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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2시 광주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거행된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박근혜 사퇴·이명박 구속 촉구 시국미사'에 참례하고 왔다. 밤 11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으므로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고, 다음날은 또 태안반도 가로림만을 지키기 위한 일로 먼 길 출타를 해야 해서, 이틀이 지난 오늘에서야 광주대교구 시국미사 관련 얘기를 기록할 수 있게 됐다.

불필요한 얘기지만,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전국 각지의 시국미사들에 참례하는 게 아니다. 시간과 공력을 들이고 뭔가를 희생시키며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를 하기 위해 먼 길 출타를 감행하곤 한다. 뜨거운 기도가 내 삶의 나침판임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우선 천주교 신자로서 미사에 참례하여 뜨겁게 기도하고 난 연후에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발동한다든가 적당한 글감이 떠오르면 시간을 쪼개곤 한다. 그래서 취재가 일차 목적인 기자들처럼 순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매번 하루나 이틀이 지난 후에 글을 쓰곤 한다. 때로는 순발력을 발휘하는 기자들의 기민성과 글 솜씨가 부럽기도 하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시국미사가 10일 오후 2시 광주시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인 이영선 신부가 주례를 했고, 원로사제 정규완 신부가 강론을 했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 시국미사 천주교 광주대교구 시국미사가 10일 오후 2시 광주시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인 이영선 신부가 주례를 했고, 원로사제 정규완 신부가 강론을 했다.
ⓒ 전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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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 수도자와 신자들이 성당 안을 가득 메우고 성당 마당까지 빽빽이 들어찼던 광주대교구 시국미사에 관한 기사는 이미 어제 <오마이뉴스>의 지면을 크게 장식했다. 소중한 기자가 작성한 <성당 가득 메운 시국미사 "특검 필요 없다, 대통령 해임">이라는 제하의 기사는 시국미사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히 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사 랭킹 4개 부문 중에서 3개 부문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독자들의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지상파 방송들과 보수언론들의 철저한 외면 가운데서도 인터넷 언론들의 적극적인 보도들 덕에 SNS를 통해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 소셜 미디어 시대임을 실감케 한다. 서울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는 사람들도 여럿 보았다. 스마트폰으로 드라마와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님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영화 장면 같은 사건

나는 이틀이 지난 오늘에서야 지난 10일의 광주대교구 시국미사 참례에 관한 글을 쓰면서, 미사에 관한 얘기는 이미 여러 보도 기사들에 충분히 반영되었으므로, 사사로운 에피소드를 기록하려고 한다. 먼 길 나들이의 고행 속에는 재미있는 얘기도 더러 곁들여지기 때문이다.

나는 충남 태안에서 광주까지 혼자 차를 가지고 가기는 너무 힘들 것 같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광주송정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천안아산역에다 차를 놓고 고속열차를 탈 생각이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 용산에서 오전 9시 20분발 고속열차를 타기로 하고 전날 오후 서울로 올라가 신림동 고시촌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아들 녀석 방에서 일박을 했다.

10일 오후 2시 광주시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거행된 천주교 광주대교구 시국미사에 전국의 여러 교구와 수도회에서 130여 명의 사제들이 참례했다.
▲ 성당 안의 사제들 10일 오후 2시 광주시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거행된 천주교 광주대교구 시국미사에 전국의 여러 교구와 수도회에서 130여 명의 사제들이 참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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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낮 12시 4분쯤 광주송정역에 내린 후 역사 안에서 서울에서 오신 신부님들을 여러분 뵐 수 있었고, 신부님들과 함께 처음 광주지하철을 타보았다. 광주지하철은 서울지하철보다 폭이 좁았고, 칸과 칸 사이에 문이 없었다. 문화회관(구 도청)역에서 내려 5.18기념성당 근처 식당에서 신부님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성당으로 가니 성당 뜰 입구 쪽에 노인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천(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에서 온 노인들인가 했다. 알고 보니 5.18성당과 광주지역 신자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이 성당 앞에 많이 나와 있는 모습에서 어떤 의지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성당에서 미리 성당 앞과 길 건너편에 집회허가를 내놓아서 대수천 회원들과 고엽제 군복들은 얼씬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멀찍이 몇 명이 있다고 했는데, 내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나는 성당 밖의 여러 신부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건물 안 2층 신부님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도 가서 여러 신부님들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그때 예수회의 정만영 신부님이 나를 보고 "대수천 회원 한 분이 쳐들어온 것으로 순간 착각을 했다"고 말해 모두 폭소를 하기도 했다.

이미 성당 안은 만원이어서, 맨 뒤 신자들이 밀집해 있는 공간에서 불편을 감수하며 미사를 지내야 했다. 그리고 미사가 채 끝나기도 전인 3시 55분쯤 나는 먼저 성당을 나왔다. 송정역에서 문화회관역까지 올 때 시간을 재어보니 25분이 소요되었다. 40분쯤 지하철을 타야 송정역에서 4시 42분 발 고속열차를 여유 있게 탈 수 있을 터였다. 승차권도 예매를 해놓았고, 그 열차를 타야 서울 용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강남터미널로 이동하여 태안으로 오는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나는 다음날의 일정 때문에 10일 안으로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

10일 오후 2시 광주시 남동 5.18기년성당에서 거행된 천주교 광주대교구 시국미사에 참례한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성당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성당 안을 메운 신자들 10일 오후 2시 광주시 남동 5.18기년성당에서 거행된 천주교 광주대교구 시국미사에 참례한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성당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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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화회관역에서 승강장으로 계단을 내려간 순간 송정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 열차가 출발을 하는 것이었다. 그 열차를 놓쳤기 때문에 낭패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기다렸다가(서울보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열차에 오른 순간부터 나는 자주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 내 글을 많이 읽으신다는 대전에서 오신 구면인 '예수성심회' 수녀님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마음은 불안했다. 수녀님은 5시 40분 발 무궁화호 열차를 타신다고 했다. 가난한 수도자 처지에 고속열차를 탈 수가 없다는 말씀도 하셨다. 나는 국가유공자 처지라 무임승차권을 발부 받았지만 수녀님께 그 얘기를 하기도 왠지 계면쩍었다. 

열차가 송정역에 도착한 시각은 4시 38분이었다. 4분이 남아 있었다. 수녀님은 자신이 역무원을 만나 고속열차로 연락을 해볼 터이니 빨리 뛰어가 보라는 말을 했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높은 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라갔다. 지하철역과 철도역은 같은 역사 안에 있지 않았다, 통로도 없었다.  

일단 역사 밖으로 나간 다음 좀 떨어진 역사로 달려야 했다. 다행히 내 앞에서 뛰는 젊은 아가씨가 있어서 누구에게 방향을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역사 안에서도 승강장이 꽤 멀었다. 헉헉거리며 죽어라하고 뛰고, 또 하나의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그런데 나보다 앞선 아가씨가 열차 안으로 들어간 순간 문이 닫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메고 있던 가방과 함께 내 팔을 열차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음 순간 열차 문이 도로 열려서 나는 열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열차 칸과 칸 사이, 승무원이 이용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어지럽고 하늘이 도는 것도 같았지만 곧 괜찮아졌다. 나는 땀을 닦으며 좀 더 진정한 다음 내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그 순간 내 평생에 처음 경험해본 일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10일 오후 2시 광주시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거행된 광주대교구 시국미사에는 130여 명의 사제, 1천 여 명의 수도자와 신자들이 참례했다.
▲ 성당 밖의 신자들 10일 오후 2시 광주시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거행된 광주대교구 시국미사에는 130여 명의 사제, 1천 여 명의 수도자와 신자들이 참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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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노년으로 접어들었다. 베트남전쟁 고엽제 후유증으로 상이등급이 5급인 내 건강 문제 등을 생각하니 나 자신이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높은 계단들을 뛰어오르고 뛰어내리고, 긴 거리를 달려 고속열차가 막 출발하려는 찰나에 열차에 몸을 실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절로 웃음이 났다.

나는 아내에게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해서 날렸다. 그런데 마누라의 답신 내용이 좀 섭섭했다. 어떤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고,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했군요"하는 게 아닌가. 섭섭한 마음 가운데서도 여믓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소진되어 마누라와 더 이상 교신도 할 수 없었다.        

나는 7시 30분쯤 서울 용산역에 내렸고, 지하철 1호선과 9호선을 이용하여 강남터미널로 가서 8시 40분발 서산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10시쯤 서산 터미널에 도착, 20여 분을 기다린 후 천안에서 온 마지막 버스를 타고 태안으로 올 수 있었다. 그리고 10분가량 밤길을 걸어 집으로 오며 묵주기도 85단을 마무리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태그:#천주교 시국미사, #천주교 광주대교구, #5.18기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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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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