 그의 말에서 역시 약간의 떨림이 묻어났다. 그렇지 않겠는가. '전쟁'이라는 말이 비유어로만 쓰이지 않는 곳이 지금의 밀양이다. 진짜 전쟁터에서처럼, 지금 밀양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가고 피를 흘리는 부상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선한 전쟁은 없다. 모든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밀양의 전쟁은 송전탑 설치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그 이면에는 전기 수요 관리 문제, 에너지 관리 정책의 문제가 숨어 있다. 대도시의 넘치는 전기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촌로들의 삶터가 짓밟히는 비윤리적인 문제가 담겨 있다. 밀양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 모두 '탈핵'을 힘주어 외치지 않으면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탈핵, #밀양, #<한국탈핵>, #원전, #핵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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